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에게도 선포했다. 동거인이 내 말을 얼마나 믿었는지는 모르겠다. 동거인은 나의 금주 선언을 잘 믿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너무 많은 번복과 실패가 있었다. 금주 첫날 취소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번 금주도 시작하자마자 위기가 찾아왔다. 아침에 금주를 시작했는데 저녁이 되니 벌써 맥주가 먹고 싶다. 어차피 오늘이 1일 차인데 내일부터 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 저녁만 되면 이런 식이다.
러시아의 생리학자인 파블로프 씨가 한 유명한 실험이 있다. 파블로프 씨는 개를 데려다가 실험을 했다. 개를 묶어두고 매번 밥때가 되면 밥을 주기 전에 먼저 종을 쳤다. 댕댕댕. 종을 울리고 난 다음 개에게 밥을 줬다. 그걸 여러 번 반복했더니 나중에는 댕댕댕 종만 쳐도 개가 침을 흘렸다. 개의 뇌 속에서 종소리와 밥이 연결되어 실제로는 밥이 없더라도 침이 먼저 나오게 된 것이다.
파블로프 씨는 말도 안 통하는 개를 데려다가 실험할 필요가 없었다. 나를 데려다가 실험했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매일 종을 치고 공짜 맥주를 준다면 나는 보수를 받지 않고 실험에 참여할 의사도 있다. 심지어 개와 달리 인간인 나는 실험이 끝나고 인터뷰도 해줄 수 있다.
“오늘로 실험이 끝났습니다.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할게요.”
파블로프 씨가 말한다.
“네, 알겠습니다.”
뇌파측정기를 머리에 붙이고 있는 내가 혀가 꼬인 소리로 대답한다. 속으로는 행복했던 공짜 맥주가 끝났다는 사실에 슬퍼하며 동시에 파블로프 씨의 덥수룩한 수염 속 얼굴을 궁금해하고 있다. 저 수염을 기르는데 몇 년이나 걸렸을지도 가늠해 본다.
“종소리를 들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솔직히 처음에는 맥주나 빨리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종소리가 들리면 미친 듯이 갈증이 나고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습니다.”
나는 파블로프 씨가 원하는 답을 솔직하게 내놓는다. 파블로프 씨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다.
종소리는 없지만 매일 저녁이 되면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강렬한 갈증이 올라온다. 개의 뇌 속에서 '종소리'와 '밥'이 연결됐다면 나의 뇌 속에서는 '저녁'과 '맥주'가 연결된 것이다. 10년에 걸쳐 연결된 무의식의 고리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맥주 대신 탄산수를 얼음잔에 붓는다. 벌컥벌컥 탄산수를 연달아 마셔봐도 맥주에 대한 갈망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냉장고 속의 맥주는 아직도 나를 유혹하고 있다. 나는 유혹을 애써 외면하며 소파에 앉아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까지 맥주에 중독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러다가 문득 나의 첫 음주가 언제였는지 떠오른다.
초등학생 때 아빠와 밥을 먹고 있었다. 안방에 상을 펴놓고 함께 밥을 먹다가 목이 막혔다. 아빠가 머그잔에 마시고 있는 투명한 액체가 물인 줄 알고 들었다. 아빠는 내가 머그잔을 가져가는 걸 보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당시 나는 비염이 아주 심해 소주 냄새를 맡지 못했다. 소주 한 모금이 순식간에 입술을 타고 넘어 입 안으로 들어왔다. 토할 것 같은 맛이었다. 바로 뱉었다. 퉤퉤 거리며 입을 씻겠다고 호들갑 떠는 나를 보며 아빠가 막 웃었다. 일요일 점심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일요일의 아빠는 언제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빠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알콜 중독이었다. 아빠는 소주를 머그컵에 따라 마시는 사람이다. 아빠가 좋아하는 머그잔이 있는데 딱 반 병이 쏙 들어가 두 잔이면 한 병을 깔끔히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어릴 때 아빠를 보며 나도 아빠를 닮아 술을 잘 마실 거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저 맛없는 술이 맛있게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땐 내가 아빠처럼 술에 중독될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게 알콜 중독이라는 것도 몰랐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코끝과 볼이 새빨개지고 두 눈이 풀려 끊임없이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이나 알콜중독자라고 부르는 줄 알았다. 아빠는 ‘전형적인 알콜중독자’처럼 술에 취해 자식을 때리거나 소주병을 깨는 등 행패를 부린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빠는 이 부분에 굉장한 자부심이 있다.
