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겸이는 앞으로 KT 위즈를 응원하기로 결정했어!”
첫 직관 경기를 보고 두산베어스를 외치던 겸이는 KT위즈 직관을 다녀오자마자 마음이 바로 바뀌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KT위즈 마스코트인 빅과 또리가 경기장을 계속 돌아다니며 인사해 주고, 사진도 찍어주고, 손도 잡아주고, 머리까지 쓰다듬으며 겸이의 환심을 사버린 것이다. 게다가 KT위즈 파크에서의 첫 직관 자리는 테이블석이라 넓고 편하게 경기를 보았고, 5:0으로 이기기까지 했으니 겸이가 홀릴 만도 했다. 나 역시 KT위즈 첫 직관이 꽤 괜찮았다.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 및 자리가 많은 것도 좋았고, 음식 주문 절차가 편리했다. 마냥 줄 서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핸드폰으로 먹고 싶은 것들을 한눈에 보고 주문해 놓은 후, 완료됐다는 문자가 오면 찾으러만 가면 되는 시스템이라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잠실야구장보다 KT위즈파크가 거리상 집에서 더 가깝다는 점도 한몫한 것 같다. 우리는 KT위즈 첫 직관을 시작으로 매주 야구장을 갔다.
두 번째 경기는 잠실야구장으로 가게 됐다. 홈구장이 아니니 3루석으로 앉았는데 처음으로 앉아보는 방향이라 신선했다. 지난번 테이블석의 점잖게 앉아서 보기만 하는 분위기가 조금 심심했던지라 이번엔 응원석에서 가까운 자리로 앉았다. 상대팀은 LG트윈스였는데, 응원하는 팬들이 어찌나 많던지 KT응원석 옆자리까지 전부 LG트윈스 팬들이었다. 우리도 앞, 뒤, 양옆 전부 LG트윈스팬들에게 둘러싸여 1루석인지 3루석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응원하고 싶어서 갔는데 뒤에 앉은 LG트윈스 팬이 안 보일까 봐 일어나지도 못하다가 나중에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일어서서 열심히 KT위즈를 응원했던 것 같다. 각 팀들의 팬 수가 차이가 많이 난다는 걸 실감한 날이었다.
세 번째 경기는 외야석이었다. KT위즈파크의 외야석은 잔디밭이라 돗자리와 캠핑의자, 테이블을 놓고 볼 수 있었다. 이 날은 지인 가족과 함께 갔는데, 한쪽 돗자리에 아이들을 자유롭게 놀리고 그 옆 돗자리에는 테이블을 두고 어른들이 놀았다. 전광판을 볼 수 없고 경기를 보기에 시야가 멀긴 하지만 소풍 느낌으로 즐거웠던 자리였다. 아이를 데리고 가기에 제일 여유롭고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한창 응원에 열이 올라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나의 갈증을 덜기엔 부족한 자리였다. 이 날 상대팀은 KIA타이거즈였는데, KIA팬들의 응원 소리에 놀라고 돌아온 날이었다.
그래서 결국 네 번째 경기는 응원석에 앉아보기로 했다. 응원석은 왠지 오래된 팬이나 팀이랑 선수들 응원가를 전부 달달 외우고 있는 팬들만이 앉을 수 있는 것 같아서 엄두도 못 내던 자리였다. 그렇지만 나도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세 번의 직관을 연속으로 다녀온 후라 제법 많은 응원 곡들을 외우고 있는 상태였고, 마침 KT위즈 측에서 응원석 공짜 티켓을 보내 준 참이라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응원석에 앉은 사람들은 거의 다 유니폼을 입고, 응원봉도 들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급하게 응원 봉을 구매했다. 유니폼까지는 아직 못 살 것 같아서 팀 로고가 박혀 있는 맨투맨티를 아이와 남편에게만 입히고 응원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드디어 열정 넘치는 응원을 즐길 수 있었다. 두산 베어스 직관 때도 꿋꿋하게 혼자 앉아 있던 남편의 묵직한 엉덩이를 일으켜 세운 응원석이었다. 응원석은 사람들이 전부 일어서서 응원하기 때문에 앉아있을 수가 없는 자리다. 바로 내가 원하던 응원의 분위기였다. 목 터져라 응원하고 승리를 만끽하며 돌아오는 길에 겸이가 말했다.
“나는 박병호 아저씨가 제일 좋아! 그 아저씨가 제일 잘하는 것 같아!”
그러면서 박병호 아저씨 이름이 세긴 옷을 사달라고 했다. 그 옷에 아저씨의 사인도 받고 싶다고. 야구장에서 선수들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을 눈여겨봤나 보다. 벌써 제일 좋아하는 선수가 생기다니 역시 아이들은 빠른 것 같다. 글러브도 사 달라, 야구공도 사 달라, 야구가 배우고 싶다는 등 원하는 것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만큼 겸이의 경험치가 쌓이고 시야도 한층 넓어진 것 같아서 뿌듯했다.
야구장을 다니며 삼성, 한화, 롯데, 기아, 두산, LG의 응원을 본 결과 전부 웅장했고, 그중 LG가 팬이 제일 많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LG트윈스 직관을 가보고 싶었다. KT위즈가 다 좋은데 신생 팀이라 팬이 적어서 응원이 약한 것 같아 아쉽다고 했더니 남편이 말했다. 다른 오래된 팀들도 그런 과정을 겪어 온 거고, KT위즈는 다른 팀들이 걸어간 길을 조금 늦게 걷기 시작했을 뿐이라고. 오래된 팀도 좋지만 신생 팀의 역사를 함께 쌓아가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처음부터 팬 많고 1등인 팀을 응원하기보다는 함께 1등으로 만드는 과정이 더 값질 거라고 말하면서 KT위즈로 정착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
남편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그저 팬 수 때문이라면 소수의 특별함을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KT위즈 tv를 구독하여 매일 보면서 호수비에 짜릿함을 느껴왔고, 선수들에 대한 관심도 키워오던 중이었다. 2군에 있긴 하지만 엄청 애정하는 선수도 있다. 어쩌면 이미 KT위즈에 스며들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100년을 위한 10년의 여정 중인 KT위즈를 응원하는 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