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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Dec 14.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며 기쁘게


 기침이 났다. 처음엔 금방 떨어지겠지 싶었던 기침은 3주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덕분에 모든 모임들, 약속들을 취소해야 했다. 치과 치료 중이던 오른쪽 어금니도 완전히 치료를 완료하지 못한 채 예약을 계속해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온갖 비타민과 쌍화탕, 홍삼, 도라지청 등을 먹고 외출을 삼가며 극진히 충전했음에도 기침은 떨어질 듯 안 떨어지며 나를 농락했다. 기침이 너무 오래가니 폐 사진을 찍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내과에 갔다. 내과 선생님은 나를 진찰하시더니 목도 멀쩡하고 폐도 멀쩡하다고 하셨다. 알레르기 검사를 해보는 방법도 있지만 기침도 안 심하고, 기침 외에 다른 증상이 없으니 일단 약을 한 번 먹어보자고 하셨다. 이비인후과 약으로 안 잡히던 내 기침은 내과 약을 먹고 차츰 나아졌다. 이제 고생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왼쪽 어금니가 깨졌다. 그것도 그림책 모임 송년회를 나가기 한 시간 전에. 결국 나는 송년회 대신 치과를 가야 했다. 급하게 치과 치료를 받았고, 오른쪽으로만 음식을 씹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다음 날 있는 저녁 모임은 갈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일찍 끝날 줄 알았던 남편의 현장에 문제가 생겼다. 남편은 많이 늦을 것 같다며 모임에 함께 못 갈 것 같다고 했다. 세 가족이 모두 모이기로 한 자리였지만 하는 수 없이 아이랑 둘이 다녀오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시작된 복통에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오시는 그분이 하필 이 순간에 오신 것이다. 나는 밀려오는 통증에 얼른 진통제를 먹고 침대에 누웠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여태 계속 송년회도 못 가고 모임도 못 가고 집에만 있다가 이제 겨우 모임 좀 나가보려고 하는데 일이 계속 꼬이니 너무 속상했다. 외출하지 말라는 건가? 왜 이렇게 자꾸 꼬이지? 밀려오는 부정적인 마음을 진정시키고 멍하니 있다가 기도를 했다.             

 “하느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하루를 기쁘게 보내겠습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을 좋아한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 아니 힘들지만 그만두고 싶지 않을 때 자주 떠올리는 말들 중 하나다. 몸도 정신도 아프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야 하니까 힘을 내고 싶었다. 기도를 하고 나니 몸이 가뿐해지는 느낌이 들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이와 모임에 가려고 나서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일 처리가 빨리 돼서 지금 끝났어. 바로 출발할게.”

 남편이 같이 모임에 갈 수 있게 되자 갑자기 복통도 사라진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은 즐겁게 모임을 잘 다녀올 수 있었다.

 내가 매일 아침 학교 가는 아이를 배웅하며 현관 앞에서 해주는 말이 있다. 아이의 이마에 십자가를 그어주며 “하느님의 자녀 안젤로, 오늘도 주님의 은총 속에서 평안하고 기쁨 가득한 하루 보내세요.”라고 말해준다. 잠들기 전에는 기쁨을 찾는 시간을 가진다. 오늘은 어떤 것이 기뻤는지 이야기하고 감사기도를 올린다. 기쁨은 놓치기 쉽기 때문에 자주 찾아야 하고, 감사는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단어이기에 그 자체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감사와 기쁨은 입에 올리면 올리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으로 남은 하루를 보내겠다고 기도를 올리자 하느님께서 응답해 주신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기쁨과 감사를 자주 입에 올린다. 그리고 사랑의 신비를 느낀다. 나는 하루하루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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