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이 되면서 기대되는 것은 만 나이 통일법이었다. 22년과 동일한 나이로 산다니. 코로나로 인해 잃어버린 2년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실질적으로 신체의 노화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아니지만, 입 밖으로 얘기하는 내 나이가 증가하지 않음에 만족했다.
동시에 만 나이 통일법 외에는 기대되는 것이 별로 없었다. 나는 극강의 J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진척도를 관리하는 것을 즐겨하지만, 이상하게 몇 년 전부터 신년 계획 세우기는 하지 않고 있다.
기대감을 갖고 세운 계획이 시간이 지나며 의미가 퇴색되고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망친 계획이다. 남 탓을 할 수 없는 실패는 통상적인 실패보다 쓰라리다. 시험 시간에 놀면 극한으로 재미있지만 외면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든다. 마찬가지로 지키지 못한 계획을 뒤로하고 시간을 보내는 건 마음속의 부채감을 만들어낸다. 자연스럽게 신년 계획 세우기라는 인생의 계획은 사라지고 신년이라고 호들갑 떨지 말고 대충 살기라는 대체 계획이 생겼다.
명언 제조기 명수옹.
대신 신년이 되면 이렇게 글을 하나씩 남긴다. 무엇을 쓸지 갈피도 잡지 않고 일단 쓰고 본다. 이것도 꼬박꼬박 1월 1일에 쓰다가, 점차 하루씩 이틀씩 밀렸고 올해는 6일이나 지나서야 글을 쓴다. 글쓰기 모임이 아니었다면 이 글도 2월 1일 차에 썼을지도 모른다. 분명 나는 J라고 썼는데, Judging의 J가 아니라 Jolleo의 J였던 걸까. 그래도 쓰는 게 어디냐. 23년이 되고 가장 뿌듯한 순간이다.
아무리 신년에 관심이 없다고 한들, 이처럼 글까지 미루며 유난히 23년이 기대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23년은 이미 많은 것이 정해져 있다. 22년 말, 5년 만에 나의 의지와 무관했던 부서 이동이 이루어졌고 5년의 노하우로 누렸던 안락한 회사 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함으로써 조금의 리프레시는 있지만, 워라밸이 붕괴되면서 23년의 5일 근무 중 3일이 야근이었다. 해가 없을 때 출근을 해서 해가 없을 때 퇴근을 했다. 덕분에 비타민 D를 주문했다. 4월부터는 t/f 에 들어가 3개월에서 4개월 정도 지독하게 일을 한다고 한다. 주말에는 출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한편으로는 야근비가 얼마나 될지 기대되는 걸 보면 난 훌륭한 어른이 된 것일까.
이미 일로 꽉 채워진 23년이다 보니 기대감보다 걱정이 먼저 드는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K-드라마 속의 열정적인 직장인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내 일이 즐거워, 외치며 눈을 반짝이는 명랑캔디 스타일의 여자 주인공보다는 그녀와 같은 사무실에서 다 죽어가는 얼굴로 어떻게든 칼퇴만 노리는 직원 4에 가깝다. 그러나 올해는 어떻게든 정신을 부여잡고 햇빛 대신 형광등을 쬐며 업무에 몰입해야 한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나의 글을 읽고 위로를 건네주겠지. 나도 나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으니까.
이처럼 멋진 직장인은 유니콘 같은 존재이다.
그래도 억지로 좋은 점을 꼽아본다. 사람들은 좋아 보여서 다행이다. 새로 맡게 된 품목이 잘 나가서 다행이다. 부서장이 스마트한 타입이라 다행이다. 알고 보니 이 부서에 오려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는 소문을 전해 들으니 아주 엉망인 곳은 아니라 다행이다. 다행, 다행을 꼽으며 다짐해 본다. 23년도에는 어떻게든 행복을 발굴해 보겠다고. 결국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무엇이 문제냐. 영 못해먹겠으면 배 째라고 드러누우면 되지. 초조한 마음이지만 애써 담대한 척 글을 써본다.
그러고 보니 아직 23년도 사주 예약을 하지 않았다. 매 년 구정 전후에 1년의 사주를 보는데, 대충 맞아떨어져서 몇 년째 다니고 있다. 사주를 보면서 마음을 진정시켜야겠다. 23년도 별일 없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