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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Dec 19. 2020

「30살 앞 30날」D-14

17. 14

30살 앞 30날



17. 14, days of meeting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유럽 여행이 벌써 3년 전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최종 면접을 합격한 이후 가장 먼저 계획한 일이었다. 연수원에 들어가기까지 한 달 남짓 남은 상황에서, 10일이 넘게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어쩌면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였다. 그리고 그것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정말 다시없을 기회가 되어버렸다.



그전까지 해외여행을 떠나본 적도 없었고, 낯선 곳에서 낯선 언어로 대화해야 한다는 것만 생각해도 불안해서 견디기 힘들 정도로 소심한 나였지만, 한 번쯤은 그 벽을 넘고 싶었다. 타고난 성격을 극복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결국 아직도 멀쩡히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그 순간을 무사히 견뎌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인스타그램을 열어 3년 전 여행의 순간을 다시 되짚어보았다. 놀랍게도 3년 전 12월 19일에 나는 유럽의 한 복판에 있었다. 여행을 시작한 지 4일째가 되는 날이었고, 불안함을 떨치고 여행을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때였다.



[+2] bauhaus


베를린에 도착하고 불안과 설렘으로 밤을 설친 다음 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바우하우스였다. 1919년 세워진 시각-조형예술 학교로, 모더니즘의 시초이자 현대 디자인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그곳. 대학 시절 디자인 이론 강의를 들으며 언젠가는 꼭 가보겠다고 다짐했던 곳이었다.



사진으로만 접하던 건축물을 실제로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때만큼은 모든 불안을 떨쳐버리고 오로지 바우하우스를 느끼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 느낌이 너무 황홀해서 베를린에 머무르는 동안 세 번이나 찾아갔다. 단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내부 공사로 인해 전시를 다 볼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바우하우스 카페에 앉아 발음하기도 어려운 메뉴를 시켜놓고 그윽하게 창 밖을 보고 있으면, 괜히 지성이 충만해지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기념품 샵에 들러 마음에 드는 것들을 하나둘씩 사 오기도 했는데, 포스터를 더 많이 사 올 걸 하는 후회가 남아있다. 한국에서 구하기에는 꽤 비싸기도 하고, 그나마 사 왔던 포스터 한 장은 이사를 하던 과정에서 찢어져버렸다. 찢어졌어도 버리지 말 것을.



[+4] 버스


4일 차에는 과감하게 버스 투어에 도전했다. 정해진 코스나 프로그램 없이, 나 홀로 무작정 아무 버스나 타고 베를린 시내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적응을 하면서 여유가 생긴 것일까.



목적지를 정해두고 버스를 타면, 온 신경을 구글 맵에 곤두세우고 있어야 했다. 독일어로 흘러나오는 안내 방송은 듣고 있어도 아무 의미가 없었으니, 구글이 알려주는 곳에서 제 때 내려야만 했다.

하지만, 목적지가 없이 버스를 타니 그제야 도시의 풍경이 눈에 제대로 들어왔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날씨도 흐릿했지만 그 감성도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베를린에는 2층 버스가 굉장히 많은데, 처음으로 2층에 올라가서 앉기도 했다. 2층 맨 앞 좌석에 앉아, 큰 창으로 내다보는 그 뷰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온 이후, 악몽이 시작되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노트북이 고장나버렸는데, 졸업을 위한 포트폴리오를 제출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결국 예정된 일정을 모두 변경해야만 했다. 프랑크푸르트로 떠나는 버스를 취소하고, 묵던 호텔을 연장하고, 이틀 동안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이 그 머나먼 타지에서 노트북을 고치고 있었다. 참 별 일이 다 있다.



[+7]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파리 리옹 기차역의 풍경.

대부분은 이 사진을 보고 프랑스의 낭만을 꿈꾸며 설렘을 느끼겠지만, 이 사진을 찍던 나는 공포에 질려있었다.



베를린에서 파리로, 꼬박 밤을 새우며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6-7시간은 되는 이동에 허리가 쪼개질 것 같았는데, 낯선 외국인들로 가득한 그 상황도 편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짐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리뷰들도 내 예민함을 증폭시켰고.

그렇게 겨우 파리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가 동이 틀 즈음이었다. 터미널에 내리고 가장 먼저 나를 반겨준 것은 눅눅한 악취였다. 파리가 더럽다고는 했지만 그 정도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게다가 곳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무리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다행히 버스 터미널과 리옹 기차역은 가까운 편이었다. 10분 남짓 빠른 걸음으로 기차역에 겨우 도착했지만, 3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잠을 설친 탓에 점점 눈이 감겨오는데, 눈을 감으면 빈털터리가 될 것 같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캐리어를 꼭 붙잡고 어떻게든 눈을 뜨고 있기 위해 노력했다. 큰 소리가 들리기라도 할 때면, 캐리어를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며칠 뒤, 그 공포가 현실이 되는 순간을 맞이했다.



[+10] 크리스마스의 악몽


크리스마스였다. 

원래 걷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나였지만, 베를린에서 무리를 한 탓인지 발이 욱신거려 걷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였으니, 조금은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파리에 도착했으니, 에펠탑을 안 볼 수 없지. 느지막이 출발해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에펠탑의 화려한 조명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나 보다. 역시 에펠탑은 아름다웠다.



문제는,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터졌다. 소매치기의 도시 아니랄까 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을 연속으로.

지하철 개찰구에서 술에 떡이 된 외국인에게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다. 다짜고짜 팔을 감싸질 않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화를 내질 않나. 대충 짐작컨데, 지하철 표나 돈을 달라는 것 같았는데. 당황했지만 나도 돈이 없다는 식으로 제스처를 했더니, 몇 분을 다투고는 제 갈 길을 갔다.



힘들게 개찰구를 통과하고 3분이 지난 뒤, 열차가 들어왔다. 역시 크리스마스라, 사람이 바글바글. 그런데, 유독 내 주위에만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그 무리 중에 한 명이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고, 그때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스페인어 같기는 했는데, 그 말을 무시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10명 남짓한 무리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내 등 뒤에 있던 한 명이 내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너무 놀란 마음에 그 손을 쳐내면서 아무 말이나 뱉어댔다. 또 그렇게 목소리를 높여가며 실랑이를 하다가,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는 판단이었는지 길을 열어주었다. 코트 주머니에 지갑을 넣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멘털은 이미 탈탈 털려버렸다. 에펠탑의 조명은 이미 기억에서 지워졌고, 두 번의 소매치기에 대한 분노만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파리는 나에게 최악의 경험을 선사했다. 하루빨리 집에 돌아가고픈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14일간의 여행을 마쳤다. 베를린에서 7일, 파리에서 7일. 두 도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평생을 보낸 서울과도 너무 많은 것이 달랐고.



그 14일 간 만났던 새로운 세계. 그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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