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믿지 않지만 아무래도 맥주는 내 운명인 것 같다
절주일기 #2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나의 오늘 저녁도 그러했다. 애초에 내가 절주를 결심했지 금주를 결심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까 오늘처럼 이유가 있는 날에는 절주 4일 만에 맥주를 먹을 수도 있는 것이다.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건 엄연히 해명이다.
운명이라는 게 있을까? 신 같이 초월적인 존재가 ‘너네 둘이 행복하게 짝짝꿍하렴’하고 정해준 운명. 혹은 ‘너는 평생 이걸 하면서 먹고살아야 한단다’하고 정해준 운명. 딱히 운명을 믿지는 않지만 살다 보니 운명 같은 순간을 마주할 때는 있다.
예를 들면 가끔 나의 동거인과 내가 운명의 짝인 건 아닐까 생각한다. 비혼이라는 개념조차 모르던 17살 때, 엄마에게 비혼을 선언했었다. “엄마. 나 결혼 안 할래.” 나의 선언에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그래, 하지 마. 안 해도 돼.”하고 대답했다.
그 이후로 10년이 넘도록 결혼을 안 했다. 20대 초반 잠시 사랑에 미쳐 결혼을 할 수도 있겠다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어찌어찌 혼자인 채로 서른 살을 맞았다. 나의 동거인은 나보다 한 살 많은 여성으로 일찍이 비혼을 결심하고 혼자 살아가던 중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갈 곳 없어진 나를 불러 두어 달간 잠시 지내게 해 주었는데 그게 이어져 아예 함께 살게 되었다.
우린 취미가 비슷한데 원래 비슷했다기보다 함께 어울리며 취향이 물들었다. 예를 들면 동거인은 원래 소주파였는데 맥주파인 나에게 스며들어 소주보다 맥주를 더 즐기게 되었다. 나는 원래 운동을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동거인에게 스며들어 헬스를 열심히 하고 있다. 동거인은 원래 추리물도 예능도 즐기던 사람이 아니었으나 나에게 스며들어 여고추리반과 크라임씬 다음 시즌을 기다리고 있다.
한쪽이 한쪽에 스며든 것뿐 아니라 동시에 빠지게 된 것도 있다. 바로 여자배구다. 선택적 운명론자로서 말하자면 배구야말로 정말 운명처럼 다가왔다. 올해 1월 우연히 책을 한 권 읽었다. 비혼에 관한 에세이였다. 심지어 내가 직접 고른 것도 아니다. 엄마가 제목만 보고 구입한 책이었는데 무슨 내용인 줄도 모르고 구매하셨다고 한다. 본가에 갔다가 식탁에 올려져 있던 책이 흥미로워 빌려왔다.
그 책에 겨우 몇 줄 분량 여자배구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배구가 재미있나?’ 호기심에 검색해 보니 마침 배구 시즌이었고, 며칠뒤 차로 30분 거리에서 경기가 있었다. 마침 동거인과 시간이 맞았고, 그렇게 보러 간 첫 경기에서 극적으로 우승을 했다. 여자배구 팬 2명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이게 운명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우리는 같이 살고, 둘 다 동시에 여자 배구에 빠졌고, 둘 다 맥주를 좋아한다. 살다 보면 운명 같은 순간들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그런 순간들을 아주 극적으로 표현하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 운명의 순간인 줄도 모르고 지나갔다가 뒤늦게 아, 그게 운명의 순간이었구나! 깨닫는 것이다. 우연히 본가에서 그 책을 발견한 순간이 바로 운명의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심지어 나는 원래 스포츠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치킨집에서 축구를 본 적도 없고 마지막으로 본 월드컵도 2002 월드컵이다. 그것도 당시 8살 무렵이라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런 내가 운명처럼 배구에 빠져들어 오늘도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그러니까 배구 경기가 있는 날 동거인과 맥주를 마시는 건 나의 운명인 셈이다. 그 뒤로 집에서 티비로 몇 번의 경기를 즐기고 직관도 몇 번을 더 갔다. 이기는 날도 있었고 지는 날도 있었으나 맥주가 빠진 날은 없었다. 이기면 이기는 대로 승리의 축배를, 지면 지는 대로 패배의 쓴맛을 즐겼다. 경기가 아쉽게 흘러갈 때면 시원한 탄산으로 가슴이라도 뚫어줘야 했다. 결국 절주 4일 만에 주량을 잔뜩 넘겨 울렁거리는 속을 붙잡고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