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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운진 Jun 18. 2018

작은 서점이 대형 서점에 맞서는 유일한 전략

취향을 저격한 경험의 시대다

이 글의 구성

- 서점의 양극화 1, 서점은 더 커지고 있다

- 서점의 양극화 2, 서점은 더 작아지고 있다

- 취향을 총합하기 위해 규모를 키우는 대형서점, 독립서점은?

- 결국 이젠 취향을 살린 경험의 시대다


 현재 개인적으로 독립서점 매거진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 글은 구체적으로 독립서점 한 곳 한 곳을 다루기에 앞서 제 관점을 소개하고자 작성한 글입니다. 서울에 위치한 17개 독립서점을 돌면서 느낀 감상과 경험을 토대로 작성됐기에 결코 정답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으로도 해석할 수 있구나!" 정도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방문했던 독립서점 리스트 17 (ver. 18.6.16)

망원 - 어쩌다책방
선릉 - 최인아 책방
성수 - 책방 사춘기
옥수 - 목수 책방, 프루스트의 서재
을지로 - 노말 에이
종로 - 껌북 바나나, 베란다 북스, 서점 림, 서촌 그 책방, 슈뢰딩거, 책방 이음
합정 - 당인리 책 발전소, 비플랫폼
해방촌 - 고요서사, 별책부록, 스로리지북앤필름


*커버 이미지 출처. 퍼니플랜


서점의 양극화 1, 서점은 더 커지고 있다


교보문고 합정점 내 아트상품 전용 코너 에움 출처. 교보문고
대형서점 빅3는 3년 동안 매장수가 30% 증가했으며, 지난 10년 동안 서점의 대형화는 하나의 트렌드였다

 교보문고는 더 이상 책만 팔지 않는다. 위 사진은 교보문고 합정점에 위치한 아트상품 전용 코너 예움이다. 화가들의 그림처럼 아티스트의 작품을 활용한 아트상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코너다. 이처럼 최근 교보문고 매장에서 서점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고 있다. 합정점의 경우 책을 취급하는 문고는 469평, 잡화를 취급하는 핫트랙스는 200평이며 평촌점은 문고 260평, 핫트랙스 140평이다. 어림잡아 교보문고 매장 면적의 1/3은 책이 아닌 잡화로 채워지는 셈이다. 이렇듯 교보문고만 봐도 서점의 역할은 변하고 있다. 츠타야 서점에 비한다면 많이 부족하지만, 과거 책만 파는 곳에서 오늘날 취향이 반영된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아마존의 롱테일 효과와 관련이 깊다.   


출처. http://www.joinc.co.kr

 롱테일은 미국의 인터넷 비즈니스 잡지 와이어드의 크리스 앤더슨 편집장이 만든 개념으로, 파레토 법칙 아래 무시받던 80%의 숨겨진 영향력을 강조한다. 반면 파레토 법칙은 매출 상위 20%가 만들어내는 경제적 효과가 나머지 80%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개념이다. 롱테일 법칙이 부상할 수 있게 된 건, 온라인 덕분이다. 


온라인의 등장은 오프라인의 물리적인 한계로 인해 선택과 집중이 강요되던 시절의 끝을 알렸다.


 예를 들어, 아무리 큰 서점이라도 모든 책을 가져다 놓고 팔 수 없다. 반면 온라인 서점이라면 모든 책을 쇼핑몰에 등록해놓고 팔 수 있다. 매우 단편적으로 썼지만, 이런 80%의 가능성에서 시작한 게  바로 아마존이다. 또 이런 80%는 개인의 취향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 온라인 서점은 싫지도 않지만 좋지도 않은 베스트셀러 대신 남은 싫어해도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맘껏 살 수 있다. 결국 사람들은 더 이상 베스트셀러로 매대가 채워진 오프라인 서점에 갈 이유가 없어졌고, 오프라인 서점의 고객 점유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오프라인 서점은 베스트셀러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고객의 시간을 점유해야만 했고, 서점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의 공통된 취향을 공유하고 라이프스타일을 완성해주는 여러 가지 카테고리 상품을 제안한 것이다. 즉 대형서점들은 취향의 총합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서점의 양극화 2, 서점은 더 작아지고 있다


