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는 하기 싫은 알콜 중독자의 절주일기 #07
금주를 한지 두 달쯤 되었을 때 꿈에서 맥주를 마셨다. 놀랍게도 전혀 마시고 싶지 않았다. 낯선 이가 주는 술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한 모금을 꿀꺽 넘겼다. 술을 받으면서도 ‘아, 이거 마시면 안 되는데...’하고 주저했다. 입에 가져다 대는 순간까지 망설였다. ‘금주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과일 맛이 나는 맥주였다. 내 취향도 아니었다. 후회했다. ‘금주를 이런 걸로 끝냈으면 안 됐는데...’ 그동안 참고 견딘 보람이 한순간에 사라질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참았으면 곧 얻을 수 있었을 무언가를 허무하게 날려버린 기분이었다.
꿈이라 정말 다행이었다. 맥주를 마시고 싶은 나의 욕구를 알고 무의식이 경고를 보냈던 걸까. 참지 못하고 술을 마셨다면 내가 느끼게 됐을 죄책감과 상실감을 꿈속에서 미리 겪은 덕분인지 금주 기간을 무사히 버텼다.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조금 더 참아 거의 세 달을 금주했고 금주가 끝나는 날에는 성대한 파티를 벌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이미 금주가 끝난 시점이다. 요즘은 한 달에 한번 정도 술을 마시는 절주에 들어와 있다. 나름 세 달이나 금주를 하고 나니 내가 금주를 통해 얻은 것들과 잃은 것들을 셈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얻을 줄 알았는데 얻지 못한 것들과 잃을 줄 알았는데 잃지 않은 것들도 있다. 그중 잃을 줄 알았는데 잃지 않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 살
금주를 하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제일 많이 묻는 카테고리가 있다. 바로 다이어트다. 한국 사회에서 다이어트는 언제나 쉽게 화두에 오르는 주제다. 금주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예외는 아니다. 술을 끊으면 살이 빠진다는 것은 다이어트계에서는 일종의 공식이다. 운동을 하면 살이 빠진다라거나 저녁 6시 이후에는 식사를 하면 안 된다라거나 하는 공식들처럼 살을 빼려고 결심하면 제일 처음 고려하게 되는 것이 금주다. 나 역시 사실 더 이상 맞지 않는 바지에 놀라 금주를 결심했었다. 살과 술이 일종의 세트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금주 소식을 여기저기 알린 뒤로 종종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다이어트 중이야?”
“그런 건 아니야. 먹을 건 다 먹고 있어.”
“그래도 술 안 마시면 뱃살이 빠진다던데?”
“예전보단 조금 들어간 것 같긴 한데...”
“두 달 동안 얼마나 빠졌어?”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눈에 기대가 가득 차있다. 술을 끊으면 살이 얼마나 쉽게 빠질지 궁금해하며, 나도 술을 한번 끊어볼까 생각한다. 혹독한 식단을 하거나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는 것보다 술만 줄이는 게 그나마 쉬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진짜 다이어트에 비하면 금주가 더 쉬울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대화를 보통 술집에서 했다는 것이 모순이라면 모순이다. 아무튼 미안하게도 나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람들을 실망시켜야 했다.
“술을 끊는다고 살이 빠지진 않더라고.”
금주는 다이어트에 꼭 필요한 조건이지만, 금주만으로 살이 빠지는 건 아니었다. 맥주만 참아도 살이 쭉쭉 빠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다면 한 달 정도는 맥주를 더 참았을지도 모른다. 세 달이나 맥주를 참으면서 빠진 살은 고작 2kg이었다. 뷔페라도 한번 갔다 오면 금방 다시 찔 무게다. 나도 금주를 시작할 때는 살이 쭉쭉 빠질 거라고 기대했다. 거의 매일 아침 샤워하기 전에 몸무게를 쟀다. 첫날에는 한 400g쯤이 바로 사라졌다. 그다음에는 200g이나 300g이 줄었다. 매일매일 이렇게만 빠지면 뱃살과는 금방 작별할 것 같았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감소폭이 눈에 띄게 줄었다. 오히려 무게가 늘어난 날도 있었다. 거울을 봐도 딱히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뱃살은 여전히 툭 튀어나와 있었고, 바지를 입으려면 아직도 배에 힘을 잔뜩 줘야 했다. 동거인은 내내 살이 빠진 것 같다며 날 응원했지만 체중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원인은 명확했다. 그동안 술 때문에 찐 줄 알았던 살들은 사실 술만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었다. 술 뒤에 숨은 공신이 있었으니 바로 안주였다. 사실 숨었다고 보긴 어렵다. 나만큼 술을 사랑하는 동거인과 살면서 찐 10kg 중 고작 2kg만이 술 때문이었고, 8kg이 안주 때문이었다. 맥주는 끊었지만 안주는 그대로 먹는 생활을 유지했다. 저녁이면 회나 치킨을 시켜놓고 탄산수를 마시며 tv를 봤다. 그러고도 아쉬우면 과자나 콘치즈 같은 간식을 늘어놓고 탄산수 파티를 이어갔다. 금주가 끝날 때까지 몸무게는 더 이상 줄지 않았다.
