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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Oct 04. 2021

+28, 쓰이는 사람, 쓰는 삶.

여전히, 쓰임새를 찾아서

그래, 들어가야지. 기꺼이 들어가고 말고. 들어가서 그 익숙한 구조 속에서 이리저리 쓰이고 치이며 살아가야지.


단, 쓰이는 만큼 쓰는 삶을 살아야지.




이것이 내 몇 년간의 방황의 결론이다. 너무 초라한가?


누군가에 의해 쓰이는 것은 우리의 에너지를 정말 많이 필요로 한다. 정확히는, 에너지를 정말 많이 소모시킨다. 

그 에너지는 단순한 체력이나 정신력과는 조금 다른 개념인 것 같다. 잠깐의 휴식이나 며칠 간의 휴가로는 충전될 수 없는 그런 무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에너지를 얻어야 하나?


그 에너지는 고통을 감내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정확히는, 자발적으로 만드는 고통으로 한정된다. 

고통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다. 그것의 근원은 아픔, 굶주림 등 신체적인 요인들이거나 창작, 인내, 절제 등 정신적인 요인들이다.


예를 들어서, 달리기를 하면서 폐가 찢어지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고통을 견뎌내어 완주하는 경험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준다. 또는, 머릿속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쥐어 짜내는 듯한 고통을 견뎌내어 결과물을 만드는 것도 우리에게 에너지를 준다. 

단, 누군가의 강압이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닌, 자기 스스로의 의지에서 시작된 고통일 때 말이다.


또 하나의 깨달음. 에너지를 쓰기만 하면 어느 순간 고갈되는 것처럼, 에너지를 얻기만 하면 어느 순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넘쳐버리고 만다. 마치 빛이 있는 곳에서 반드시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은 에너지를 쓰는 것과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특히나 정신적인 활동에 있어서 이 법칙은 훨씬 명확하게 작동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하루 종일 창작의 고통 속에 나를 몰아넣다 보면 어느 순간 더 이상의 발전이 없어지는 때가 온다. 왠지 눈은 뻑뻑하고 고개는 빳빳해지며, 등허리가 괜스레 쑤시는 듯하다. 

그 순간이 바로 에너지가 넘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부터는 남는 에너지는 모두 허비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언가에 집중하다 보면 밀린 집안일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니깐. 달도 차면 기울고, 채우기 위해서는 비워야 하는 법이니까. 


그것이 조화로운 삶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쓰이기만 하는 삶은 허무하고 공허하다. 반대로, 쓰기만 하는 삶은 발전의 여지가 적다.


때로는 쓰이고, 때로는 쓰는 삶. 좋지 아니한가?






     『앞뒤로 30날』은


삶의 크고 작은 분기점의 앞뒤로 30일 동안 매일 글을 쓰면서, 자신을 마주하고 마음을 다 잡는 솔직한 고백이자 성찰의 기록입니다. 매일 남은 혹은 지난 날짜를 체크하며, 주제에 따른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려 합니다.


앞뒤로 30날을 기록하고 싶으신 모든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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