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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o Switzerland Pt.2

Bizarre but favorable, Switzerland

by DONE

[Do]Ro: Switzerland

내가 누빈 세상의 모든 도로들: 스위스 편

Pt.2 유럽의 지붕에 서보려고 융프라우로 갑니다.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피르스트


Day 2: Getting Ready

2023.01.02 06:30 @ First Lodge, Grindelwald

12,684m. 이날 우리가 수직으로 오르고 내린 거리다. 물론 산을 오르고 내리는 진짜 운동은 내연기관이 다 해주었지만, 왕성한 활동량과 부실한 점심메뉴가 예상되었기에 조식을 든든히 챙겨 먹었다. 각종 빵과 햄, 치즈, 시리얼, 삶은 달걀, 커피까지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우리 말고도 세 명의 스웨덴 가족과 다른 두 친구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스키를 타러 왔었다. 다음에는 그린델발트 쪽에서 스키를 타보면 어떨까 싶다.


1월 초의 스위스는 생각보다 훨씬 따뜻했다. 나는 눈이 상당히 쌓여있는 영하의 날씨를 생각했는데 마을에는 눈이 거의 없었고 저녁 전에는 긴팔을 두, 세 겹 껴입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만 오늘의 목적지인 융프라우는 해발 4,000m가 넘는 산이었고 사시사철 추울 테니 따뜻하게 챙겨 입어야 했다. 스위스 여행 시 복장 같은 경우에는 크고 두꺼운 다운패딩보다는 보온기능이 있는 기능성 옷을 여러 겹 챙기고 바람을 효과적으로 막아줄 하드쉘을 준비해 오는 게 적당해 보인다.


2023.01.02 09:30 @ Jungfraujoch

융프라우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Grindelwald Terminal역으로 가야 했다. 일단 여기로 오면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 융프라우에 있는 역으로 융프라우를 간다는 건 여길 간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로 가는 루트를 입맛에 맞춰 선택하면 된다. 우리는 가장 빠른 아이거 익스프레스(Eiger Express; 빠르고 웅장한 케이블카다.) 루트를 택했다. 스위스패스를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할인된 가격으로 티켓팅을 할 수 있었다. 아래의 사이트에서 미리 예매를 할 수도 있지만 극성수기에도 표가 없어 못 가는 일은 없다고 하니 루트와 할인정보에 대해서만 리서치하고 현장에서 구매해도 상관은 없다.


Website: https://www.jungfrau.ch/en-gb/prices-and-tickets/


융프라우가 유럽의 정상 혹은 지붕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있는 유럽의 가장 높은 장소이기 때문이란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까마득히 아름다운 파노라마 뷰와 아니코닉한 스위스 깃발을 보기 위해 매년 수많은 여행가들이 융프라우를 찾는다. 역시나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주변에 한국인 단체 관광객 무리도 더러 있었고 일찍부터 나온 스키어와 보더들로 붐볐다.


융프라우요흐 내부에는 1912년에 개장한 선로를 만들었던 과정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얼음동굴이나 스핑크스 전망대(Spinx Observatory)등 여러 볼거리가 있으니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역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융프라우 자체를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하이킹을 추천한다. 등반이 부담된다면 내려오는 코스라도 도전해 보길.


융프라우를 방문했다면 '필히' 가야하는 장소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Jungfrau Plateau다. 이름 그대로 융프라우 높은 곳에 자리잡은 평원으로 아이코닉한 빨간색의 스위스 국기와 주변 산맥들의 파노라마 뷰가 모두 담겨져 있는 공간이다. 여러 여행지 중 자연관경을 보고 진심으로 놀랐던 건 아직 융프라우가 유일하다. 새하얀 눈 이불을 덮고 있는 거대한 설산에 압도당하는 기분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짜릿하면서도 단순히 너무 아름답다.


