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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Sep 28. 2019

공주를 무시하지 말라

2019/09/24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박현희

* 대전 지역 독서 모임 "너도나비"에서의 이야기 내용을 바탕으로, 저의 생각들을 정리한 글입니다. 






Intro. 좋은 말이 좋은 말로 남을 때, 좋은 말은 좋은 말일 수 없다.


책에 대한 평가는 작가의 의견에 동의하기보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나 또한 비슷했다. 작가의 접근법은 신선했지만, 신선함은 신선함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책에서 기대했던 것은 공공교육을 받아오면서 느꼈던  문제들에 대한 최소한의 어떤 해결법이었지만, 작가는 그것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다 아는 문제에 대해서, 동화라는 주제로 그 문제를 다시 확인했을 뿐, 그 해결책에 대해서는 "너도 나도 다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박현희


1. 질문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힘겨움은 스스로 짊어 저야 할 증거이다.


p4 하단, 학교는 ‘물론’이 난무하는 곳이다. 수많은 금지의 규범과 그보다 더 많은 강제 규범들이 학교를 지배 해고 있는데, 그 규범들의 공통점은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규범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왜?”라는 질문을 불온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구성원들이 자꾸 이유를 물어보기 시작하면 대답은 점점 궁색해지고 규범은 힘을 잃기 때문이다.     
묻지 말아야 할 순간에,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하는 순간에, 자꾸 “왜?” “정말?” 하는 의문이 솟아오르는 것은 정말 불편한 일이다. 해결할 의지도 부족한데 의문과 의심이 자꾸 솟아나는 것은 정말 힘겹다. 그냥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어렵게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모두 다 이야기할 수 있는 해결책은 해결책으로서 효용이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모두 다 알고 있는 해결법임에도 실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해결법이 너무 어렵다는 뜻이다. 너무 쉽기 때문에, 너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은, 그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이 제시한 해결책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에게 찾는 것이 아니라, 그 해결책을 쉽게 따를 수 있도록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규범이나 통념에 대해 “왜”라는 질문이 불온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그 떠오른 질문에 대하여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은 한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한 질문에 대하여 눈을 감아 버린다면, 그 질문은 불온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럼에도 불온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불온한 것에 무언으로 동의하고 있는 개인은 불온하다. 그러므로 왜라는 질문 없이 불온을 말하는 사람의 의도는 불순하다.     


묻지 말아야 할 순간이 왔을 때가 물어야 할 때이며,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하는 순간이 진정으로 믿지 말아야 할 순간인 것이다. 이 불편함을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불편함으로 말미암아 그 개인의 의도는 불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힘겨움은 질문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스스로 짊어져야 할 증거이다. 


글을 읽으며 어떤 찝찝함이 느껴졌던 곳이 이 부분이다. 작가는 질문을 하고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이미 답을 내어버린 사람인가? 그리고 나는 질문하고 있는가?   

   





2. 질문하는 사람은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떳떳할 뿐이다. 


p23 하단, 공자와 제자가 나눈 대화를 보자. “마을 사람 모두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까?” “아니다.” “마을 사람 모두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까?”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가 좋은 사람입니까?” “좋은 사람이 좋아하고 나쁜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누구든 누군가의 편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런데 여우 편도 아니고 두리 편도 아닌 둘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제3의 길이 존재한다고 믿는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독립을 위해 상하이에서 폭탄을 던졌던 조선 청년 윤봉길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악몽이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는 외침과 함께 분신을 하여 노동권 실종의 현실을 고발한 전태일을 어떤 자본가가 좋아할 수 있겠는가.
윤봉길과 전태일의 삶이 지금도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화해를 모색한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무엇에 의해서 좋다와 나쁘다가 정해지냐고 물을 때, 모두 각자의 이익을 기준으로 좋고 나쁨은 정해진다. 모두가 좋은 사람이 되기에, 좋은 사람의 반대편에는 나쁜 사람이 있다. 그렇기에 두 편은 모두 좋은 사람이지만, 두 편 모두 서로에게는 나쁜 사람이 된다.      


