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직 말하는 감자인데...?
23살의 여름, 인턴을 했었다. 첫 사회생활이라 어리버리 그 자체였고 좋은 선배도 있었지만 별로인 선배들도 있어서 마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진 않는다. 인턴이란 결국 취업을 위한 활동이었으므로 정규직 전환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핸드폰으로 결과를 확인하고 학교 순환 버스에서 엉엉 울었었다. 아픔도 잠시, 다른 회사에 취직했고 지금은 금요일 저녁부터 다음 주 월요일 출근이 하기 싫은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불합격의 추억도 무덤덤하게 늘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인턴사원이 배정되었다. 5주 하고도 하루 동안 같이 지내야 하는데 하필 굉장히 바쁜 시점에 인턴을 받게 되어 곤란하긴 했다. 주말에도 출근을 하는 요즈음이다. 내 앞가림도 벅찬데 인턴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물론 마냥 싫은 건 아니다. 정신 차려보니 서른 하고도 훌쩍 넘어 현직 대학생을 만날 일은 0에 수렴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떠한 특성을 가졌는지 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담당하고 있는 업무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 적고 보니 너무 비인간적인가, 싶다. 이런 업무적인 이유 외에도 직속 후배가 생긴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부서에 신입 사원을 받거나, 후배가 있던 적은 있었지만 내가 처음부터 가르쳐줘야 하는 후배가 생긴 것은 처음이다.
사실 인턴이란 계륵 같은 존재이다. 제한된 기간 동안만 함께 하고 이후에 함께하지 못할 있을 확률이 높다. 정규직이 된다고 해도 인턴 때 있던 부서에 배정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 게다가 회사 소속이 아니라 핵심 업무를 인수인계 해주기에도 애매하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회사 생활 흉내를 내다가 헤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존 업무를 하기에도 벅찬데 후배까지 챙기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벅찬 일일 수도 있다. 인사도 현업의 노이즈를 인지하고 있는지, 멘토들에게 온라인 강의와 가이드 파일을 통해 인턴에게 자질구레한 일만 시키거나 인턴을 방치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종종 발생하는 일인가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턴에게 잘해주고 싶다. 23살의 여름, 멋도 모르고 회의에 참석하고 자료를 만들다가 이유도 모르고 혼나고, 구박받았던 감정은 결코 깔끔하지 않았다. 내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부족했을 것이었다. 다만 말 그대로 몰랐을 뿐인데 일일이 혼나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불합리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 앞에서 눈치를 살피는 인턴을 마주하니 잘해주고 싶다는 생각은 더욱 커졌다. 짧게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다양한 활동을 했고 다른 회사에서 인턴 활동도 했었는데 방치받았던 시간이 길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선배와 커피를 마시는 자체도 처음 있는 일이라는 말에 나의 MBTI가 순간적으로 F로 변했다. 자식, 조금은 짠하잖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친구랑 임팩트 있는 5주를 지내봐야겠다. 인턴은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시간이, 나는 선배의 역할을 배워나가는 시간이 되리라 기대해 본다. 연초에 사주에서 올해는 일 복이 많다고 했는데 멘토의 일도 포함되어 있을 줄이야. 무더운 여름, 지겨운 출근길에 작은 변화가 기대되는 일요일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