사실 이 날 융프라우로 오르는 동안 내가 애지중지 키워온 반려동물을, 한학기를 매달려 준비한 프로젝트를, 마치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 키운 무언가를 친구들에게 소개해주러 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몇년전 이곳에서 느꼈던 기분이 오로지 친구들에게 전해지기를 기대했다. 당연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같은 것에 대한 개인의 감상은 단지 공감될 수 있을뿐, TFRecord 마냥 공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소감문을 늘어지게 써봤자,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이 직접 서보지 않는다면 '당신의 융프라우'는 영영 탄생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이 글에 융프라우에 대한 구구절절한 묘사들을 이 이상 나열하고 싶지는 않다. 백문이 불여일견, Jungfrau Plateau에서 카메라에 담은 전경을 공유해 본다. 본인의 눈으로도 직접 담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와 H, 그리고 D는 각자의 융프라우를 형성하기를 수십분 다시금 실내로 발을 옮겼다. 융프라우 전망대에서 이제는 식상할 만큼 유명한 신라면과 미리 챙겨간 과일,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했다. 물론 신라면도 훌륭했지만 H가 챙겨온 Miss Swiss 코코아가 더 좋았던 식사였다. 눈도 배도 채웠겠다 우리는 더이상 지체하지 않고 산을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하산 루트로는 산악열차를 이용했는데 조금 느리긴 해도 마치 내가 웨스 엔더슨 감독의 영화 한 장면에 들어와있는 듯한 기분이 났으니 이런 걸 두고 '느림의 미학'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린델발트 역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숙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First Lodge'가 아닌 'First'로 가기 위해서였다.


Wes Anderson.mp4


First: Top of Adventure

2023.01.02 13:30 @ First

'퍼스트'가 아니고 '피르스트'. 그린델발트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피르스트는 융프라우 와는 또 다른 매력을 소유한 곳이다.


Top of Adventure (모험의 정상)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만큼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 들로 가득하다. 해발 2,166m의 절벽 위를 걷는 First Cliff Walk 또는 공기를 시속 84km로 가르는 First Flyer 등 다양한 액티비티에 대한 정보는 아래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Website: Grindelwald First – Top of Adventure | jungfrau.ch


고소공포증이 있는 D를 뒤로하고 (First 같이 올라와준 것만 해도 감사하다.) H와 나는 곧장 Cliff Walk로 향했다. 사람들로 조금 붐비긴 했지만 순간 나는 맨몸으로 절벽을 오르는 암벽등반가였고 테러리스트의 본거지로 잠입하는 새로운 007이기도 했다. Cliff Walk 뿐만 아니라 다른 다양한 액티비티 속에서 나는 무엇이 될지 궁금하다면 피르스트를 추천한다.


Cliff Walk.mp4

개인적으로 Cliff Walk를 걸을때는 풍경을 구경하기 보다도 나를 지탱해주는 구조물을 만들어낸 이들에 대한 존경이 앞섰다.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이는 돌 절벽에 이처럼 든든한 공학기술과 노동의 결정체가 멋지게 느껴졌다. 덕분에 스위스 산맥을 배경으로한 사진들을 건진후에 피르스트 정상에 위치한 First Mountain Restaurant으로 이동했다. 솔직히 음식이 특별히 맛있다거나 특색이 있어보이지는 않았음에도 가격은 꽤나 자비가 없었다. 고로 나는 음식을 시켜먹지 않고 주변 탐색에 나섰다.


이날은 좋은 풍경사진을 찍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광각렌즈도 줌렌즈도 없었다는 변명은 둘째치고 어떤 피사체를, 어떤 가상의 프레임 안에 넣고 찍을지 결정하기가 힘들었고 그렇다고 배경만 찍자니 그럴듯한 구도를 찾는것도 보통일은 아니었다. 풍경사진도 좀 더 공부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너무 심취해 버린 탓일까 피르스트 투어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고, 하이킹으로 반 정도 하산, 나머지 반은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계획은 무산되었다. 대신 케이블카를 타고 숙소로 복귀한 우리들은 저녁식사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음날 이동을 위해 짐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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