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3주째 쉬고 있다. 첫째 주는 아이가 아파서 간호하느라 정신없이 지나갔고, 둘째 주는 남편이 아파서 지나갔다. 셋째 주, 우리는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간이 없어 같이 보지 못했던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보드게임도 하고 술도 마시고 꼭 안고 낮잠도 자는 등 둘만의 시간에 푹 빠졌다. 주변에서 어디 아픈지, 무슨 일 있는지 연락이 올 정도로 잠수 모드였다. 아니 아직도 진행 중이다. 게다가 남편이 아이의 학교, 학원 등하교까지 전부 해주는 덕분에 게으름 수치가 최고치를 찍었다. 거의 겨울잠 모드에 들어갔다고 봐도 될 수준이다. 모든 모임과 만남을 자제하고, 일주일에 두 번 가는 줌바와 한 번 가는 올가 뷰티 빼고는 집 밖으로 나서질 않고 있다. 올해 들어서 꾸준히 하고 있던 저탄고지 식단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매일 탄수화물과 술을 들이키며 엉망인 생활을 하고 있다. 남편에게 푹 빠져서 나의 모든 생활 패턴을 깨부수며 지내고 있는 것이다.
남편과의 시간은 너무나 달콤하다. 둘이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고, 뭐 했다고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 특히 우리는 함께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겸이를 학원에 보내놓고 술과 함께 하는 저녁이 일상이 되었다. 즐거움이 차오르는 만큼 내 살도 포동포동 차오르고 있다. 그럼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신이 난다. 남편 때문에 요즘 살쪘다고 툴툴거리면 내 양 볼을 꼬집으며 너무 귀엽다고 말한다. 예뻐 죽겠다며 사랑이 가득 담긴 눈을 보면 또 스르르 내 자제력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어제도 그랬다. 아이를 학원에 보낸 후, 바로 앞에 있는 단골 치킨 집에 들어갔다. 맥주를 딱 한 잔만 마시려다가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일곱 병이나 마셔버렸다. 첫 잔을 마시며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남편과 둘이 술 먹으면서 도란도란 대화하는 시간이 너무 좋다고, 우리가 연애기간까지 합쳐 16년째 술을 먹어왔는데도 여전히 재밌는 게 신기하지 않으냐고. 그리고 문득 어디선가 봤던 영상이 떠올랐다.
“여보 그거 알아? 내 연인이 될 사람을 선택할 때, 그 사람이 ‘술’을 좋아하는 건지 ‘술자리’를 좋아하는 건지 구분해야 한다네?! 술을 좋아하는 거는 나랑 둘이 마셔도 만족할 테니 괜찮은데, 술자리를 좋아하는 거는 나로만은 만족을 못 할 수도 있다는 거지.”
내 말을 들은 남편은 불쑥 너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과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인 것 같으냐고 물었다. 나는 결혼 전, 후로 나뉜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결혼 전에는 술자리를 좋아했고(물론 술도 좋아했지만), 결혼 후에는 술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래서 우리 둘이 술 마시는 게 제일 좋다고 답하고 남편은 어떤 걸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으냐고 질문을 돌렸다.
“나는 너를 좋아하지.”
이러니 내가 맥주를 일곱 병이나 마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편과의 술자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편은 늘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사랑해 준다. 결혼 전, 일하는 부인과 살림하는 부인 중 어떤 부인이 좋으냐고 물었을 때도 남편의 답은 같았다. 나는 그냥 네가 좋다고. 나는 남편이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은데 남편은 항상 그냥 나 자체를 좋아한다고 말해준다. 그렇게 늘 나의 자존감을 채워준다.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조건 없는 사랑처럼 나를 아껴준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랑 둘이 있는 시간이 좋다. 겸이가 학교, 학원 간 사이에 오로지 나만이 남편의 예쁨을 독차지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그래서 남편이 집에 있는 지금 모든 시간을 남편과 쓰고 싶다. 내 모든 생활 패턴들을 기꺼이 깨면서 말이다.
다들 싫어하는 장마 기간이 우리 가족에게는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는 시간이다. 장마가 끝나면 남편은 다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테니 지금 많이 충천해야 한다. 내일은 또 무얼 하고 놀고, 무얼 먹을지 고민하는 밤이 즐겁다. “안녕, 잘 잤어?”하고 다정하게 나를 깨워주는 남편이 있는 아침이 좋다. 졸음이 밀려오는 오후에 남편이 내려주는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수다 타임이 행복하다. 요즘 나는 아주 충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장마가 안 끝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