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생각나는 캠프가 있다. “생명의 젖줄, 한강을 따라서”라는 주제로 환경운동연합이 주최한 푸름이 국토환경탐사. 설악산에서 서울까지 무려 250km를 도보로 완주하는 10박 11일짜리 국토대장정 캠프였다.
배낭과 침낭을 매고 매일 하루에 21~23km씩 국도를 따라 쭉 걸었다. 그때 나는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와 하늘에서 내리쬐는 강렬한 햇볕에 정신이 아득해지곤 했었다. 그럼에도 첫날엔 걷다가 쉬는 시간이면 쪼그려 앉거나 서서 쉬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나의 태도는 달라졌다. 언제부턴가 잠시 쉬어간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닥에 누워 5초 만에 쪽잠을 자게 된 것이다. 이런 내 모습이 신기했고, 동시에 머리만 대면 바로 곯아떨어지시는 아빠를 떠올렸다. 아빠가 매일 얼마나 피곤하셨는지 몸소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주로 폐교에서 잤다. 수돗가에 천막을 두른 간이 샤워장에서 찬물로 샤워를 해야 했다. 그리고 잘못 밟으면 무너질 수도 있는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을 조심조심 걸어 들어가면 교실 안에는 먼지와 각종 벌레들, 거미들이 반겨주곤 했다. 원래 나는 겁이 많고 벌레도 무서워했는데, 그때는 몸이 너무 고단해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바닥을 쓱쓱 닦고 침낭을 펴고 누우면 그곳이 천국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걷던 중, 비가 많이 와 행군이 미뤄졌던 날이 있었다. 미뤘던 만큼 채워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못하고 그저 쉰다고 마냥 신났었다. 다음 날 낮에도 걷고, 야간행군까지 해야 해서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옷에 야광 스티커를 잔뜩 붙인 채, 깜깜한 국도를 걸었다. 사람의 피곤함이 극한으로 치닫게 되면 걸으면서도 잠들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다리는 걷고 있는데, 순간순간 잠드는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솔 선생님들이 엄청 고생하셨던 것 같다.
고단한 행군에 아프거나 다치는 친구들도 많았다. 또 땀띠로 고생하는 친구들도 기억나는데, 그 친구들은 잠깐씩이라도 보건차를 탈 수 있었다. 땀띠도 전혀 안 나고, 아프지도 않았던 나는 철없게도 그 친구들이 부러웠다. 몇몇 친구들은 배나 머리가 아프다고 꾀병으로 잠깐씩 타기도 했는데, 그런 꾀도 못 부렸던지라 건강한 내 몸을 탓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캠프가 끝나고는 단 한 번도 보건차를 타지 않고 온전히 내 발로 250km를 꼬박 걸어왔다는 내 자신이 기특하고 뿌듯했다.
배낭에는 햇볕에 데워져 뜨거워진 물뿐이었고, 간식으로는 뜨거운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이 나왔던 국토대장정 캠프는 매일이 고단하고 힘들었다. 그럼에도 울지 않고 계속 나 자신과 대화하고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힘내서 걸어왔던 10박 11일의 값진 경험은 나를 끈기 있는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나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믿고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경험 중 하나인 1997년 8월의 여름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