왼쪽은 선릉역 인근 최인아 책방이다. 오른쪽 자료의 출처는 퍼니플랜

 독립서점은 대형서점과 다르다. 내가 다녀온 17개 독립서점 중 가장 보편적인 감성을 가졌던 최인아 책방이다. 취향이 강한 다른 독립서점과 다르게, 그 취향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책이 많았다. 분명 지난 3년간 30% 가까이 늘어난 대형서점과 다르게 소형서점은 줄고 있다. 하지만 최인아 책방 같은 독립서점은 늘고 있다. 2015.9.1~2017.7.31 기간 동안 퍼니 플랜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저 중 31곳이 2017년에 개점한 독립서점이라고 한다. 이는 전체 독립서점의 20%에 해당하는 수치로, 기간으로 따지면 한 주에 1개꼴로 새로운 독립서점이 등장했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독립서점에서 책만 팔아서 살아남기는 정말 힘들다. 내가 다녀왔던 서점 중 많은 곳들이 커피는 물론 브로치처럼 굿즈를 팔거나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독립서점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어려운 경영환경에도 독립서점이 꾸준히 늘어나는 이유는 위 롱테일 법칙처럼 우리의 취향이 정말 다양하고, 그 취향에 대한 욕구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독립서점은 더욱 마이크로한 취향을 저격하며, 차별화된 모습을 드러낸다.

취향의 수는 사람의 수와 비례한다


 따라서 취향의 총합을 위해 서점은 더욱 커지고, 더 세분화된 취향을 위해 서점은 더욱 작아지고 있다.


*독립서점 : 대규모 자본에 의지하지 않고, 서점 주인의 취향과 관점이 반영된 서점으로, 공간 디자인부터 책까지 모든 것에 취향과 관점이 녹아있어 차별화돼 서점이다.


취향을 총합하기 위해 규모를 키우는 대형서점, 독립서점은?


왼쪽은 교보문고 일산점 전경, 오른쪽은 교보문고가 내놓은 디퓨저 '책향'으로도 불린다

 교보문고를 비롯한 대형서점은 넓은 매장을 확보하고, 공간 디자인을 비롯해 공간의 질을 높이는데 집중했다. 이를 통해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상품들을 고객들이 편하게 누릴 수 있게끔 기획했다. 이 기획의 끝판왕은 교보문고의 디퓨저가 아닐까 한다. 공간을 고민하는 패션, 호텔업계는 과거부터 그들만의 시그니처 향을 내놓곤 했다. 그런데 서점으로선 교보문고가 처음이다. 교보문고가 디퓨저를 상품화한 이유는 바로 고객 덕분이다. 오래전부터 매장 디퓨저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고 한다. 즉 디퓨저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려는 교보문고의 노력과 고객의 욕구가 교차하면서 만들어진 상품이다. 그렇다면 독립서점은 세밀한 취향을 고객에게 어떻게 제안할까?


17개 독립서점에서 공통적으로 느꼈던 건, 바로 차별화된 경험이다

 17곳 독립서점에서 느꼈던 경험은 크게 3가지로 구성돼있다. 바로 '취향', '공동체', '맥락'이다. 그렇다고 모든 독립서점이 3요소를 충족했던 건 아니다. 도리어 2가지 혹은 1가지만 충족했던 독립서점도 있다. 하지만 모든 독립서점이 공통적으로 충족했던 요소는 바로 '취향'이다. 앞서 대형서점도 그렇고 독립서점도 그렇고, 취향이 핵심이다. 개인의 취향은 곧 개인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애리조나 대학과 타이슨 대학이 진행한 연구가 있다. 책 형태에 따른 사람들의 인식과 반응의 차이를 지켜본 연구다. 책의 형태란 종이책과 e북을 뜻하는데, 텍스트를 제외하면 공통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 두 가지에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책이 소유자의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 되어 일종의 페르소나가 된다는 점이다. 종이책의 경우 개인의 서재를 통해 페르소나로서 책의 역할이 더욱 강해지며, e북은 '공유' 기능을 통해 강화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e북 서비스 간 공유 옵션의 유무는 고객 인식에 큰 영향을 줬다.



 이는 독립서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 독립서점은 혜화에 위치한 슈뢰딩거다. 고양이 관련 서적 서점으로 고양이에 대한 정보, 에세이, 일러스트 등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엄청난 생산성이나 효용을 주는 게 아니더라도, 그냥 무언갈 좋아하는 것도 하나의 취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옥수 근처 독립서점으로 목수책방이 있는데, 생태와 자연를 취향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방이다. 취향은 정말로 다양하다.