금주 이후로 밀가루를 줄이거나 야채를 늘리는 등 가벼운 식단 관리를 하면서 살이 조금 더 빠졌지만, 체중 감량에 가장 효과적이었던 건...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이었다.
2.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
위장질환은 내가 15년 넘게 주기적으로 앓아온 나의 패시브 속성 같은 존재다. 동시에 내가 금주를 시작하며 잃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존재이기도 하다. 술을 끊으면 몸이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그중에 가장 크게 기대한 신체부위가 바로 위장이었다. 정말 억울하게도 내 믿음은 무려 두 달이 넘게 금주를 한 시점에 산산이 부서졌다.
어느 날 속이 울렁거려 일찍 자려고 누웠다. 잠에 든 지 겨우 20분쯤 지났을 때 이상한 느낌에 깨어났다.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과 더불어 침샘에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묘한 느낌이 났다. 어금니 보다 더 안쪽에 있는 잇몸에서 느껴졌던 낯선 감각은 설명하기도 어려운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역류성 식도염으로 인한 구토를 하기 전의 증상이라고 한다. 잠에서 깨 본능적으로 변기로 달려갔다. 그날 먹은 모든 것을 다 토해냈다.
다음 문제는 2주쯤 뒤에 일어났다. 점심 식사를 하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위장이 꽉 차서 가죽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과 더부룩한 느낌이 들었다. 울렁거림도 있었다.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뭐든 바퀴 달린 걸 타면 병원에 도착도 하기 전에 구역감에 시달려 실수를 할 것 같았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의 병원을 검색해 봤다. 하필 주말이라 소아과밖에 없었다. 동거인의 부축으로 겨우 겨우 도착한 소아과에는 열이 올라 얼굴이 벌게져 칭얼대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 사이에 감기가 유행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04세 남자아이와 02세 여자아이 다음으로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내 다음으로는 13개월 남자아이가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병원에서 약을 지어다가 먹었다. 그래도 며칠 동안 계속 속이 불편했다. 어린이용 병원이라 약빨이 약했던 걸까? 자려고 누우면 속이 울렁거려 잠들지 못했다. 서러워서 눈물이 찔끔 났다. 부끄럽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엉엉 울었다. 억울했다
“도대체 술도 안 먹는데 난 왜 자꾸 아픈 거야?”
울다 보니 서른 살이 되고도 이런 일로 울고 있는 내 꼴이 어이없어 웃었다. 옆에서 울다가 웃다가 또다시 억울하다며 글썽거리는 날 지켜보던 동거인이 한마디 보탰다.
“맨날 밥 먹고 누워서 그런 거 아닐까?”
반박할 여지가 없이 너무나 명확한 원인이었다. 수년간 지켜온 ‘밥 먹고 바로 눕기’ 루틴이 있는 한 내 위장은 건강해질 수 없었다. 술만 끊으면 건강해질 줄 알았던 기대는 오만이었다. 지난 1년 동안 동거인은 밥 먹다가 배가 부르면 스르륵 바닥에 녹아내려 누워버리는 나를 수차례 말렸다.
“30분만 앉아있어.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 돼.”
“언니 그거 알아? 소 한 마리에 천만 원이래. 내 몸값보다 비쌀걸?”
“그게 무슨 소리니...”
“소 되면 오히려 좋아~”
동거인의 걱정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흘려보내며 누워서 과자를 주워 먹었다. 가끔은 누운 채로 목만 들어 맥주도 마셨다. 내가 그럴 때마다 동거인은 도대체 어떻게 누워서 맥주를 마시냐고 물었다.
“이거 내 개인기야.”
내가 대답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맛있는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효율적인 묘기였다. 가끔 가슴팍에 맥주를 쏟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엎드려 누워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내 위장은 내가 평생 동안 단련해서 누워있어도 다 소화시킬 수 있어.”
동거인이 걱정 어린 눈빛을 보일 때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렇게 쌓은 업보가 이렇게 돌아왔다. 그동안 가끔씩 속 쓰림으로 경고만 하던 위장이 드디어 ‘더 이상은 못 참겠다!’며 파업 선언을 했다.
“더는 못하겠어요. 저 이제 파업합니다. 앞으로 10년 정도는 위염을 앓으시던지 마시던지 알아서 하세요.”
나는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못하고 화난 위장의 파업을 정통으로 맞았다. 이 날 이후로 매일 저녁 식사 후에는 적어도 2시간 이상 거실에 앉아 버티기 시작했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몸이 점점 아래로 흘러내린다. ‘헉! 또 누울뻔했잖아!’ 정신을 붙잡고 다시 몸을 일으킨다. 강제로 조금 더 건강해지고 있다.
