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독립 잡지를 만듭니다. #3

기획, 그림 그리기의 연속 [두루]

by 두루 do rough

결국, 2020년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시작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끝나는 해가 되어버렸습니다. 연말까지 계속될 높은 수준의 거리두기 정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저 또한 다음 호 작업을 하는 단계에서 작업 공간을 찾지 못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창간호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다루면서 2차 유행의 불씨가 불로 번지지 않기를 바랐는데, 지금은 3차 대유행이라는 말을 쓸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정말 힘든 상황이지만, 2021년을 위해 조금만 더 참고 견뎌봅시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모두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지난 글에서는 매거진 '손'이라는 큰 주제를 기획하고, 그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기획의 초기 단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Cap 2020-12-13 22-05-57-762.png 5월 중순 작성된 초기 기획안에서 발췌. 매거진 이름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작업은 큰 덩어리의 기획을 점차 작은 단위로 세분화하는 것이었습니다. 2020년 5월은 온전히 기획에만 집중했던 시기였던 것 같네요. 캔버스에 큰 스케치를 끝내고 나서, 작은 부분들을 살피며 굵은 선으로 형태를 잡아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기획의 핵심 문장,


'우리의 삶이 새겨진 손에서 찾을 수 있는 순간들에 대하여.' 이 한 문장만으로는 절대 책의 페이지 하나하나를 채울 수 없습니다.

페이지들을 채우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해서, 큰 목차와 흐름을 만들고, 각 목차에 채워질 거리들(글, 사진, 그래픽 등)을 정리하고, 각 부분에 할당할 수 있는 대략적인 분량을 정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계속해서 책의 큰 주제와 핵심 문장을 되뇌는 것이 중요합니다.



Cap 2020-12-13 22-05-43-275.png 5월 중순 작성된 초기 기획안에서 발췌. 계속해서 수정에 수정이 거듭됩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 매거진이고 싶나요?' '어떻게 내용을 채우려고 하세요?'

독립 매거진 제작 수업의 초반부, 기획 단계를 거치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입니다. 수업에서는 한 달 남짓한 분량이었지만, 실제 매거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는 적어도 네 달 정도는 스스로 묻고 답하며 대답할 내용을 채워나갔습니다.


편집이나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기획 단계에서 각자의 매거진이 가지는 고유의 개성이 발현됩니다. 같은 주제라 할지라도 어떤 매거진에서는 글이, 다른 매거진에서는 사진이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표현 방식이 유사할지라도 그것을 풀어내는 스토리텔링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매거진이 될 수도 있고요.


매거진을 만드는 사람의 역량도 기획의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특히 독립 매거진이라고 한다면요.

글을 쓸 자신이 없는데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루려 한다거나, 디자인을 전혀 할 줄 모르는데 그래픽 아트워크가 중심이 되는 매거진을 한다는 것은, 자칫 무모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외주 형식으로 많은 것들을 해결할 수는 있지만, 그만큼의 비용을 감당해야 하죠.

오히려 각자의 무기를 잘 다듬는 것이 다른 매거진과의 차별화 포인트를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무기가 크고 화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단하고 날카롭기만 하다면 아주 작은 것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매거진 손도 언젠가는 그런 무기를 가질 수 있겠죠.



하지만 기획 단계는, 후에 이어질 편집 단계보다는 살짝 느슨한 태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기획은 절대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내용을 모으고 디자인과 편집을 고민하면서, 심지어는 다음 호를 작업하면서도 조금씩 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창간호 WAVE 이후에 받은 여러 피드백을 바탕으로, 다음 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 요소에 대한 피드백 중에, 기획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생기는 피드백을 어떻게 반영해야 할지 여전히 고민이 많네요.



· 차이점이 만드는 매력 포인트


매거진과 단행본, 그리고 매거진 손과 다른 매거진의 차이점에 대해 기획 단계를 중심으로 짧게 제 생각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이 차이점을 매력 포인트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겠죠.



먼저, 매거진과 단행본의 가장 큰 차이는 '연속성'입니다.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행본은 한 번의 출판으로 완결되는 책을 의미하는 반면, 매거진은 하나의 주제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연속적으로 풀어내는 매체입니다. 기존의 매거진들은 주간-월간-계간 등의 정기적인 발행 주기에 엄격했지만, 최근에는 비정기적인 발행 주기를 가진 매거진들도 많습니다. 매거진 손 또한 그렇구요.


편집장이 유독 매거진에 있어서 핵심적인, 매거진을 대표하는 직함으로 쓰이는 이유도 연속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매거진의 성격과 방향성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는 편집장의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편집장이 곧 매거진의 얼굴이자 정체성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아요. 유명한 맛집의 비결이 사장님의 '손맛'인 것과 비슷한 느낌이죠.

단행본은 작가의 개성과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방향으로 편집과 디자인을 해야 하는 반면, 매거진은 매거진 자체의 개성과 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편집과 디자인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케팅에서 흔히 쓰는 '페르소나'라는 용어처럼, 매거진을 어떤 사람으로 가정하고 그 성격과 특징을 만들어낸다면, 가장 그것에 적합한 인물은 그 매거진의 편집장일 것입니다.


또 하나 연속성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주제의 확장성입니다. 처음 기획한 주제를 지나치게 낯선 분야에 국한시키거나 시야를 좁게 설정한다면, 몇 호 지나지 않아 아이디어가 고갈되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일 수 있습니다.

매거진 B(브랜드)나 페이보릿 매거진(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매거진 손(손)처럼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이야깃거리의 한계를 예상하기 어려운 주제라면 확장성이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죠. 매거진 손은 과연.


KakaoTalk_20201213_221132961.jpg 각자 다른 매력을 가진 매거진들.



다음으로, 매거진 손과 다른 매거진의 차이입니다. 이 부분에서 각 매거진이 가지는 매력 포인트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죠. 지금도 열심히 매력 포인트를 찾는 중이구요.


매거진 손은 1인 기획-편집-디자인 매거진 입니다.

일반적인 매거진 제작 과정에서 취재(기획과 편집 사이)를 제외한, 나머지 과정 전체를 한 명이 모두 맡는다는 특징을 가진 매거진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오히려 작가를 중심으로 제작되는 단행본과 더욱 유사해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편집장보다 제작자라는 호칭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차이점을 고유의 매력 포인트로 만들고 싶습니다.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모든 과정을 홀로 진행하고 주요 컨텐츠(글, 사진, 그래픽 등)를 직접 만들어 넣음으로써, 철저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방향으로 접근하려 합니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경계에 서 있는 개인의 일상적인 삶에서 영감을 얻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자유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매거진, 그것이 매거진 손이 지향하는 목표입니다.



이제 시작하는 매거진인 만큼, 주제와 표현 방식에 있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것 또한 매거진이라서 가능한 방법인 것 같네요.





기획이 얼추 정리되면서, 점점 실체를 만드는 일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수업의 끝을 향해갈수록,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죠. '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땐, 분위기가 무거워지기도 했죠. 독립 출판을 함께하는 모든 분들이 새삼 존경스러웠던 순간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편집과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기술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방향을 잃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2020년 5월의 이야기

@do.rough @magazine.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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