좋은 사람이 좋아하고 나쁜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이 좋다는 말은 너무 웃기다. 자기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자신은 좋은 사람이 되어, 자기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좋아하니, 그 사람은 좋은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된다.     


그렇기에 좋은 사람은, 마을까지 갈 것도 없이, 나에게 잘해주는, 이익이 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며, 그 반대가 나쁜 사람이다.      


이러한 이익 구도를 기준으로 당연히 제3의 길은 존재할 수 없다. 그 제삼자를 기준으로, 다른 모두는 나쁜 사람들이 되어 있을 뿐이다. 양극단의 논리로는 당연히 제3의 길은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질문하는 자”는 이 양극단의 논리를 무너뜨릴 책임이 있다. 흑백논리 위에서는 그놈이 그놈에 대해 항상 그놈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작가의 마지막 윤봉길과 전태일에 대한 언급은 인정할 수 없다. 문자 그대로도 어떤 자본가는, 어떤 제국주의자는 그들의 삶을 겪음으로써 변화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이 어떤 편에 서있던 것보다, 그 위에서 그들 스스로에게 떳떳했기 때문이다. 그 떳떳함으로의 행동이었기 때문에, 어떤 제국주의자와 어떤 자본가에게는 또 장래의 그 편에 설 사람에게 울림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죽음을 떳떳함이 아닌 희생으로 본다면, 작가의 말대로, 그 죽음은 어떤 편의 이익이기에, 제국주의자와 자본가에게는 악몽이며, 걸림돌로 다가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질문함을 선택함 역시, 희생이 아니라 떳떳하기 위함이다. 물론 질문하는 사람을 보는 사람의 판단까지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음을 안다. 그 판단은 스스로의 몫이다. 하지만, 그 떳떳함을 희생으로 보는 사람의 의도는 무엇인가?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보는 객관적인 근거는 절대적으로 없다. 이유는 딱 하나 "나니까".

    


위키백과, 윤봉길 이미지

 

3. 공주를 무시하지 말라

p179 하단, 기억도 할 수 없는 어린 날에 마녀가 던져 놓은 한마디, “이 아이는 자라서 물레 바늘에 찔려 죽을 것이야”에 놀란 왕과 왕비, 즉 공주의 부모는 공주를 탑에 가둔다. 물레 바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만든 것이다. 탑에 갇힌 공주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위험도 없지만 도전도 없다. 싸울 사람도 없지만 사랑할 사람도 없다. 힘든 일도 없지만 성취할 일도 없다. 이 고립된 탑을 세상 전부로 알고 살아온 공주가 깊고 깊은 잠으로 도피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굳이 따지면 당연한 일은 아니다. 아무것도 없었다곤 하지만, 아무것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작가는 말하지 않았던가. 사실 탑은 완전히 고립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공주는 다만 선택했을 뿐이다. 예언이 두려운 그녀의 부모가 만든 탑이라는 환경 속에서, 공주는 스스로 잠을 자길 선택했을 뿐이다. 그 도피를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부모가 그녀에게 선택을 강요한 것이 아니다. 공주는 의심하는 것보다 잠으로 도피하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공주가 깊은 잠으로 도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면, 모든 같은 환경의 아이들은 모두 잠을 자야 하는 현상을 보여야 할 것이지만, 세상에 나타나는 현상은 그렇지 않다. 같은 환경이라도, 사람은 다른 선택을 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환경으로부터 한 개인의 선택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선택으로부터 환경은 재구성된다. 그렇기에 같은 환경 속에서 다른 개인들은 같은 환경을 다른 환경으로 소화해 낼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공주는 부모가 만든 환경에 의해 선택이 강요된 것이 아니라, 공주가 그 현실을 선택한 것이 된다.   

   

공주에게 도피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공주를 너무도 무시한 선입관이 아닐까. 공주는 다만 잠을 자는 척 생각 중이 아니었을까. 이 뭐 같은 상황을 타개할... 그 터무니없는 예언이 거짓임을 증명하기 위한 도피가 아닌 후퇴가 아니었을까. 공주를 무시하지 말라. 공주는 환경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힘을 비축하고 있었을 수 있다. 


