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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Feb 05. 2023

아프지 마

마리의 수술

“슬개골 탈구로 인한 십자인대 파열입니다. 양쪽 다리 모두 수술해야 합니다.” 


 갑자기 못 걷는 마리를 데리고 간 병원에서 수의사 선생님의 첫마디였다. 

 전날 밤까지만 해도 깡충깡충 뛰며 애교 부렸던 마리가 십자인대 파열이라니. 슬개골 탈구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마리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다행히 바로 다음 날 수술이 가능했다. 덜덜 떠는 마리를 선생님에게 맡기고, 마리를 향해 활짝 웃으며 “마리야 갔다 올게. 마리 기다려, 사랑해” 하고 말했다. 뒤돌아 병원 문을 여는 순간 눈에서도 입에서도 마음에서도 눈물이 터져 나왔다. 주차되어 있는 차까지 온몸으로 엉엉 울며 정신없이 뛰었다. 집까지 운전하는 내내, 주차 후 집까지 올라가는 내내 슬픔은 계속 내 온몸에서 터져 나왔다.  


 그렇게 들어선 집은 너무나 적막했다. 마리가 없는 집은 너무 크고 고요하고 낯설었다. 마리가 우다다다 달려 나오는 환영이 보였다. 나는 또다시 슬픔을 쏟아냈다. 감정을 추슬러 볼 여유가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혼자 있는 지금이 온 스위치를 다 끄고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눈물을 조금 추스를 수 있게 되었을 때,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금 진정된 것 같았는데 이야기를 시작하니 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남편은 마리가 아픈 건 이제 시작일 텐데 벌써 이렇게 약해지면 안 되지 않겠냐고,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더욱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리는 잘 견딜 거라고, 우리가 믿어줘야 한다고. 남편은 나에게 필요한 위로를 건넨다. 정신이 바짝 들었다. 울지 않고 기도하며 기다리자고 마음을 진정시킬 힘이 잠시나마 생겼다.   


 마리가 한 살 때, 중성화 수술 중에 심정지가 온 적이 있다. 그렇게 죽다 살아난 뒤로 마리는 절대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내 머리에 깊이 박혀있다. 그래서 더욱 마리의 수술이 걱정됐다. 자꾸만 마음이 불안해지고 별에 별 생각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계속해서 시계를 봤다. 선생님이 전화 주기로 말씀한 시간은 아직 다섯 시간도 더 남았는데, 자꾸만 시계를 의식했다. 명치가 콱 막혀서 무얼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고, 가슴이 답답했다. 아이의 하원시간이 다 되어서야 몇몇 스위치들을 켰다. 다행히 하원 길에 걸려온 수의사 선생님 전화에 안도했다. 선생님은 수술도 잘 됐고, 마리도 좀 전에 깨어나 잘 회복하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셨다. 그리고 마리의 사진과 영상들을 보내주셨다. 그제야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숨을 쉬었다. 당장 보러 달려가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마리가 나를 보면 흥분하고 슬퍼해서 회복에 안 좋을 것 같다며 절대 마리 눈에 띄지 말라셨다.   


“엄마, 마리가 없으니까 슬퍼. 마리가 보고 싶어.” 


“엄마도 마리가 보고 싶어. 그런데 마리는 우리가 슬퍼하고만 있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기다리면 돼. 마리가 보고 싶을 때마다 기도하고, 슬퍼만 하지 말고 더욱 열심히 하루를 보내면서 씩씩하게 기다려보자.” 


 아이에게 말하는 척,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무너지지 말라고, 일상을 버텨내라고 계속해서 마음을 다잡았다.     


