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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링기 Jun 18. 2023

사실은 말입니다?

나, 어쩌면 일하는 걸 좋아하는 걸지도?

  얼마 전 회의실에서 큰 소리, 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간 소리를 냈다. 항상 문제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저기 저 윗분’으로부터 기인한다. 시장의 흐름에 맞지도 않는 판매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내가 담당하는 업무가 대폭 축소되어야 했다. 나는 어떻게든 일부 내용은 지켜내려고 했지만 부서 선배는 내가 제시한 비용이 너무 크다고 더 덜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냥 다 빼겠다고,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소연했다. 정말로 잘 되기 위해서는 이 부분을 살리고 저 부분을 죽여야지 왜 반대로 가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결론적으로는 ‘저기 저 윗분’의 뜻대로 업무는 정리되었고 나는 차가운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 아직 회사에서 열정이 남아있나 본데?


이게 나라고 생각했는데, 조금은 더 열정적인걸까?


  회의실에서 격한 대화를 나누었던 선배에게 사과 아닌 사과를 했다. 사실상 피해자 두 명의 모임이었다. 선배는 지시받은 불구덩이행 지도를 나누어 주었을 뿐이고 나는 엄한 사람에게 왜 그래야 하냐고 따져 물었을 뿐이었다. 모두가 다 아는 정답을 외면하고 아닌 방향으로 눈을 감고 걸어가는 건 참으로 암담한 심정이었다.  


  “선배님, 아까는 제가 좀 목소리가 올라갔죠. 근데 아직 열정이 남아 있나 봐요.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데 부아가 치밀어 올랐어요.”

  “그러니까. 너 니 사업처럼 일하더라.”


  순간적으로 머리가 띵했다. 내 사업은 개뿔. 앞으로 보나 뒤로보나 남의 회사이고 나는 노비인걸. 그래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새로 바뀐 부서, 새로 맡은 업무인데 멋있게 만들고 싶었다. 어쩌면 이 회사가 망할 듯 망하지 않는 이유는 나같이 뜨거운 심장의 노비들이 남아 있기 때문인 걸까?


넵넵! 거리는 요즈음.


  출근하자마자 집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금요일 밤이 되자마자 주말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하고 친구들끼리 만나면 회사 외의 파이프라인에 대해 고민하는 요즈음이다. 요즘 유튜브 쇼핑이 핫하던데 그걸 하나 해볼까, 나도 쇼츠 채널을 만들어야겠다,라고 끊임없이 부업에 대해 생각하는 나날이다. 그렇지만 사무실에서는 자꾸만 잘하고 싶어 진다. 상을 받거나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닌데, 최소한 내가 받는 월급의 값어치보다는 조금 더 해내고 싶다. 늘 성실해야 한다고 도덕시간에 열심히 배워서 그런 걸까 혹은 노동의 가치를 가스라이팅 당해서 그런 걸까. 언행불일치 하는 나의 근면성실한 근무 태도에 가끔은 스스로가 놀란다.


  그렇지만 가끔은 일하는 게 재미있다. 새로운 부서, 새로운 일이라 그런 걸까? 배워나가고 익힌 다음 내 것으로 바꾸어 적용하는 게 흥미롭다. 조금씩 변화를 주었을 때 결괏값이 달라지는 걸 보고 나만의 데이터로 만들어 엑셀 파일로 정리하면 뿌듯하다. 미친 사람처럼 들릴까 봐 어디 말도 못 하겠지만, 은근히 재밌다. 내가 만든 엑셀 파일을 동료에게 보여주고 너 미친 사람 아니냐는 소리를 들으면 입꼬리가 올라간다. 인정 욕구인지 워커 홀릭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오밤중에 오는 업무 연락도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다. 이러다가 임원 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뺨을 내려친다. 정신 차리라고.


  몇 년 전에 휴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비슷했다. 열심히 하려다가 피곤하고 지쳐서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그렇게 1년을 쉬고 복직을 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그 순간을 기억하며 너무 달리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 남에게 욕먹지 않을 정도로만 해야지. 내가 부러지지 않도록.


  그래, 임원보다는 건물주가 낫지. 부동산 공부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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