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오티를 시작했다. 오티 일정과 함께 주-욱 근무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오티 첫날이 첫 출근인 셈이다. 나는 서울에서 분당까지 통근을 하기로 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6시 반에 출발했는데, 꽤나 막혀 1시간 30분이 걸렸다. 얼른 병원 내 숙소를 신청해야겠다고 다짐한 시간이었다.
첫 출근은 정말 설렌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새롭고, 건물의 위치도 새롭다. 내가 들어가려는 문은 항상 우연히도 폐쇄된 문이기 때문에 최대한 정문을 사용한다. 혹시 늦을 까봐 정해진 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한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어색하게 인사를 해본다. 여러모로 참 어색하기 짝이 없는 시작.
이런저런 교육들을 하루 동안 참 많이 받았다. 이건 하면 안 되고, 저건 하면 안 되고, 이건 해야 하고 저건 꼭 해야 하고 이런 규정들이 참 많은 것이병원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교육을 들으며 약간은 갑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참을 안에서 교육 듣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가려 바깥을 나왔는데, 후! 갑자기 뛰고 싶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오후 교육을 마치고 미리 예약해놓은 숙소로 돌아가 짐을 간단히 정리하고, 옆에 있는 마트에 가 필요한 물건들을 좀 사놓은 다음 곧바로 러닝 준비를 했다.
병원 바로 밑에 굉장히 뛰기 좋은 공원이 있다. 4년 전 이곳에 교육받으러 왔을 때, 새벽에 뛰고 싶은 마음이 들어 차도 없는데 터벅터벅 걸어가 뛰었던 곳이다. 차를 타고 내려가 주차한 뒤 뛰니 한결 더 공원이 가깝게 느껴졌다.
날씨는 꽤 추웠고, 바람은 생각보다 싸늘했다. 하지만, 숙소의 적막과 병원의 낯섦이 주는 압박감을 꼭 벗어내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러닝을 시작했다. 러닝을 하면서 공원 호수가 점점 빨갛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노을의 시작부터 끝까지, 노을의 시간 내내 뛸 수 있었다. 그 시간에 러닝을 나왔다는 게 행운처럼 느껴졌다. 분명 공기는 차가운데, 노을을 바라보면 참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날 방치했던 내 다리이지만, 이렇게 뛰기 시작하니 제법 기능을 했고, 하루 종일 차가웠던 내 몸통도 얼마 지나지 않아 얼른 데워졌다.
애를 쓴 하루였다. 잘 해내고 싶어서 긍긍했다. 처음이니까, 처음을 잘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몸에는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고, 어깨 근육이 뭉쳤다. 손발이 냉랭해졌다. 뛰면서 나의 경직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긴장했는지도. 알았다. 그리고 나의 이 시작이 마음에 들었다. 오랜만에 잘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열정이 피어오르는 것만 같아서. 퍽 마음이 흐뭇했다.
호수 둘레를 뛰면서 갑자기 세게 뛰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그러면 정말 열심히 다리를 멀리 내디뎠다. 그리고 팔을 뒤로 크게 내던졌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러면 정말 빠르게 심장이 뛰었다. 이 기분이 좋았다. 금방 힘들어 속도가 줄었지만, 그래도 가속력을 낼 수 있는 그 순간의 나의 에너지가 좋았다.
지금 나는 1년의 시작선에 서있다. 스퍼트를 낼 수 있는 연료를 가득 실어 약간은 경직된 초심자. 나는 이 초심자가 너무 소중하다. 금방 지쳐버릴 것을 너무 잘 알아서 속도가 금방 늦어질 거라는 것이 너무 자명하지만 이번만큼은 더 길게 달려보고 싶은 마음. 그 처음의 순수함은 약한 만큼, 무모한 만큼, 나에게는 더 애틋하다. 그래서 내 마음을 더 붉게 태우고 조금이라도 더 열정을 가지게 한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6km를 뛰었다. 손끝이 얼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정신을 차려 뜀을 멈췄다. 다 뛰고 나니 날이 어둑해졌다. 뜀을 마친 후 지금의 순간을 꼭 기록해두고 싶었다. 나는 지금 초심을 불태우는 시작자이다. 마냥 쉽고 편하진 않겠지만, 겨울 호수의 노을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정으로 따뜻하게 잘 시작해 볼 수 있을 거야.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