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결혼이라는 옵션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에 대한 반증으로 두 번에 나누어 독립 출판한 책에 결혼 이야기는 꼭 들어가 있었다. 대충 미래의 나에게 모든 답을 맡긴다는 두리뭉실한 내용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해당 주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겠다.
주변인들의 다양한 결혼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사람이다' 파와 '정신 차려보니' 파로 나눌 수 있다. 따지자면 나는 후자에 속했다. 남자 친구와 일 년 정도 만났을 때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잘 맞고 무난하고 둘 다 나이도 적당히 있고 비혼주의는 아니니까.
우리 둘은 대놓고 약조를 나누거나 미래를 약속하지는 않아도 은근한 암시를 주고받았다. 신혼여행을 간다면 어디가 좋을까, 같은. 마치 80년대 산부인과에서 애기 옷을 분홍이나 파랑으로 준비하라는 식이었지만, 은연 중 상대를 결혼 1순위로 고려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신중한 30대의 토크인 것일까…! 아무튼 영화에 나오는 드라마틱한 운명의 데스티니 삥뺑뽕 같은 건 없었다. 이 사람과 계속 만나고, 큰 문제가 없다면 결혼을 해도 괜찮겠다는 다분히 논리적 과정을 거쳤을 했을 뿐이다. 해당 과정에서 약간의 숫자 계산도 들어갔음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어쩔 수 없었다. 결혼은 현실인걸?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백신 접종이 증가한다는 뉴스가 나돌면서 해외여행에 대한 희망적인 분위기가 피어오르던 시기였다. 왠지 내년이라면 우리의 신혼여행 워너비 장소, 몰디브에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묘한 확신이 들었다. 우리는 제법 현실적인 타입이라 결혼에 대한 로망은 적었지만, 신혼여행에 대한 로망은 확고했다. 맑은 물, 이국적인 분위기, 고급 숙소, 신나는 해양 액티비티까지. 몰디브는 우리의 공통된 관심사였다.
더불어 각자의 자취방 계약 만기도 몇 개월 뒤로 다가오고 있었다. 계약을 연장하게 되면 2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너무 시간이 흐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의 일치가 이루어졌다. 우리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결혼에 대한 협의는 몰디브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우기와 건기를 따지며 숙소를 훑어봤다. 이렇게 내년에 꼭 해외로 신혼여행을 가자! 는 다짐과 함께 얼렁뚱땅 결혼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이것이 '정신 차려보니'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첫 키스 때도 들리지 않던 종소리가 결혼한다고 갑자기 들릴 리 만무했다. 역시, 종소리는 개뿔. 결혼은 현실이자 인륜지대사의 가장 큰 프로젝트 중 하나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