고기능 알콜중독자라는 말은 나중에 알았다. 고기능 알콜중독자들은 성실하게 직장에 출퇴근하고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평판도 좋다. 한국에는 유독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고기능 알콜 중독이 많다고 한다. 나의 경우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고기능 알콜 중독이다. 의사에게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라 이렇게 글로 남기는 것이 조심스럽다. 그래도 두 분은 알콜 중독의 여러 기준에 부합한다. 특히 ‘술을 매일 마신다’는 기준이 그렇다. 두 분 모두 거의 매일 술을 마신다.
두 분이 알콜 중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도 위기감을 느꼈어야 했다. 부모 중 한 명만 알콜 중독이어도 자녀가 알콜 중독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부모가 모두 알콜 중독일 경우에는 자녀가 알콜 중독이 될 확률이 10배나 높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에는 종종 알콜 중독자인 부모 때문에 힘든 유년시절을 보낸 인물이 자라 똑같이 알콜 중독이 되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그땐 부모님이 모두 알콜 중독이니 나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아니, 했어도 딱히 조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나의 절제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엄마와 아빠에게는 술에 취하면 잠든다는 공통된 주사가 있다. 두 분의 다른 점이 있다면 엄마는 혼자 집에서 맥주를, 아빠는 친구들과 밖에서 소주를 마시는 걸 좋아한다. 아빠는 매일 4-5시쯤 퇴근하면 바로 친구들을 만난다며 나갔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보통 11시에서 12시. 그보다 훨씬 늦어질 때도 있었다. 어릴 때는 아빠의 늦은 귀가에 분노한 엄마가 문을 걸어 잠그고 화낸 적도 있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는 아무도 아빠의 귀가를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아빠는 집에 돌아오면 꼭 큰소리로 자신의 귀가를 알렸다. 식구들의 안위를 확인해야겠다는 이유로 온 집안의 불을 다 켰다. 잠들락 말락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던 예민한 사춘기 자녀들과 다음날 일찍 일어나야 하는 아내는 갑작스러운 형광등 불빛에 짜증 내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음. 다 잘 자고 있네.”
잠을 다 깨워 놓고 그렇게 말하면 짜증이 났다. 때로는 아무도 자신을 반겨주지 않는다며 아주 큰 혼잣말로 불평하다가 누군가의 ‘제발 잠 좀 자자!’하는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듣고서야 불을 껐다. 가끔 일찍 집에 돌아와서 가족들이 깨어있을 땐 어제 했던 이야기나 아까 했던 이야기를 또 했다. 대화를 하고 싶다는 아빠의 말에 몇 번쯤 응하다가 우리의 대화를 아빠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후로 아빠가 집에 오면 이어폰을 꼈다.
아빠는 가끔 이른 저녁 만취해서 집에 돌아왔다. 그런 날은 옷도 벗지 않고 현관 앞 거실에서 잠들었다. 거실이라고 해봤자 폭이 1.5미터쯤 되는 좁고 긴 복도에 가깝다. 거실에 외투도 벗지 않고 웅크려 잠들었다. 식구들은 그러려니 신경 쓰지 않고 좁은 거실을 지나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빠의 팔이나 다리를 넘어 다녔다. 한참 동안 한쪽으로 웅크려 자다가 반대쪽으로 돌아 누우면 주머니에서 열쇠와 동전이 몇 개씩 떨어졌다. 대부분 백 원이나 오백 원 짜리였다. 가끔은 지폐가 떨어지기도 했다. 동생과 나는 그걸 주워 핑크색 돼지 저금통에 넣었다. 십만 원이나 이십만 원쯤 모았던 것 같다.
