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4번째 절주 결심

금주는 하기 싫은 알콜 중독자의 절주일기 #프롤로그

by 도이어리

이대로 외출한다면 과연 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바지가 버틸 수 있을까? 불안해서 결국 바지를 갈아입었다.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산 지 1년. 10kg이 불어났다. 1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셨다. 아니, 사실 친구와 같이 살기 전부터 최근 5년 정도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혼자 마실 때는 맥주만 마셨다. 친구와 같이 살게 된 이후로는 맥주와 안주를 같이 즐기기 시작했다. 턱살이 좀 늘어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나름 ‘이 정도면 아직 괜찮지’하며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오랜만에 입은 반바지가 낑겨서 불편했다. 불과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널널했던 바지다. 겨우 입고 내려다보니 지퍼가 마지막 힘을 다해 서로를 붙잡고 있었다.


마음만 잘 맞는 게 아니라 술 취향도, 술을 매일 마시는 습관도 잘 맞는 동거인과 함께한 1년은 이런 결과로 돌아왔다. 지금 내 몸무게는 64kg에서 66kg 사이를 오간다.


“키 168cm에 이 정도면 정상범주야. 괜찮아”

동거인이 날 위로한다. 인바디 검사 결과로는 정상과 과체중 사이쯤 되는 수치가 맞긴 하다. 하지만 체지방이 복부만 표준이상이라는 점이 조금 신경 쓰인다.


당장 작아진 바지를 보니 위기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 맥주와 안주로만 찐 살이다 보니 배만 둥그렇게 앞으로 튀어나왔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좋게 말해 3살 아이 같은 배, 나쁘게 말해 ET 같은 배 모양이다. 옷장 안에 있는 여름옷은 대부분 배가 살짝 드러나는 크롭티다. 1년 전 여름의 사진도, 3년 전 여름의 사진도 내내 비슷한 크롭티만 입고 있을 만큼 크롭티를 사랑했다. 오죽하면 크롭티가 ‘교복’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크롭티를 입기가 왠지 민망하다. 고민하다 결국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박스티를 입고 나간다. 살이 좀 쪘다고 좋아하는 옷을 못 입는 내 모습이 한국식 외모지상주의에 절여진 것 같아 속상하지만 그렇다고 크롭티 아래로 뱃살을 내밀고 다닐 용기가 나지는 않는다.


살만 쪘다면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온갖 면역성 질환들이 슬금슬금 다시 나를 찾아왔다. 제일 다시 보기 싫었던 질환은 아토피 피부염이었다. 그 외에도 ‘-염’으로 끝나는 질환들도 다시 만났다. 비염, 구순염, 질염 등등..


“맥주를 조금 줄이는 게 좋지 않을까?”


얼마 전에는 동거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충격이었다. 술을 싫어하는 사람이 날 걱정할 때는 ‘이 정도는 아직 괜찮아!’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매일 저녁 함께 ‘짠!’을 외치던 사람이 나의 음주 습관을 걱정하니 왠지 불안감이 든다. 지금 내 상태가 그렇게 심각한 걸까? 맥주에 대한 사랑으로 애써 외면하고 있던 현실을 이제 마주할 때가 온 것 같다. 건강을 되찾기 위해 술과 멀어질 때가 됐다.


...그래도 솔직히 금주는 못하겠다. 아직도 맥주는 지친 저녁을 달래주는 나의 소울 음료다. 매일 저녁마다 맥주는 하루 종일 쌓인 스트레스를 저 아래 어딘가로 쑥 밀어 내려준다. 소화시키지 못하고 집까지 끌고 들어온 더부룩한 마음의 짐도 개운하게 비워준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순간을 기념할 때에도 맥주는 내 옆에 있었고, 세상에 혼자인 것 같아 울고 싶었던 날에도 내 옆에 있었다. 행복의 반은 ‘고기와 함께 하는 맥주’로부터, 나머지 반은 ‘회와 함께하는 맥주’로부터 온다고 믿는 사람에게 금주는 너무 가혹한 결심이다.


...그렇다고 적당히 줄이지도 못하겠다. 그런 시도는 올해만 벌써 3번이나 시도했고 모두 실패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술을 좀 줄여야겠어.’했던 결심은 빼고 정말 본격적으로 다이어리에 기록해 가며 시도했던 절주만 3번이다.


올해 첫 번째 절주 결심은 1월 1일에 시작했다. 새해를 맞이해 사람들이 운동이나 영어 공부, 다이어트에 대한 의지를 다지듯 나도 절주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정확히 얼마나 지속됐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2월이 되었을 때 이미 잊힌 지 오래였다.


두 번째 절주 결심은 3월 중순에 있었다. 절주를 하며 절주 기록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패기롭게 브런치에 가입해 절주 일기 연재를 시작했다. 매일매일 쓰겠다고 마음먹었었지만 맥주를 참은 날은 글을 남기고, 맥주를 마신 날은 즐기느라 바빠 잊어버렸다. 3월 말 이후로 기록이 끊겼다.


그나마 가장 최근인 세 번째 절주 결심은 20일 정도 유지했다. 내내 참은 것은 아니고 며칠을 연속으로 마시고 하루 이틀을 참았다. 최대 기록은 5일 참기였다. 5일을 꾹 참은 뒤로 17일을 연속으로 내리 마셨다. ‘절주 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기가 머쓱해 절주를 멈췄다.


8개월 동안 3번을 대차게 말아먹고 9월 26일, 4번째 절주를 시작한다. 그동안의 절주 실패로 미루어볼 때 나는 적당히 즐기는 능력은 없는 사람인 것 같다. 매일 저녁 맥주를 마실지, 참을지 선택하려니 자꾸 유혹에 넘어가버린다. 때로는 맥주가 유혹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넘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략을 달리하기로 했다. 아예 뚝 끊어보기로 했다. 맥주와의 고리를 잠시동안 완전히 끊는 것이다. 일단 참자. 선택지는 없다. 마실지 말지 고민하며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는 저녁도 없다. 절주가 아니라 일시적 금주다.


딱 두 달만 참아보자. 사람의 뇌에서 알코올의 기운이 완전히 빠지는 데는 66일이 걸린다고 한다. 두 달이 조금 넘는 기간이다. 딱 2달. 2달 정도면 끊어볼 수 있을 것 같다. 2달만 먼저 끊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