3. 생리통
위염은 그래도 나의 업보가 있으니 납득이라도 할 수 있었다. 진짜 억울한 부위는 바로 자궁이었다. 일단 매월 생리를 하고, 통증을 느끼는 것부터가 억울하다. 이 부분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공감할 것이다. 심지어 나는 배란통과 pms(생리 전 증후군)도 꾸준히 앓고 있으며 꼬박꼬박 4주 주기로 생리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 한 달은 이렇게 흘러간다.
첫째 주 : 생리통 및 생리로 인한 분노
둘째 주 : 생리가 끝나서 조금 평온해짐
셋째 주 : 배란기에 접어들며 배란통 시작
넷째 주 : pms로 인해 미친듯한 식욕과 짜증
다시 첫째 주 : 갑작스러운 식욕 감퇴와 함께 생리 시작
그래도 다행인 건 생리통이 보통 하루면 끝난다는 점이다. 생리통이 심해지기 전에 진통제를 미리 먹어 생리통이 심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요령도 익혔다. 거의 매일 술을 먹다 보니 가끔씩은 생리통과 술자리 약속이 겹쳤다. 구글 검색창에 ‘술 생리통’이나 ‘술 진통제’ 같은 키워드를 검색한 적도 많다. 그러면 매번 구글 검색결과는 나를 열심히 말렸다.
‘진통제를 먹고 술을 마시면... 어쩌구 저쩌구 간이 해독을 못해서... 어쩌구...’
‘생리 전후에는... 어쩌구 저쩌구... 술을 마시지 말고...’
‘알코올은... 이런저런 이유로... 생리통을 더 심하게 만들고...’
그래서 나는 언제나 생리통을 견디며 맥주를 마실지, 진통제를 먹고 맥주를 참을지 고민해야 했다. 물론 생리통이 진짜 심할 때는 선택권이 없었다.
반대로 술을 끊으면서는 생리통과의 이별을 내심 기대했다. 완전 이별까진 아니더라도 이전의 절반쯤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술을 마시면 생리통이 심해진다는 것은 반대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생리통이 약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이론적으로만 흘러가진 않았다.
어쩐 일인지 금주를 시작하고 첫 생리가 밀렸다. 원래라면 3일에 시작했어야 할 생리가 20일이 넘어가도록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pms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 거의 2주 넘게 호르몬에 휘둘려야 했다.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되고 변비가 생기고 아토피가 재발하고... 평소 좋아하지도 않던 크리스피한 치킨이 당기기까지 했다. 나는 원래 튀김옷이 거의 없는 옛날 통닭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날은 기름과 육즙을 가득 머금고 있는 바삭한 닭다리를 뜯고 싶었다. BBQ 황금올리브 치킨을 시켰다.
한참 동안 날 괴롭히다가 뒤늦게 시작된 생리는 이전보다 더 큰 생리통을 동반했다. 이 모든 증상 맥주를 끊자마자 일어났다. 억울했다. 맥주를 참는 것도 힘든데 생리통까지 참아야 한다니! 다행히 금주 세 달 차가 넘어가면서부터는 생리통이 금주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내려갔다. 이전보다 나아진 것은 아니라 약간 억울한 마음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진통제를 먹으면 참을만한 수준은 되었다. 술과 생리통은 의외로 상관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
4. 피부 트러블
사춘기 때 처음으로 피부에 트러블이 난 이후로 아직까지 트러블이 끊긴 적이 없다.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없어질 줄 알고 시간이 흐르기만을 얌전히 기다렸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니 내 나이가 어느새 서른이었다. 서른 살에도 아직 트러블이 나고 있다니! 사춘기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여드름 하나가 사라지면 하나가 또 난다. 얼굴 곳곳에 붉은 여드름 자국이 있고 조금만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 얼굴 전체에 여드름이 우두두두 올라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억울해하기엔 내가 쌓은 업보가 너무 많다. 제일 큰 업보는 아무래도 10년 동안 꾸준히 성실하게 마셔온 맥주였다. 맥주를 마신 다음날은 어김없이 얼굴에 열감이 있었고 붉은 기가 더 심해졌다. 그런 맥주를 매일매일 마셨고, 또 튀김이나 과자 같은 기름지고 자극적인 안주를 함께 즐겼으니 피부가 좋아질 리 만무하다. 사실 그렇게 마셔도 피부가 좋은 사람과 살고 있어서 조금 억울하긴 하다.
솔직히 술을 끊으면 피부가 좋아질 줄 알았다. 거짓말처럼 씻은 듯이 깨끗해지는 건 아니어도 차츰 나아질 줄 알았다. 여전히 내 볼과 이마에는 엄청 큰 여드름이 새로 올라오고 있다. 하나가 가라앉아 붉은 자국쯤으로 남으면 또 새로운 여드름이 고개를 든다. 심지어 금주 전보다 더 크고, 단단하고, 누르면 더 아픈 여드름이 늘어난 것 같다. 좁쌀 여드름은 셀 수도 없으니 대충 넘어가자.
어쩌면 술을 끊으면 온몸이 개운해진다는 것은 알콜중독자들을 가스라이팅 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