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이어리 Apr 03. 2024

우리 오늘 사랑 이야기 좀 할래요?

여커치독#3

지난 3월 갑자기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다. 패딩을 입던 사람들도 얇은 가디건을 걸치고 나올 만큼 날이 풀렸다. 진해에서는 곧 벚꽃축제도 열릴 예정이란다. (글을 올리는 지금은 이미 축제가 끝났다.)


따뜻한 봄날 여자들끼리 모였다. 사랑을 주제로 각자 책 한 권씩을 들고왔다. ‘봄날’에 ‘사랑’ 이야기라니 얼마나 진부한가. 주제를 사랑으로 정한 진부한 인간이 바로 나다. 진부한 주제를 던졌을 때 평범한 이야길 가져올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범상치않은 이 여자들이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가져올지 궁금했다.


아니나다를까 모임장인 지영은 무려 <이누야샤>를 가져왔다. 인생을 걸만큼 치명적이었던 과거 연인 금강과 만난지 얼마 되지않은 새로운 연인 가영 사이에서 흔들리는 이누야샤에 대해 무려 30분이나 치열하게 토론했다. 그의 마음은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는 과연 가영을 사랑한 것인지? 가영에게서 금강의 흔적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얼굴이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설정 아래 가영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지?그렇다면 나는 과연 나쁘게 헤어진 이전 애인과 똑 닮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지? 내 애인의 이전 애인이 나와 쌍둥이처럼 닮았다면 어떨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여담이지만 재미있게도 이누야샤를 보지않은 모임원들은 모두 이누야샤는 결국 금강을 사랑했을 뿐이라는 쪽에, 이누야샤를 본 모임원들은 가영을 사랑했다 쪽에 손을 들었다.


사랑을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풀어낸 책을 가져온 모임원도 있었다. 애나 마친의 <과학이 사랑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사랑과 소유욕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간은 진화론적으로 상대를 소유하고자하는 본능을 지닌다고 한다. 여성은 수렵채집 사회에서 남성이 가져온 자원을 다른 여성과 나누지 않고 온전히 자신과 자녀가 사용하기 위해 한 남성을 독점하고자하는 욕구가 발달했다. 또 남성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리기 위해 여성의 몸에 다른 남성의 정자가 들어가는 것을 원치않았고 그것이 소유욕이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재미있게도 다른 모임원이 가져온 책으로 반박되었다. 마리 루티의 <하버드 사랑학 수업>이었다. 사랑을 할 때 소유욕을 느끼느냐 마느냐는 진화와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성향 차이일 뿐이라고 한다. 자연의 세계에 일부일처제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동물은 일처다부제를 어느 동물은 일부다처제 사회를 이루고 있다. 즉 일부일처제가 가장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도 소유욕이 본능이 아니라는 데 동의하는 책을 가져갔다. 민지형의 <나의 완벽한 남자친구와 그의 애인>이었다. 이 책은 폴리아모리에 관한 소설책이다. 폴리아모리는 1:1 독점 연애가 아니라 나의 마음이 향한다면 연애 관계가 가지처럼 뻗어나갈 수 있는 사랑을 말한다. 예전부터 나는 폴리아모리라는 개념이 신기했다. 일반적으로 사랑에는 애정과 신뢰를 비롯하여 성욕이나 소유욕 등 여러 감정이 포함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플라토닉 사랑같이 성욕이 없는 사랑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누군가는 소유욕이 없이 사랑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소설의 주인공 미래는 비혼주의자이지만 진지한 연애를 하고 싶어한다. 시원이라는 남성에게 자신과 오픈 릴레이션십 즉 폴리아모리 연애를 시작해볼 생각이 없느냐라는 제안을 받는다. 이런 저런 고민 끝에 그의 제안을 수락하고 연애를 이어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나 다비치의 노래 <두 사랑>처럼 사랑이 두 사람에게 동시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논의 대상이었다. 또 폴라아모리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질문이 나왔다. 우리가 사랑을 독점하고 일부일처제가 아닌 관계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혹시 사회적으로 학습된 감정인 것은 아닐까?


반면 아무에게도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무성애에 관한 책을 가져온 모임원도 있었다. 앤젤라 첸의 <에이스>였다. 이 책에서 인상깊었던 점은 무성애자가 낭만적인 관계를 원할 순 있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에게 로맨틱한 감정을 느낄 수 있지만 성적 끌림을 느끼지는 못하는 것이 무성애자라고 말한다. 무성애와 무로맨틱은 다르며 저자도 무성애의 범위를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고 한다. 다만 스스로를 정의하지 못한 무성애자들이 무성애라는 개념을 알게되면 정체성의 혼란을 줄일 수 있지않을까하여 책을 쓴 듯하다.


그 외에도 심리학적으로 사랑과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심리학자가 사랑을 기억하는 법>, 로맨스 판타지 소설 <두 손이 닿을 때 까지>, 애착 관계 등에 대해 말하는 <사랑수업>까지 총 8권의 책이 모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까지 이런 독서모임은 없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