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_"이런 상태를 유방암 4기로 분류합니다."

그렇게 확진을 받았다.

by 도링기

그 무렵, 엄마가 지하철에서 울음을 터뜨린 일이 있었다. 아마 세 번째 진료를 보고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뚜렷한 진단도, 치료 방법도 알 수 없는 채로 유방외과와 가정의학과, 재활의학과, 마취 통증과 등 갈 수 있는 협진은 모두 받고 있던 나날이었다. 진료를 보고 나서 나는 회사로, 엄마는 동생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휴대폰으로 회사 메일을 바쁘게 읽고 있던 중이었다.

"있잖아, 이번에는 정말 오래 못 살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나지막한 엄마의 목소리에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엄마 왜 그런 말을 해?"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물어보았다. 화를 내거나 감정적으로 대답하면 엄마가 더 불안해할 것 같아 진료실의 교수님처럼 적절히 객관적인 어조로.

"그냥, 이번에는 다들 뭔지도 모르고 시간만 걸리고, 그 와중에 팔은 점점 아프고 쓸 수도 없고. 기분이 이상해. 못 살 것 같아."

그리고 나서 엄마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나는 엄마를 일으켜 세워 지하철 밖으로 나가 카페로 향했다. 여전히 객관적인 어조로 엄마를 달래면서 걸었다.

엄마는 이대로 죽을 것 같다고 겁이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럽고 억울하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하고 싶은 거나 할걸, 참지 말고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이나 할걸, 보고 싶은 영화도 영화관에서 볼걸. 엄마가 아쉬워하고 서러워하는 일들이 내 입장에서는 참으로 소박해서 더 마음이 아팠다.

"엄마, 나도 속상하고 답답하지만 우리 가족 다 마라톤처럼 여기기로 했잖아. 그래도 조직검사도 했고, 금방 항암도 할 수 있을 거야. 항암을 하면 암도 작아져서 오른팔도 조금씩 괜찮아질 거야. 너무 우울해하지 마, 엄마. 다 잘 될 거야."

나 또한 알 수 없는 막연한 미래에 억지로 분홍색 색을 입히며 엄마에게 얼룩덜룩한 위로를 건네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멈추고 웃어보았다. 도착한 카페에 다양한 빵이 있어서, 라떼 위에 예쁜 라떼 아트가 얹어져 있어서, 그 라떼의 맛이 참 좋아서 엄마는 또 웃었다. 죽음이라는 무기력한 슬픔 앞에서도 라떼의 향긋함에 웃을 수 있는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엄마의 걱정이 기우이기를 바라며 혼자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울음을 쏟아냈다. 엄마 앞에서는 보일 수 없던 눈물을 덩어리째로 쏟아냈다.



"조직검사를 했는데 표본이 너무 작아서 어떤 암인지 알 수 없었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람. 조직 검사 후 엄마는 어깨와 팔이 부어올라 고생하고 있었다. 표본을 채취하기 위해서 암이 있는 부위에 바늘을 넣어 자극을 줄 수밖에 없었고, 가뜩이나 막혀있는 림프절에 악영향을 주었다. 안 그래도 힘든 엄마의 일상생활을 더 악화시켰지만 그 결과는 '알 수 없음'이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조직 검사 결과 암은 맞아요. 오른쪽과 왼쪽 림프절을 검사해 보니 오른쪽은 암, 왼쪽은 암이 아닌 걸로 보이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유방암 외과잖아요? 환자분은 지금 수술이나 방사선을 할 수 없는 상태니까 이제부터 혈액종양내과에서 항암을 담당할 거예요. 나가서 기다리면 간호사가 이후 일정을 설명해 줄 겁니다."


"그렇다면 오른쪽 림프절만 재발이고, 상태는 예상보다 좋다고 보면 될까요?"

나는 작은 희망이라도 잡고 싶어 물어봤다.

"자세한 설명은 혈액종양내과에서 해줄 건데 아주 상황이 좋은 건 아니에요. 위치가 안 좋고, 아무튼 혈액종양내과에서 얘기해 줄 겁니다."

수술을 하지 않으니 이제 우리와는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에 정이 떨어졌다. 대학병원 교수도 크게 보면 직장인이니까, 타 부서 일을 굳이 도맡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공감했으나 환자의 보호자 입장에서는 가슴이 답답할 뿐이었다. 차라리 챗지피티가 나았다. 그렇지만 나는 이 병원의 갑을병'정'. 알았다는 대답과 함께 자리를 떴다.

불행 중 다행인지 같은 날 혈액종양내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약 다섯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어디를 가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라 병원에서 계속 기다렸는데 우리는 최대한 좋은 생각만 했다. 기분 전환을 위해 26년도에 같이 어디로 여행을 가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눴다. 2020년에 엄마와 함께 포르투갈로 여행을 가려고 모두 예약해 두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취소했어야만 했다. 우리는 이제 갈 수 있겠다며 포르투갈에 가면 무엇을 구경하고 먹을지 대화했다. 중간중간 불안한 침묵은 어쩔 수 없이 발생했다.



"자, PET 검사랑 조직검사 결과를 종합해서 보니까 유방암 4기로 보여요. 여기 오른쪽 림프절, 이건 확실히 암이고 왼쪽 림프절도 암 같거든요?"

다섯 시간 하고도 한 시간 만에 만난 혈액종양내과의 교수님은 또 다른 진단을 내렸다.

"그렇지만 유방암 외과에서는 왼쪽 림프절은 암이 아니라고..."


"조직 검사 결과에는 암이 아니라고 하지만, 영상에서 보이는 소견과 현재 오른쪽 림프절을 보면 임상적으로 암이라고 볼 수 있구요. 이런 상태를 유방암 4기로 분류합니다."

내가 예상한 시나리오에 유방암 4기는 없었다. 항암 8회와 방사선 25회를 받고 완치 판정을 받고 포르투갈로 같이 여행을 가는 시나리오만 있었다. 혹은 항암 12회와 방사선 40회 같은, 횟수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4기라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표적항암과 호르몬제를 계속 먹을 거고요. 여기서 계속이라는 건 죽기 전까지 먹는다는 거예요. 환자분 고혈압약 드시고 계시죠, 그렇게 만성 질환이라 생각하면서 치료받으시는 거예요. 항암을 시작해야 하는데 지금 환자분은 조직검사상 어떤 암인지 알 수 없어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확인을 한 번 하려고 하거든요? 자세한 건 밖에서 설명 들으실게요."

만성 질환이라는 표현과 유방암 4기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은 단어였다. 우리 둘은 진료실 밖으로 나와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어버렸다. 처음에는 목디스크인 줄 알았는데, 이제 암 4기가 되었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카톡이 와있었다. 어떻게 소식을 전해야 할까. 나는 최대한 긍정적인 단어만 골라 뽑아냈다. 당장은 모든 슬픔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억지로 쥐어짜낸 대답이다. 아빠도 기다리느라 속이 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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