 마리가 입원해 있는 병원은 우리 집과 아이의 유치원 중간쯤에 있어서 매일 아이의 등원, 하원 길에 병원 앞을 지났다. 하루 두 번. 가까스로 잡고 있던 내 마음이 무너지던 시간이다. 마음이 주체가 안 되면 차라리 안 보면 되는데, 쉽지 않았다. 자꾸만 병원 앞을 지나면서 마리를 눈으로 좇게 되는 것이다. 볼 때마다 멍하니 앉아 있는 마리의 모습을 보며 안도하는 동시에 눈물이 났다. 마리는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일까? 이렇게 아픈데 혼자라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버려졌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겁이 났고 아플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함에 너무너무 미안했다. 나는 매일 병원만 지나치면 엉엉 울며 무너졌다.  


 마리가 퇴원해 집에 오기까지 그래도 나는 잘 견뎌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마리가 퇴원하기로 한 전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내일 정확히 몇 시에 볼지 안 정했네?”   


 우리가 만나기로 했었나? 전혀 기억도 기록도 없어서 되물었더니, 마리가 수술받았던 날 우리가 통화를 했었단다. 마리가 수술을 받았고, 며칠 입원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친구와 만날 요일을 정했다고 한다. 친구의 말을 들어도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너 엄청 힘들었나 보다. 어쩐지 너무 덤덤하다 했어.” 


 기억이 조금도 안 난다는 나의 말에 친구는 “너는 정말 힘들거나 슬픈 상황인데 억누르고 있을 때면 멀쩡하게 대화 잘 나눠놓고 기억을 못 하는 경우가 있다”라고 했다. 내 얼굴을 봤다면 바로 알았을 텐데 통화라서 눈치 못 챘다면서. 처음 듣는 나의 이야기에 좀 놀랐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겉으로 보기엔 충실하게 일상을 지내며 멀쩡한 척했지만 사실 그동안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계속 바쁘게 움직였다. 대청소를 하고, 가구 위치를 바꾸고,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재료들로 뜬금없는 요리를 한다며 일을 벌이고, 그리고 조금이라도 시간이 비는 것 같으면 뜨개를 했다. 잠들기 전 누워 있는 시간이 두려웠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 자꾸 쓸데없는 생각과 해결되지 않는, 해결할 수 없는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기 때문에. 그래서 새벽까지 졸음이 머리끝까지 올라올 때까지 무언가를 계속하다가 눕자마자 잠에 들곤 했다. 훔쳐보고 울고 잠 못 이루는 패턴이 마치 실연당한 여자 같았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내 마음은 마리에게 닿기를 간절하게 빌며 정신없이 버티던 나날이었다.  


 마리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잘 회복 중이다. 상처를 핥으면 안 되니 목에 고깔을 쓰고 있는데 밥 먹을 때 잠깐 풀었다가 다시 채울 때면 마리에게 자꾸만 미안해진다. 수술 부위를 소독할 때도 마찬가지다. 따갑다고 아파하는 마리를 붙들고 실랑이를 할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 이런 순간들마다 마리에게 말한다. 너를 아프게 하려는 게 아니라고. 아프다고 낑낑거리기만 하고, 으르렁 거리거나 이빨을 보이지 않는 걸 보면서 마리에게 내 마음이 전달되고 있다고 믿고 싶다.    


  문득 마리의 다리 수술에 이렇게나 휘청거리는 내 모습이 걱정된다. 남편 말처럼, 이제 노령견인 마리는 앞으로 병원에 갈 일들이 많아질 텐데 내가 어떻게 견뎌낼지 자꾸만 겁이 난다. 그렇지만 이런 걱정들 또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일단 스위치를 꺼본다. 우리의 첫 시련이 지나가고 있다. 


 희망이 있는 곳엔 반드시 시련이 있다고 말하는 노래가 생각난다. 불안하더라도 사막일지라도 지금 내 시련을 이겨 낼 것을 나는 안다고 말하는 가사를 들으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단단하게 잡는다. 그리고 지금 마리와 같이 있는 순간순간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기며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고 마음먹는다. 언젠가 또 시련은 찾아오겠지만 그때까지 마리와 후회 없이 행복한 시간을 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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