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루 Oct 13. 2019

수신자가 없기에 말이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윤동주, 참회록    

                  



0. 수신자가 없기에 말이다.   


너라는 이름은 나에게 질투의 다른 이름이었다. 

    

우리의 관계를 부르는 친구라는 이름 뒤에서

너의 말을

너의 모습을

너의 행동을

너의 생각을

너의 습관을

너의 지식을

너의 웃음을

너의 너그러움과

너의 착함을

네가 가진 모든 것들을 질투한다.   

  

나는 너에게 밟히거나

아니면 너를 밟고 올라가야만 하는 사람    

 

밟은 적 없는 네가 나를 밟고 지나간 날에는

너의 불행을 기뻐하는 나를 미워했고

밟힌 적 없는 너를 내가 밟고 지나간 날에는

너를 미워하는 나를 미워했다.     


너는 그렇게 나에게 타인보다 못한 사람이 되어갔다.

차라리 우리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어쩌면, 나를 그렇게 미워하지 않았을 수 있었을까.     


그럴 수는 없었다. 너를 빼놓으면

타인이라는 부류의 사람은 내 인생에는 없었으니 말이다.   

  

내가 너무 예민하고 귀찮게 구는 것일까.

친구라는 이름도 그저 타인의 일부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너를 이렇게 질투하는 것도

친구라는 이름 속에서 그저 나를 미워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친구와 타인이라는 단어는 섞일 수 없다.

친구는 타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불가능과 상관없이

나는 너를 질투로서 대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다.    

 

별 대단스러운 편지를 너에게 쓰려는 것이 아니다.

너의 기쁨을 기뻐하고 싶고

너의 슬픔을 슬퍼하고 싶다.

그래서 친구라는 이름을 친구라는 이름대로 너에게 그렇게 있고 싶을 뿐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정말로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면     

너에게 쓰는 이 참회록은 갈 곳을 잃을 것이다.

수신자가 없기에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공주를 무시하지 말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