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루 May 01. 2019

사자에게 결론을 주지 마세요.

법구경, 우암품

최근 사이에 친구 두 명과 통화를 했습니다.


한 친구는 인도에서 대학을 나와, 국제 무역과 관련된 일을 하려는 친구였고

다른 한 친구는, 저와 같이 생물학과를 나와 교육직 공무원으로 일을 하고 있는 친구였습니다.


두 친구 모두 저에게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 생각이 너무 많아, 밤마다 걱정만 하다가 잠이 드는 것 같아."


"계속 이렇게 반복될 것만 같아 두려워."


한쪽에서 보기에 걱정 없을 것만 같던 친구가

또, 이미 인생의 큰 문제 하나를 해결한 것 같은 친구가

그런 걱정을 하고 있다니 놀라웠습니다.


특히,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전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것만 되면, 모두 다 괜찮아질 것 같아. 진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저는 친구들의 그런 고민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조차도 가지고 있는 고민이기에

그것에 대해 제가 이야기해봤자, 허울뿐인 말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친구들도 저에게 어떤 답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자신의 힘듦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겠죠.

그렇게라도, 친구의 힘듦을 알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전화해줘서 고마워. 다음엔 내가 할게."


라고 답하며,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친구들의 고민이, 또 저의 고민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어떤 답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직업을 가진다고 해서, 무엇을 잘한다고 해서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였습니다.

그걸 앎에도, 저의 머리는 계속 답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피곤함이 생각을 이기고 나서야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법구경, 김달진 옮긴, 우암품



60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어라.

피곤한 사람에게 길은 멀어라.

바른 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아아, 생사의 밤길은 길고 멀어라.


이 법문을 만나는 순간 머리가 "띵"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시간의 상대성에 대해 이미 이야기했었지만

저는 내심 그 말을 믿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건 저기 우주 비행사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실제로 느꼈듯이

재미있고 즐거운 일을 하는 동안의 시간과

고민으로 지새우던 밤의 시간은 달랐고


행군 막바지의 100m와

행군 시작의 100m는 분명 달랐습니다.


즐거운 사람에게 시간과 공간은 한 없이 축소되고

괴로운 사람에게 시간과 공간은 한 없이 확장되는 걸까요?


그리고, 이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굳이 증명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즐거움도 괴로움도 온전히 자신의 몫이라는 가르침을

제 짧은 경험에 빗대어 보아도

저에게 생사의 밤길은 길고 멂을 넘어서

두렵게 다가올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구글 이미지, 아인슈타인 혓바닥

74

'모든 것은 나를 위해 생긴 것이다.'

'모든 것은 내 뜻대로 될 수 있다.'라고

속인도 중도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바른 생각 아니거니,

어리석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여

욕망과 교만을 날로 키운다.


길고 긴 밤을 만드는 생각들은

대부분 저런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나에게 유리하니, 이것을 해야 해."

"이것은 나에게 불리해, 이것은 하지 말아야 해."


이런 생각들을 이리저리 하다가도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해야겠어. 이러면 괜찮아질 거야."


답을 내리며, 두려움이라는 사자에게 "결론"이라는 답을 넘겨주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이 소화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 "결론"이라는 확신이 사자의 위액에 녹아 사라졌을 때

사자는 다시 또 다른 "결론"을 내놓으라면 저를 위협해 왔습니다.


친구들에게도 밤마다

이 사자가 찾아오는 것일까요.


구글 이미지, 사자 닭고기

63

어리석은 사람으로 '어리석다'라고

스스로 생각하면 벌써 어진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으로 '어질다' 생각하면

그야말로 어리석음, 어리석은 것이다.


사자가 무서운 저는 어리석은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려 하는 저는

계속 어진 척을 하려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도망치는 사람으로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