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일기가 숙제가 아닌 순간부터 나는 일기 쓰는 걸 좋아하기 시작했다. 거친 중2병과 고된 고등학교 수험 생활의 스트레스를 일기로 풀어냈다.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도 나의 일기 사랑은 계속되었다. 한동안 마음에 드는 일기장 디자인을 발견해서 주야장천 해당 디자인만 쓰기도 했고, 혹시 단종될까 싶어 대량 구매해서 쟁여놓기도 했다.
여행을 갈 때도 일기장은 필수 요소였다. 외국 기차 안에서 일기를 쓰거나 해변가 앞에서 일기를 쓰는 내 모습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다시 돌이켜보기 민망할 정도로 날 것의 감성이 담겨 판도라의 상자처럼 봉인되어 있지만 말이다. 취직을 하고 나서 나의 일기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옮겨갔다. 에버노트라는 앱을 알게 되어 디지털 세상에 나의 기록을 차곡차곡 담아두었다. 녹록지 않은 직장 생활 때문에 글을 쓰는 주기는 점점 길어졌다. 그래도 최대한 삶의 순간순간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 요지는 나의 글쓰기 역사는 꽤나 길다는 것이다.
에버노트에 담긴 나의 216개의 기록. 보통 헤어지고 쓴 글이 많아 이 또한 명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세상에는 나오지 못하는 비운의 기록들이다.
그러나 웬만한 세상살이가 그렇듯 나의 글쓰기 열정도 점차 빛을 바랐다. 그러다 열기를 잃은 나의 글쓰기 생활에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생겼었는데 바로 독립출판이었다. 책을 내는 건 나와 멀고도 먼 일 같아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소액으로 책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길이 있다니. 마침 취미가 필요했었다. 냉큼 글을 모아 독립 출판을 해봤다.
물론 순수하게 책을 만드는 즐거움만 누린 건 아니었다. 첫 번째 독립 출판을 하며 벌써 내 머릿속에는 작가로서 중간 정도의 성공을 거둔 나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이미 직장인에서 작가로 전환한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독립 출판계에서 유명한 ‘피구왕 서영’의 황유미 작가를 떠올리며 내가 제2의 황유미가 되는 건 아닌지 기대 반 걱정 반을 했었다.
...물론 아무 일도 없었다. 웬만한 시도가 그러하듯.
올라가는 높이가 높을수록 추락은 더 길고 깊은 법이다. 두 어번의 출판 이후에 나의 삶에는 큰 변화가 없었고 글쓰기에 대한 흥미는 되려 떨어졌다. 마치 주식 그래프 같았다. 하한가를 찍고 살짝 오르나, 싶지만 더 깊은 하한가로 떨어지는 주식 같은 나의 모습을 보며 위기감을 느꼈다. 그래, 이제는 동조 압력이 필요하다. 혼자가 아니라 그룹으로 글을 쓰자. 그렇게 글쓰기 모임을 직접 운영하며 오늘날까지 즐겁지만 간신히 글을 쓰고 있다.
‘누칼협’이라는 인터넷 용어가 있다. 누가 칼을 들고 협박했냐는 뜻으로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혼자 해놓고 왜 징징거리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 또한 그 누구도 강요하지도, 기다리지도 않는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모임의 마감이 없었다면 나는 2주에 한 번은커녕 두 달에 한 번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퀄리티와 길이에 무관하게 어찌 되었든 글을 쓰고 나면 기분이 개운하고 후련하다. 누가 읽어주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의 마음을 글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미래의 내가 읽고 재미있으면 장땡이다. 후대를 위해 기록을 남겼던 선조처럼 젊은 날의 내가 몇 년, 혹은 몇 십 년 뒤의 나를 위해 글을 남기고 있다.
그냥 좋아서 썼던 시절도 있고 야망을 품고 썼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은 그냥 쓰고 있다. 똥볼 같은 글이라도 쓰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것이, 글쓰기이니까. 아무튼 그래서 오늘도 글을 남겨본다. 그래서 내가 글을 왜 쓰는 거지? 오늘도 정확한 답은 모르겠지만 공연히 성취감만 든다.
글쓰기 모임 시즌 마지막 글 끝!
* 물론 일련의 글들을 비정기적으로 브런치에 업로드하며 좋아요 수를 살펴보고 있다. 아직 나의 야망은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 인세로 소고기를 한 달에 한 번씩 사 먹기가 나의 작은 욕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