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의사이고 싶다.
대학병원의 장점은 울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마다 병명은 다르지만 대학병원에 왔다는 것은 대다수가 작지 않은 병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진료실을 나온 환자 본인이나 가족이 울음을 터뜨리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엄마가 유방암 4기라는 판정을 받고 병원 복도에서 소리 죽여 한참을 울어도 그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철저한 타인이지만 모두가 슬픈 공감대 안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25년 가을, 엄마는 세 번째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엄마가 다시 아프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2004년과 2013년, 첫 발병과 재발을 겪었고 수술과 항암 그리고 방사선 치료를 받았었다. 의학적인 기준에서 완치 판정을 받았었고 그렇게 암은 우리 가족에게서 멀어졌다. 그렇게 여겼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이라는 단어가 드문 것처럼 엄마의 완치도 세 번째로 찾아온 유방암 앞에서는 한낱 과거로 사라져 버렸다.
25년 8월, 엄마의 오른쪽 팔에 원인 모를 통증이 찾아오고 부종과 팔 저림이 찾아왔다. 부모님은 일련의 증상을 목디스크라 여겨 디스크 전문 병원만 다녔다. 그러다 9월, 지방 대학병원에 갔고 심상치 않은 통증과 과거 병력을 들은 의사가 어쩌면 종양으로 인한 증세일 수 있다며 PET 촬영을 권했다. 결과는 우측 림프절 내 재발 의심소견으로 즉시 상위 병원으로의 전원을 권했다. 그 길로 1, 2차 치료를 받았던 서울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위한 대소동을 벌였다.
언제나 그러하듯 대학 병원 예약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코로나 이후 더 악화되었다고 한다. 엄마의 상태는 심상치 않았다. 오른쪽 팔은 부종과 운동 기능 저하로 쓸 수가 없었다. 통증은 어찌나 심하던지 펜타닐 패치를 붙이고도 괴로워했다. 처방받은 각종 마약성 진통제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대학 병원 일정을 잡아야 했으나 쉽지 않았다. 얄팍한 인맥을 탈탈 털어도 병원 예약을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어색함을 참고 잘 모르는 회사 선배에게까지 연락했지만 아는 사람을 통해 알음알음 일정을 잡는 시대가 끝난 것인지 혹은 내가 그만큼의 인복이 없던 것인지 결국 내가 기댈 곳은 전화밖에 없었다. 마치 수강신청처럼 병원 콜센터에 전화해서 취소된 자리가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이 유일했다.
"지금은 예약 가능한 일정이 없습니다."라고 상대방이 말하면 "네, 또 전화드리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동생과 시간을 나눠서 30분 혹은 20분에 한 번씩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나중에는 엄마의 병원 등록 번호를 말하기만 해도 상담 직원이 아는 체를 했다. 물론 아는 체와 예약 성공 여부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삼일 정도 전화를 돌린 결과, 가장 처음 잡았던 일정보다 2주 앞으로 당길 수 있었다. 병이 치료된 것도 아닌데 병원 일정을 잡은 것만으로도 희망이 보였다. 병원을 가기만 하면,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만 하면 모든 고통과 통증이 사라지고 다시 한번 완치라는 단어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기대가 커졌다.
그렇지만 세상 대부분 일이 그러하듯 단 한 번의 진료나 체험이나 시도로 인생이 뒤집히는 발생하지 않았고, 엄마의 투병 생활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