위키백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이미지


Outro. 동화는 살려진 것일까, 살아남은 것일까?


한 선배님이 아기돼지 삼 형제를 다룬 책의 일부분을 이야기해주셨다. 흙과 나무로 집을 지은 집이 "좋지 않음"을 보여주는 동화를 읽은 아이들이, 우리 조상들이 살아왔던 흙과 나무로 지어진 전통적인 집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부분이었다. 


초등학교 때, 나는 아주 낡은 연립주택에 살았다. 우리 집 주변에는 엄청 좋은 아파트가 있었는데, 그 당시의 나는 자연스럽게 주택이 가장 좋지 않고, 그다음은 내가 살고 있는 연립주택, 그다음은 빌라, 그다음은 아파트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에 바탕에는 드라마가 있었다. 집에 대한 좋고 나쁨을 기준으로, 나는 우리 집이 딱 그만큼 못 산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친구 집에 가는 일은 즐거웠지만, 친구를 우리 집에 초대하는 것은 부끄러웠다. 


어느 날, 대학생이던 누나가 집에 친구를 데려왔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 며칠이 지나서 아버지는 취하셔서 집에 들어오셨다. 그때 이런 말을 하셨다. "친구를 집에 데려와줘서 고맙다고". 당시 초등학생이던 이해하지 못했지만,  차츰 아버지가 누나에게 느꼈던 새삼스러운 고마움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부끄럽지 않아야 할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은 행동을 했던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나는 우리 집이 부끄럽지 않을 때까지, 그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온전하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 점에서 동화와 같은 자연스럽게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어떤 콘텐츠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주입되며 살려진 것일까 아니면 어렸을 적 나와 같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서 그 "동화"는 다시 아이들에게 전해지며 살아남은 것일까? 양쪽 모두 일정 부분의 기여는 했겠지만 말이다.


 




우리의 독서모임은 저희 모임은 충청권의 독서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독서 토론 모임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함께 하나의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서로의 생각을 잘 버무려 각자의 고민들을 같이 생각해 보는 독서모임입니다. 

2017년 12월부터 운영되고 있으며, 현재는 충남대학교 경상대학의 강의실을 빌려 18명의 회원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에서 얻어 갈 수 있는 것은

 1. 너도 나비 독서 모임의 주체는 충청권에 살고 있는 사람 누구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사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고, 또 자신의 의견에 대해 여러 피드백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저희는 나비독서포럼의 북리스트와 회원들의 추천 도서를 통해 우리만의 북리스트를 만들어, 시대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좋은 책을 찾아 읽고 있습니다. 혹, 좋지 않은 책을 만나더라도 이 책이 왜 좋지 않을까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곳이 저희 독서 모임입니다. 

3. 책을 읽는 것은 취미나 특기가 아닌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키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너도나비 독서모임에 참여함으로써 이 문화 속의 일부가 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희가 책을 읽고 나누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지정된 책을 읽고 “본 것, 깨달은 것&적용할 것, 듣고 깨달은 것&적용할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첫째, <본 것(본)> - 책 속에서 인상깊거나 마음에 드는 구절을 체크해 읽는다. 

둘째, <깨달은 것&적용할 것(깨적)> -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이나 일상 속에 적용할 점들을 나눈다. 

셋째, <듣고 깨달은 것&적용할 것(듣깨적)> - 타인의 깨적을 들은 후 나의 생각이나 새롭게 적용할 점 등을 나눈다. 

넷째, <깨알토크> - 책의 내용 또는 본깨적 과정 중에서 토론할만한 주제/가볍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깨알 토크를 나눈다.

이렇게 4단계를 통해 단순한 책읽기가 아니라 책을 읽은 후 견해를 보다 넓히고, 무엇을 나의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독서모임입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연락처로 연락주세요. 

장소 : 충남대학교 경상대학 강의실(추후 공지) 시간 : 격주 진행, 화요일 저녁 7시 (약 2시간 정도) 연락처 : 회장 김은화(카톡 아이디 : Euna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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