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무조건 100점이 목표야!”
한자 급수 시험을 접수하며 아이에게 말했다. 작년 8월에 서당을 처음 다니기 시작한 아이는 그달 말에 한자 급수 8급 시험을 봤었다. 그리고 올해 8월엔 준5급 시험에 도전했다. 나는 아이를 응원하는 차원에서 같이 준5급 시험에 응시했다. 방학 동안 함께 공부하고 같은 시험을 치르는 것도 아이에게 새로운 자극과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아이의 경쟁심을 자극하기 위해 100점이 목표라는 허세를 부려봤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아이는 해맑게 엄마가 꼭 100점 맞는 걸 보고 싶다며 응원을 했다. 아이의 목표를 묻는 내 질문에는 시험은 원래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보는 것이고, 이번에 떨어지면 더 공부해서 다음 시험을 보면 된다는 오묘한 답을 하며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
어쨌든 뱉어 놓은 말이 있으니 나도 나름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나에겐 초등학생 때, 청학동에서 무려 한 달 동안 사자소학을 달달 외웠던 경험이 있다. 많이 오래되긴 했지만 그때 공부했던 세포들이 조금 공부하면 분명 깨어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한자 시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준5급을 만만하게 본 것도 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들여다본 준5급 한자들은 은근히 어려웠다.
시험에는 8급~준5급 선정 한자와 더불어 교과서 한자어가 나온다. 8급~준5급 선정 한자만 알면 되는 줄 알고 할 만하다며 여유롭던 나에게 교과서 한자어는 골치 아픈 존재였다. 경제, 유통, 대조, 박람회, 선택, 연상, 퇴적, 축척 등 너무나 어려운 63개의 단어들이 잔뜩 있었다. 게다가 교과서 한자어까지 다 외워야 한다는 사실을 시험 보기 일주일 전에 알게 되어서 더욱 초조했다. 시험공부만 하면 되는 학생이 아닌지라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그래도 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틈나는 대로 열심히 공부했다. 아이는 그런 나를 보며 “엄마 열심히 하네.”, “엄만 너무 꼼꼼해.”등의 말들을 건넸다.
시험이 끝나고 나오니, 훈장님께서 나에게 다가오셨다. 아이가 엄마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고 하셨다. 엄마가 같이 시험을 치른다는 것, 엄마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 그래서 모의시험 점수가 계속 97점이 나온다는 것을 말하며 엄마를 엄청 자랑스러워했다는 것이다. 아이도 서당에서 수업태도가 좋았고,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고 칭찬하셨다. 집에서 공부하는 나를 보면서도 본인은 끝까지 자신의 속도를 고수했기 때문에 몰랐던 사실이다. 아이는 집에서 내색을 안 했던 거였다. 훈장님 말씀에 내가 아이에게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대로 이루어져서 기뻤고 보람을 느꼈다.
이번 시험공부를 통해 나도 느낀 바가 있다. 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눈꺼풀이 무거워 꾸벅 졸 때도 많았다. 그런데 아이는 가끔 딴생각을 하며 자체로 휴식을 취하긴 하지만 졸지는 않았다. “겸아, 너 정말 대단하다! 어쩜 졸지도 않고 책상에 앉아 있니! 대단해!” 아이가 책상에 진득하게 앉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칭찬이 나왔다. 학생의 마음을 다시 상기하게 된 것이다. 역시 시험공부는 굉장히 고단하다는 것, 그렇지만 시험 끝에 따르는 성취감 또한 굉장히 크다는 것도.
나는 앞으로도 아이와 함께 시험을 볼 생각이다. 점점 높은 급수로 올라가며 공부하는 과정과 시험 경험을 계속해서 쌓아 줄 것이다. 이렇게 쌓아 올린 자양분은 아이에게 믿는 구석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내 준5급 시험 점수는 결국 97점으로 그쳤지만 다음 5급 시험 목표는 또다시 100점으로 잡고 시작할 것이다. 다음 시험엔 목표를 이뤄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물론 100점을 맞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