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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링기 Jul 08. 2023

납량특집 : 나, 그리고 바선생.

바퀴, 모기는 그냥 다 사라지면 좋겠다. 

 공포 영화 주인공들은 용감하다. 궁금하면 일단 해결하고 봐야 한다. 어설프게 넘어가는 법 따위는 없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지하실 문도 일단 열어보고 하지 말라고 했지만 저지르고 본다. 물론 이후에 발생하는 수많은 고난은 굳이 적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수상할만큼 용감한 공포영화 속 미국인들 


  나는 다르다. 당당하게 나 자신이 쫄보라고 밝히고 웬만한 위험 요소는 모두 피해 간다. 골목길이 수상하면 돌아가더라도 바로 뒤돌아가고 어두울 새 없이 바로 밝은 불을 밝힌다. 가지 말라는 곳은 절대로 가지 않을뿐더러 그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덕분에 아직까지 미스터리 한 일과는 엮이지 않고 무탈하고 소탈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죽은 존재가 아니다. 살아있는 존재가 문제다. 다리가 많을수록 더 문제다. 더 큰 문제는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쫄보도 카테고리가 있다. 사람마다 무서워하는 분야가 다양한데 안타깝게도 나의 카테고리는  사주에 오색이 가득한 것처럼 다채롭게 꽉 차있다. 귀신, 어둠, 벌레 모두 무서워하는데 특히 벌레가 너무나도 무섭다. 개미나 작은 거미, 모기 정도는 괜찮다. 지네, 돈벌레, 귀뚜라미, 바퀴벌레 등 적당히 사이즈가 커진 모-든 벌레는 무섭다. 잠자리도 무섭다. 그 눈을 어쩌다 마주한 적이 있는데 이후 트라우마처럼 근처에만 와도 소름이 돋는다. 그래서 최대한 벌레와의 교집합이 없도록 노력했지만 인생이란 싫다고 피할 수 없는 법. 지금부터 적는 이야기는 내가 벌레와 마주했던 소름 끼치는 일화이다. 


  때는 2017년의 어느 봄 날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돌아와 화장실로 향했다. 편하게 볼일을 보고 휴지를 돌돌, 말아 꺼냈는데 바닥에 웬 김이 떨어졌다. …김…? 3초가 지나자 알 수 있었다. 바선생이었다. 그것도 어디서 잘 먹고 잘 자라 피둥피둥 살이 오른 바선생.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화장실 문을 닫고 거실로 나와 방을 동동 굴렀다. 망했다. 크다. 어디서 저게 들어왔을까. 지금 저 안에 있을까? 없을까? 있어도 문제고 없어도 문제였다. 문을 열기 전까지 그것의 존재 여부는 미스터리였다. 슈뢰딩거의 바선생 같으니. 용기를 내어 살짝 문을 열고 바닥을 봤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너무 커서 표정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미친. 이건 혼자서 해결할 일이 아니었다.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에게 SOS를 날렸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저녁이었다. 코너 속의 코너라고, 이 또한 공포스러운 이야기인데 그는 형들과 게임을 하러 방금 만났으니 다음날 새벽에 가면 안 되겠냐고 말을 꺼냈다. 지금 울고 있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나? 그때 다짐했다. 이 놈이랑 헤어진다. 아무튼 비슷한 동네에 살고 있던 친구에게 연락해 그놈을 잡아 집 밖에서 화형식을 거행하고 집 안 곳곳을 뒤진 다음, 혼자 있기는 무섭다고 새벽까지 치킨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수다나 떨었다. 그 이후로 일주일 동안 화장실 불은 물론 집안 불을 모두 켜놓고 살았더랬다. 그 이후, 철마다 신기패나 각종 약품으로 집을 무장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 이사를 갈 때까지 벌레로 인한 큰 문제는 없었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벌레가 너를 더 무서워한다, 크기 차이를 봐라!라고 조언하지만 애당초 이건 사이즈에 기인한 공포가 아니다. 혐오스러운 모양새, 기함할 정도로 빠른 속도, 손에 닿지 않는 어둡고 구석진 곳에 숨어 찾을 수 없도록 만드는 음습함, 날개를 이용한 비행술까지 그들을 두려워할 이유는 천 가지도 넘게 댈 수 있다. 다채로운 이유 때문에 여전히 나에게 있어 바선생을 비롯한 다수 벌레는 여전히 공포의 존재로 남아 있다. 언젠가 죽기 전까지 이 공포를 극복하고 맨손 까지는 아니더라도 도구를 이용해 저들을 처단할 수 있을까? 아마 못할 테지. 어려울 테지.


  지금 사는 곳은 근처에 산이 있어 요즘과 같은 여름철이면 더 다양해진 라인업의 벌레 덕분에 일상이 종종 쉽지 않다. 괴롭다. 벌레가 얼씬도 못하는 멋지구리한 최첨단 방역의 집에서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 이처럼 직장인의 글은 결국 기승전-부동산을 향한 욕망으로 귀결되는 것이 맞는걸까? 이것도 공포라면 공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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