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이의 두 번째 여름방학이 돌아왔다. 작년에는 방학 때마다 오전에 특강을 넣었는데, 이번 방학은 아무것도 없이 보내보기로 했다. 오전에 많은 것들을 함께 하고 싶었는데, 정작 우리는 매일 학교 숙제를 하느라 허덕이고 있다. 선생님께서 수학책 두 단원, 수학 익힘 책 두 단원, 총 네 단원을 그림까지 전부 그려서 노트에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셨기 때문이다. 아주 어마어마한 양의 숙제였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수학책 1장, 수학 익힘 책 1장씩을 노트에 써야 하는 양이었다. 처음에 겸이는 1장을 쓰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적어도 하루에 2장씩은 꼭 써야 하는데, 지금은 시간이 좀 줄긴 했지만 여전히 이 긴 숙제 시간을 힘들어한다. 나도 굉장히 힘들다. 그냥 쭉쭉 따라서 쓰면 되는 건데 왜 이렇게 더딜까? 한 문제 쓰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게 저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일인가? 이런 답답함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들쭉날쭉 물결 같은 글씨체와 엉망진창인 띄어쓰기, 그리고 숨 쉬듯 껴 넣는 자체 휴식시간들.. 이렇게 더딘 속도로 힘들어하면서도 문장 하나, 단어 하나, 그림 하나도 빼먹을 수 없다는 깐깐함까지. 이 모든 것을 지적 없이 지켜봐야 하는 나는 너무나 고통스럽다. 이왕이면 또박또박 바른 글씨로, 똑바른 띄어쓰기로, 그림도 자와 색연필을 사용해 깔끔하게 그렸으면 좋겠는데 겸이는 그렇게 할 여유가 없다. 겸이가 내 마음에 들게 숙제를 하려면 겨울방학 두 달도 모자라는 속도다. 그래서 모든 걸 못 본 척한 채, 응원만 해야 하는 겸이의 숙제 과정이 괴롭다. 3주째가 된 지금, 달라진 건 조금 줄어든 숙제 시간 정도이다. 맞춤법(책 보고 따라 쓰는 건데 왜 틀리는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지만) 틀리는 것은 타협 없이 지우고 고쳐 쓰게 하는데, 대체 언제까지 같은 부분에서 계속 틀릴 것인지 모르겠다.
매일 아침마다 그 숙제를 제일 먼저 해 놓고 싶은 나와 하루 끝까지 미뤘다가 하고 싶은 겸이의 대립이 이어진다. 방학 전날까지 타이트하게 정해져 있는 숙제 양에 마음이 조급하다. 하지만 겸이는 숙제를 미리 좀 더 해놓자고 하면 싫다고 난리가 난다. 하루도 여유 없는 이 현실에 숨이 막히는 건 나뿐이다. 내가 겸이였다면 방학하자마자 몰아서 이 지긋지긋한 숙제를 빨리 다 끝내 버렸을 텐데.. 왜 내가 겸이의 숙제로 고통받아야 할까? 과연 이 숙제를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인 걸까? 선생님께 하소연하고 싶을 정도다.
싫은 거, 어려운 것을 먼저 해치우는 나와 쉬운 거, 하고 싶은 거 먼저 하는 겸이. 맛있는 건 아꼈다가 맨 마지막에 먹는 나와 맛있는 걸 제일 먼저 먹는 겸이. 다 끝내고 쉬는 나와 중간중간 쉼표가 많은 겸이. 시간 계산해서 효율적으로 쓰고 싶어 하는 나와 여유롭게 시간을 만끽하는 시간 부자 겸이. 우리는 정말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부쩍 많이 느끼는 요즘이다.
오늘은 학원 숙제로 오전을 다 보내버려서 학교 숙제를 못 했다. 오후엔 겸이 학원이 촘촘해서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또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하다. 언제나 내 예상 시간을 두 배로 늘리는 겸이의 능력 덕분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계획 차질’을 매일 겪고 있다. 그럼에도 늘 겸이를 상대로 계획을 세우는 나와 늘 두 배의 시간으로 넉넉하게 갚아주는 겸이의 반복되는 하루가 웃프다. 내가 꿈꿨던 여름 방학의 우리 모습은 이게 아니었다.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함께 많은 것들을 하며 쉬고 싶었던 방학이었다.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드는 여름 방학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이 한 가지라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