한 번은 친구랑 수원역에 놀러 나갔다. 내가 아마 22살쯤. 아빠는 쉰 살을 조금 넘겼을 때다. 당시 수원역은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큰 번화가였다. 수원역 로데오 거리 앞에는 버스 정류장이 하나 있다. 로데오거리의 입구와 버스정류장 사이에는 작은 광장이 하나 있고, 그 옆에는 아트박스나 다이소 같은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길을 친구와 지나갔던 게 오후 8시나 9시쯤이었던 것 같다. 로데오 거리로 들어가려는데 웬 술 취한 아저씨가 건물 계단에 앉아있었다. 가끔 그런 아저씨들이 있었다.
조금 떨어져 피해 가려 했는데 익숙한 옷차림이었다. 다시 보니 그 아저씨가 우리 아빠였다. 계단에 걸터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잠들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목이 똑 떨어질 것 같았다.
“아빠.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일어나 봐.”
아빠를 깨웠다. 아빠는 바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를 알아보고,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리는데 시간이 걸렸다. 친구 보기 부끄럽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다. 잠들 거면 집에서 잠들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대, 하는 생각만 들었다. 처음 보는 아빠의 모습이었지만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상황이 왠지 모르게 익숙했던 나와는 달리 아빠는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나보고 알아서 집에 갈 테니 그냥 친구랑 가서 놀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발음이 잔뜩 꼬여있었다. 그냥 두면 그 자리에 다시 앉아 잘 것처럼 휘청거렸다. 택시를 잡아줄 테니 제발 타고 가라는 내 말을 한사코 거절하며 버스를 탔다. 아빠를 집 가는 버스에 태워 보내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나 수원역에서 아빠 만났는데, 엄청 취해서 길에서 자고 있었어. 방금 버스 탔으니까 한 10분 뒤면 도착할 거 같아.”
상황을 설명하니 엄마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 알았다고 했다. 내가 그때 아빠를 택시 태워 보내는 게 나았을까? 집까지 같이 가는 게 나았을까? 아빠가 길거리에서 잔 게 처음이었을까? 엄마는 이런 전화를 몇 번이나 받았을까?
그날로부터 십 년이 좀 안되게 지났다. 그 사이에 코로나가 퍼지며 수원역에 유동인구가 줄고 노숙자들이 로데오 거리 입구를 점령했다. 아빠가 잠들었던 길에서 노숙자들이 잠을 자고, 한 달에 한번 지원금이 나온다는 날이 되면 와글와글 모여 앉아 술파티를 벌이고, 소주병을 깨고, 싸움을 하고, 경찰을 부른다. 아빠가 술 취해 잠들었던 길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좀 이상하다.
어릴 때 실수로 마신 머그컵의 소주 말고 술을 찾아 마시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였다. 아마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것이다. 내가 직접 구매하지는 않았다. 이런 쪽으로는 준법정신이 강한 편이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10시 반쯤 집에 도착하면 가끔 엄마에게 맥주를 사달라고 했다. 엄마는 크게 나를 말리지 않았다. 뭐든지 억지로 못하게 하면 숨어서 몰래 할 거라고 생각하셨다. 딸이 술을 몰래 먹지 않고 엄마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다. 엄마는 엄마가 마실 맥주에 나에게 나누어줄 한 캔을 더 샀다. 그때 나에게 허락된 맥주는 기껏해야 반캔에서 한 캔뿐이었다.
사실 딱히 맥주의 맛을 즐기지는 않았다. 그것보단 미리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즐겼다. 스트레스를 맥주 한 캔으로 푸는 모습이라니, 얼마나 ‘어른’스러운가. 엄마는 맥주 중에서도 시원한 청량감의 라거를 즐긴다. 그 당시에는 맥주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던 시절이라 아마 카스를 마셨던 것 같다. 나도 맥주 취향이 엄마를 닮아 라거를 즐기는 성인이 되었다.
내가 성인이 되고 맥주 맛을 알고 즐기기 시작한 후 엄마의 맥주 빈도가 점점 늘었다. 그전에는 한 달에 한두 번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마시고 싶어서 사달라고 조른 적이 많았다. 최저 시급이 5천원도 안되던 시절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살짝 아쉬울 때면 엄마 앞에서 슬쩍 말하곤 했다.
