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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Dec 20. 2020

「30살 앞 30날」D-13

18. 13

30살 앞 30날



18. 13, 보통의 존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뽑으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할 수 있는 책, 이석원 작가의 <보통의 존재>. 그 책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13페이지. 

첫 이야기의 제목은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으면서’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만드는 매거진, 매거진 <손>의 시작과도 많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이 이야기를 이끄는 문장인 “나는 손잡는 것을 좋아한다” 도 매거진 손의 프롤로그에서 오마주 했고. 그 문장을 뒷받침하는 생각 또한 비슷하다. 손잡는 것의 특별함을 공감하는 사이랄까.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 이석원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작가 이석원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첫 책으로 접한 <보통의 존재>도 예전 회사의 동기에게 선물로 받은 것이다.

선물을 받을 당시에 이유가 여전히 기억 한 구석에 깊게 남아있다. 그 친구는 나와 작가 이석원이 매우 닮았다고 했다. 정확히는 둘의 '찌질함'이 닮았다고.



찌질함을 닮았다는 그 말이 참 반가웠다. 

나는 내가 찌질하다는 것을 잘 알고, 그게 그리 나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찌질함을 나눌 정신적 동료가 생기는 것 같아, 너무나도 반가웠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우리가 나누는 찌질함은 이러하다. 

먼저, 매우 비관적이고 자조적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극히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현재 자신의 삶의 성과에 대해서도 절대 후한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불안과 걱정을 연료로 불태우는 삶이라고 해야 하나.

또한,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아주 강하다. 이석원이 본인의 음악에 만족하지 못한 것처럼, 내가 내 매거진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을 거의 학대하다시피 다루면서 살아가는 것이 참 닮았다. 물론 나는 이석원만큼 대단한 사람은 절대 아니지만.

그 외에도 예민함이나 외로움, 사랑을 원하지만 사람에 친화적이지 않은 성격까지 비슷한 것 같다.



<가장 보통의 존재> 라는 앨범과 동명의 노래가 만들어진 뒷 이야기가 이런 찌질함을 잘 보여준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특별하지 않은, 극히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난 심정을 담은 노래 <가장 보통의 존재>. 그것을 계기로 시작된 앨범 작업은 목표 날짜보다 1년이 넘게 지연되었고, 그 앨범은 한국 인디밴드 역사 상 길이 남을 명반이 되었다. 이것이 가장 보통의 존재가 해낼 수 있는 일인 건지, 그저 놀라울 뿐.



나는 보통의 존재

어디에나 흔하지

당신의 기억 속에

남겨질 수 없었지

가장 보통의 존재

별로 쓸모는 없지

나를 부르는 소리

들려오지 않았지

<가장 보통의 존재>, 언니네 이발관



다시 돌아와서, 우린 손잡는 것의 특별함을 공감하는 사이라는 것이다. 

고리타분하지만, 손을 잡는다는 것의 의미를 장난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관에서 손을 잡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고, 손 잡는 것이 애정의 척도가 된다는 생각도 비슷하다.



손을 ‘제대로’ 잡는다. 더 이상 손을 잡아도 설레지 않는, 오래된 사이가 되더라도 계속해서 손을 잡고 함께 있는다는 것. 손을 잡는다는 것에도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애정을 넘어선 신뢰의 사이가 되어간다는 것. 

나도 경험해보지 못했고, 과연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가장 그 경계에 가까워졌을 때에도, 결국 그 선을 넘지 못하고 잡은 손을 놓아버렸으니.



당연히 사람에 따라서 생각이 다를 테지만, 손을 잡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손을 잡는 것의 의미를 특별히 생각해주는 사람이 나는 좋다.



오늘은 잠들기 전에 <보통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읽어야겠다.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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