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주일기 #3
알콜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매일 밤마다 고민하고 절주일기까지 쓰고 있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사실 이미 맥주를 참는 방법을 알고 있다(!)
모순적으로 들리겠지만 한 번만 다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원래 다이어트도 평생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었던 사람은 다이어트 방법을 모른다. 온갖 방법들을 꿰고 있는 쪽은 수차례 다이어트 실패와 요요를 겪으며 ‘진짜로 다이어트해야 하는데…’라는 말을 달고 사는 쪽이다. 다만 보통 그런 쪽은 적당히 먹고 열심히 운동하는 정석적인 방법보다는 조금 더 쉬워 보이는 다른 방법을 선호한다.
나의 절주도 마찬가지다. 금주계에서 정석적인 방법은 술자리를 줄이고 집에 술을 사다 놓지 말고 술 생각이 나지 않도록 규칙적인 식사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운동을 하고 등등이 있다. 아마 그다음 단계는 약물치료나 입원치료가 있겠지만 거기까진 아직 시도해 본 적이 없다.
어쨌든 나는 정석은 아니지만 효과가 아주 좋은 절주법을 여러 가지 알고 있다. 혹시 나처럼 절주를 시도 중인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공유해 본다.
더위는 더위로 이겨내는 선조들의 지혜를 따라 중독을 중독으로 이겨내 보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음주할 시간을 내지 못할 만큼 다른 도파민에 중독되는 방법이다. 나는 보통 게임에 중독된다. 혹시 아는지 모르겠는데 피시방에서는 주류를 판매할 수 없다. 아니면 소파에 누운 유튜브 숏츠 중독자가 되는 방법도 있다. ‘이것만 보고 맥주 사러 가야지..’라고 생각하면서 끝없는 숏츠를 계속 스크롤하는 것이다. 다만 이 방법은 원래 몸을 잘 일으키는 사람이나 냉장고에 맥주를 쟁여놓고 사는 사람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금주를 위해 정신과에서 처방받는 약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내가 말하는 약들은 산부인과나 피부과에서 처방해 준다. 나는 질염이나 아토피 때문에 종종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는다. 잠깐 가려운 정도는 그러려니 할 정도다. 산부인과에서 처방해 준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 사면 약사님은 꼭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약은 먹는 동안 절대로 술 드시면 안 돼요.”
그동안은 으레 하는 말이려니 했는데 어느 날 너무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왜요?”
“이 약 먹을 때 술을 마시면 약이 안 들어서 점점 더 센 약을 먹어야 해요.”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무서운 이유였다. 이후로 처방받은 약을 먹는 동안은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었다. 피부과에 진료를 보러 가도 비슷한 약을 처방해 주어서 일 년에 1-2번은 이 방식으로 2-3주간 금주를 하고 있다.
나는 편두통과 빈혈을 종종 앓는다. 얼마 전에도 하루종일 일을 했더니 두통이 심해져 타이레놀을 먹었다. 사실 경미한 감기 증상이 있을 때는 약을 먹으면 맥주를 마실 수 없으니 약을 먹을지 맥주를 먹을지 고민하곤 한다. 그런데 편두통이나 빈혈이 찾아오면 신기하게도 맥주 생각이 싹 달아난다. 아무래도 증상이 숙취와 비슷해서가 아닐까 싶다.
여담인데 타이레놀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것은 크게 상관이 없다고 한다. 검색해 보고 카페도 다녀왔다.
맥주와 함께 하는 저녁을 즐길 시간 자체를 없애버리는 전략이다. 이 방법은 몇 시가 됐든 자기 전에 한잔 할 체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별로 유용하지 않을 것 같다. 다행히 나는 늦어도 12시에는 자야 하는 사람인지라 12시가 다 되어 귀가하면 아무리 피곤해도 내일을 위해 씻고 자야 한다. 다만 이 방법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다음날이 되면 ‘어제의 고생’에 대한 보상심리가 발동하는 건지 맥주를 참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금주에 강제성이 부여되면 의외로 참는 게 쉽다. 오늘 맥주를 마실지 말지 결정권이 나에게 있으면 그날을 넘기는 게 너무너무 어려운데 애초에 못 먹는 날이면 고민조차 크게 되지 않는다. 그 결정을 다른 사람이 대신해주는 것도 별로 효과가 없다. 건강검진 전날 같이 정말로 ‘먹을 수 없는’ 날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강제성이 부여되는 날은 많지 않고 대부분의 날들은 내가 스스로 결심하고 참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