“아~ 목이 좀 마르네~”
혹은
“탄산 먹고 싶다~ 아니~ 딱히 맥주가 먹고 싶은 건 아니고~ 그냥 보리차가 좀 먹고 싶다고~ 탄산이 있으면 더 좋고~”
그러면 엄마는 딸의 능청을 귀여워하며 기꺼이 넘어가 주었다. 같이 편의점에 가 맥주를 골랐다. 계산은 엄마가 했다. 우리는 함께 알콜 중독의 길에 들어갔다. 엄마의 알콜 중독은 어느 정도 나 때문인 것 같다. 엄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가장 큰 단어는 우리 집 강아지와 맥주다. 엄마가 방 한편의 벽에 기대 맥주를 마시면 쭉 펴고 앉은 다리 옆으로 강아지가 눕는다. 엄마는 항상 같은 자리에서 혼맥을 아니, 강아지와 함께하는 맥주를 즐긴다.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핸드폰으로 퍼즐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맥주를 마시다가 조용히 잠이 든다.
부모님의 알콜 중독 유전자는 나뿐만 아니라 남동생에게도 유전되었다. 우리는 온 가족이 알콜 중독인 셈이다. 내가 기억하는 동생의 가장 오래전 음주는 동생이 고등학생일 때이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동생을 마주쳤다. 깜깜해질락 말락 한 저녁시간이었다.
“누나, 나 맥주 한 캔만 사주면 안 돼?”
동생이 머쓱하게 말했다. 나는 무슨 이유인지 묻지 않았고, 동생도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여자친구랑 헤어졌겠지, 뭐. 엄마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집 앞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샀다. 방에 기대앉아 사이에 맥주 한 캔을 뒀다. 각자 핸드폰을 하며 나 혼자 마시는 척 둔 맥주를 동생과 나눠 마셨다.
성인이 된 동생의 음주 취향은 엄마 보단 아빠를 닮아갔다. 혼자보다는 친구들과, 집에서 보다는 밖에서, 맥주보다는 소주를 마신다. 독한 양주도 즐긴다. 한번 마시면 저녁에 나가 새벽에 들어온다. 가끔은 해가 중천에 뜨도록 정신을 못 차리고 눈을 뜨면 힘겨워하며 음료수를 요청한다. 전에는 포카리였는데, 요즘은 아침햇살이다. 1.5리터짜리 한통을 다 비우고 오후 늦게까지 푹 잔다. 남동생의 숙취해소법이다. 우리 집 주방 한편과 냉장고 안에는 언제나 음료수가 서너 병씩 쌓여있다.
그러니까 우리 집은
주종으로 따지면
소주파 2명과 맥주파 2명,
빈도로 따지자면
주 7회파 3명과 주 1~2회파 1명,
장소로 따지자면
외출파 2명과 혼맥파 2명,
취하는 정도로 따지자면
적당히파 2명과 끝까지파 2명
이 있는 셈이다.
이 중 몇 명이나 알콜 중독인지 따져보진 않았지만, 어쨌든 모두가 알콜 중독에 가까운 상태임은 분명하다. 전문가들이 알콜 중독이 유전이니 어쩌니 하지 않아도 그 결과가 내 눈앞에 이미 펼쳐져 있다. 다행히 온 가족이 알콜 중독인 것치고는 집안이 꽤 평화롭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빠와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지만 엄마, 남동생과는 종종 반주를 즐긴다. 셋이 방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으면 우리가 가족인 것이 실감 난다.
네 번째 금주를 시작한 이후 본가에 간 적이 있다. 엄마는 내가 온다고 맥주를 박스째로 사다 두었는데 나의 금주 선언에 내심 서운해했다. 냉장고에서 차갑게 숙성된 맥주를 보니, 아니 서운해하는 엄마를 보니 마음이 잠시 흔들렸지만 잘 참았다. 친구나 연인의 맥주 제안은 거절하기가 쉬운데 엄마의 제안은 거절하기가 어렵다. 금주를 한다면서 함께 음주를 할 때 가족애를 느끼니 뭐니 하는 얘기를 하는 걸 보니 이번 금주도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