서촌에 위치한 서점 림 출처. 스페이스 클라우드

 두 번째 요소인 공동체(커뮤니티)는 지속성과 소통을 특징으로 한다. 아무리 좋은 경험도 일회성 소비로 그친다면, 경험이 추억이 되지 못할뿐더러 이를 기획한 주체도 지속 가능한 운영을 할 수 없다. 따라서 공동체를 통해 단골을 만들어야 한다. 공동체는 하나의 취향을 공유하며, 장기적인 소통을 통해 끈끈한 공존관계를 만든다. 위 사진은 얼마 전 주인분 사정으로 문을 닫게 된 서점 림이다. 컨셉은 물론 깔끔한 공간 디자인도 정말 마음에 들었고, 3요소 모두 잘 녹아있는 독립서점이었다. 문을 닫는다는 페이스북 게시글을 처음 접했을 때 너무 아쉬웠다. 서점 림은 '이 달의 책'을 선정해 한 달 동안 오로지 단 한 권의 책만 파는 서점이다. 책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주제는 언제나 심리와 관련됐다. 이 서점이 한 달에 한 권을 판매했던 이유는 '이 달의 책'을 가지고 긴 호흡을 갖고자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련 영화를 보거나, 서평을 나누거나, 정말 다양한 오프라인 활동이 있다. 이런 커뮤니티 활동은 강력한 결속력을 만들었다. 그렇기에 폐점 소식이 더욱 안타깝다.


출처. 중앙일보

 마지막으로 맥락은 다른 요소에 의존적이며, 설계자가 직접 만들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진다. 다만 앞에 2가지 요소의 차별화를 돕는 가장 강력한 장치다. 맥락은 매장이 위치한 지역이 대표적이다. 그렇기에 맥락은 그 지역만이 갖는 문화, 역사가 될 수 있다. 서촌 그 책방은 서점 림과 마찬가지로 서촌에 위치해있다. 오랫동안 한반도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많은 문화재가 있는 종로에 위치해, 한옥을 개조해 운영되고 있다. 서점 내 선별된 책들 대부분이 한국 저자의 책이다. 즉 가장 '종로'에 걸맞은 서점인 동시에 가장 한국적인 서점이다. 이외에도 눈길을 끌었던 건, 사진에서 보이듯 책 표지에 책에 대한 코멘트가 길게 적혀있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디피용 책 여기저기에 책갈피처럼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고, 그 페이지를 펴보면 밑줄과 짧은 코멘트가 적혀있었다. 서촌 그 책방은 종로에 위치한 독립서점보단, 가장 한국적인 한국 책 박물관에 가까웠다.


 다만 유의할 점이 하나 있다. 좋은 독립서점이 반드시 3요소를 모두 충족한 서점은 아니다. 2가지 혹은 1가지만 충족시켜도 충분히 좋은 독립서점 될 수 있다. 3가지 요소 간 비중을 정하는 건 기획자의 몫이다. 중요한 건 기획된 경험이 고객의 기대치를 만족시켜줄 수 있냐다. 따라서 맥락적 요소가 없다고, 커뮤니티적 요소가 부족하다고 결코 나쁜 독립서점이 아니다.

 


이젠 취향을 저격한 경험의 시대다


나는 1독립서점 1책이라는 나만의 원칙이 있다. 샀던 책 중 기억에 남는 책들이다. 이 또한 하나의 취향이다. 왼쪽은 17곳을 돌아다니면서 들고다녔던 지도

 좋은 '경험'으로 무장한 독립서점은 분명 늘어날 것이고, 대형서점이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지금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결국 핵심은 취향이다. 과거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던 유니클로 회장 야나이 다다시는 사양산업으로 여겨졌던 의류업계에서 유니클로는 무엇이 달랐냐는 질문에, 현재화(顯在化)에서 차이가 있었다고 답했다. 


현재화(顯在化)란 분명히 눈에 보이는 형태로 표현하는 걸 의미하는데, 잠재 수요를 현실로 내보이는 걸 뜻한다.


 세상은 더욱 세밀해지고 있다. 때문에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서비스와 제품은 존재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많은 기업들이 취향을 저격할 경험을 설계하는데 고심하고 있다. 누군가는 유튜브나 넷플릭스는 누구나 좋아하는 소비스가 아니냐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서비스들의 핵심은 철저히 개인 취향이 반영된 콘텐츠다. 넷플릭스의 경우, 전체 예산 중 85%에 해당하는 80억 달러를 오리지널 콘텐츠에 투자했다. 유튜브는 정말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이 구독자의 취향을 저격한 콘텐츠를 선보인다. 더 이상 취향과 경험은 고민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대상이다. 빠르게 취향을 저격한 세련된 경험을 제공하는 게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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