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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링기 Oct 06. 2022

101호냐 301호냐. 그것이 문제로다.

대한민국 아파트 주민이라면 층간 소음은 필수 코스지.

  이로써 확실해졌다. 윗집, 혹은 아랫집 아이들은 오후 네 시에 유치원이 마친다. 네 시가 조금 지나자 어김없이 발을 쿵쿵거리는 소리와 형제가 우격다짐하는, 깊은 속에서부터 시작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새롭게 확인한 사실을 곱씹었다. 그렇구나, 얘네는 오후 네 시에 집에 돌아오는구나. 



  일평생 층간 소음을 모르고 살지는 않았다.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빌라 옆집은 이따금 친구들을 집에 초대했고 한 달에 두 어차례 벽간 소음 때문에 집주인에게 시끄럽다고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집에 러닝머신을 들인 건지, 정체모를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려 복도에서 동영상 촬영을 했었다. 동영상으로 남의 집 대문을 찍으며 MBTI N형답게 연쇄 살인마가 시체를 가는 기계를 들인 건 아닌지 걱정했었다. 


  소음뿐만이 아니다. 몇 차례 담배 냄새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주 출입구에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종이를 붙이기도 했었다. 정말 이상한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 하루는 너무 담배 냄새가 심해 문을 열자마자 복도에서 범인을 마주했었다. 그 좁은 빌라 복도에서 웬 아주머니가 담배를 피우지도 않고 손에 들고만 있는 광경을 마주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녀는 담뱃불이 꺼지지 않게 입으로 후후 불어가며 소중한 귀중품을 모시듯 담배를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속삭였다. “아가씨 집에서도 담배 냄새나지?” 그녀의 눈빛은 투명한 광기가 가득 차 있었다. 이이제이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오랑캐의 싸움에 등이 터진 건 나였지만 말이다. 


  물론 한평생 층간 소음의 피해자로서만 살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면 한창 에너지가 좋은 초딩시절에 미친 듯이 거실을 뛰어다녀 아랫집 아줌마가 올라와 혼을 내기도 했었다. 나는 반성한 척했지만 다음 날이면 또 까먹고 실험실 속 원숭이처럼 집 안을 헤집고 다녔다. 새삼 죄송한 마음이 든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도 활기가 차고 넘쳐 아랫집으로부터 항의가 들어온 적도 있었다. 어쩌면 차분히 쌓아온 업보로 인한 카르마인 걸까. 결혼을 하며 이사 온 아파트에서 간헐적 층간소음을 겪게 되었다. 


출처_KBS



  오래된 아파트에 이사 오면서 층간 소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두꺼운 슬리퍼를 장만하며 우리 집의 소음 방지를 준비했고, 동시에 효과 좋은 우퍼 스피커를 쿠팡 장바구니에 담아 남의 공격에 반격할 준비도 단단히 해두었다. 그러나 옛 것이 좋은 것인지 생각보다 층간소음은 발생하지 않았고 내가 과한 걱정을 했나, 머쓱한 마음으로 장바구니에서 우퍼 스피커를 삭제했다. 장바구니 속 우퍼 스피커가 작은 부적이었던 걸까. 며칠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결혼 후 한동안 정신없이 회사를 다니고 집에 늦게 와서 몰랐을 뿐, 늦은 오후부터 여덟 시 반, 늦으면 열 시까지 아이들은 집안을 헤집고 다녔다. 무조건 윗집, 301호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 1층에서 101호 미취학 남아 두 명을 마주하고는 101호인가,라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필요 이상으로 자신감 있게 쿵쿵거리는데, 1층에 산다는 자신감이 그와 같은 발 망치 소음을 만든 건 아닌지 골똘히 생각에 잠겼었다. 아무튼 101호 아니면 301호의 두 형제는 평일 오후와 초저녁을 소음으로 물들였고 주말 아침에는 행여나 동네 주민들이 늘어질까 아침부터 활기를 뽐내고 있다. 대화 패턴은 특별한 게 없다. 형제 중 하나가 시비를 걸고 나머지 하나는 발작한다. 곧이어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상황을 중재한다. 쉬이 소음은 가시지 않지만.


  이 뻔한 광경에서 의아한 점은 이들은 필요 이상으로 성을 낸다는 것이다. 아무리 싸우며 큰다고 해도 너무나도 계속해서 싸운다. 나 역시 여동생과 치고 박고 물고 뜯고 소리 지르며 성장했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고함을 지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 형제는 60 데시벨 이하로 목소리를 내면 죽는 병에 걸렸는지 징하게도 악을 쓴다. 온종일 싸우나 보다. 이쯤 되면 두 아이를 따로 키우는 게 좋지 않나 라는 오지랖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자연스럽게 나는 이 집의 아버지를 기다리게 되는데, 무슨 재주인지 몰라도 아빠가 짧고 굵게 한 마디 하면 대부분 조용해진다. 이것이 카리스마인 걸까. 솔직히 올바른 양육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층간소음에 도움이 되는 것만은 확실하다. 



   관리실에 이야기를 할까, 아니면 직접 가서 나도 한 번 악다구니를 써볼까 고민하던 어느 날이었다. 주말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남편이 말똥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나 시끄러운 애들네 부부가 싸우는 소리 들었다?”


출처: 인천가정상담센터 부설 가정폭력 상담소


  내용은 잘 안 들렸지만 아무튼 둘이 대차게 싸웠는데 그 집 애들이 엄마 아빠, 싸우지 말라고 잘못했다고 제가 잘하겠다고 울고 빌었단다. 그 말을 듣자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혹시 부모님 사이가 불안정해서 애들도 정서 불안이 온 걸까? 그래서 아이들이 올바르게 대화하는 법을 모르고 고함만 지르고 있는 걸까? 이거 금쪽이로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러다 불현듯 나의 유년시절도 떠올랐다. 엄마, 아빠가 싸우면 나도 그 집 아이들처럼 싸우지 말라고 말렸던 것 같기도 하고 동생과 이불속에서 떨면서 잠이 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기도 하다. 너무 오래전이라 정확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고 뼛속까지 기분 나쁜 감정만 남아있다. 저 아이들도 훗날 이 시절을 떠올리면 부모님의 악다구니가 이명처럼 들릴까? 주말 동안 얼굴도 모르는 집의 가정사를 떠올리고 또 상상하며 비 오는 날 뼈마디가 쑤시듯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이후에는 시끄러운 아이들 소리가 들리면 나도 음악을 틀고 소음 도피를 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주거 환경이 나아졌다. 그러다 잠시 동영상이 끊기고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는 찰나, 아이들의 괴성과 엄마의 하소연, 아빠의 바리톤이 스치고 지나가는 몇 초가 되면 괜히 마음이 무거워진다. 물론 이어지는 essential의 가을 감성 한사바리 띵곡 모음을 들으면 금방 잊힌다. 사실 모르는 척에 가깝긴 하다.


  그래서, 101호인가 301호인가.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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