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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Jan 09. 2021

「30살 앞 30날」D+7

31. 에필로그

30살 앞 30날.



31. 에필로그



머리가 조금 더 길었다. 이제는 뒷머리가 목덜미를 거의 덮을 정도로.


여전히 로또 1등에는 당첨되지 못했다.


생활 패턴이 점차 무너지고 있다. 매거진 작업의 스트레스 때문이리라. 자연스레 몸과 마음도 예민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어제부터 폭설이 내리더니 역대급 추위를 기록했다. 그래 봐야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없는 백수지만.


김치찌개를 끓였다.


차를 자주 마시고 있다. 뜨겁게 올라오는 김에 코를 대고 멍하니 있는 것이 좋다.



「30살 앞 30날」 을 마감한 새해 첫날로부터 벌써 일주일이 빠르게 흘러갔다. 

매일 한 편의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던 일주일. 그다지 여유롭진 않았으나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기도 했다. 홀로 제작하는 매거진 손의 다음호 발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에필로그는 써야 한다. 매거진도, 이 시리즈도 프롤로그로 시작하여 에필로그로 완성되는,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렇지 않는다면, 글을 쓰다 만듯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을 것이다.



에필로그를 쓰기에 앞서, 프롤로그를 포함한 지난 31개의 글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다. 퇴고를 할 여유가 없었기에 다소 부족하고 미흡한 부분이 있겠으나, 그 또한 맛이라 생각하고 되새김질하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번뜩이는, 나의 마음을 움직였던, 「30살 앞 30날」 글쓰기의 의의를 충족시킨 일부 문장들을 다시 살펴보려 한다.






앞으로 「앞뒤로 30날」 에서는 삶의 크고 작은 분기점의 앞뒤로 30일 동안 매일 글을 쓰면서, 자신을 마주하고 마음을 다 잡는 솔직한 고백이자 성찰의 기록을 공유하려 합니다.

- 「앞뒤로 30날」 소개글 중


다행히도, 그리고 놀랍게도 30일 글쓰기를 하면서 점차 내 글이 솔직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의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내가 숨기려 했던 것들까지도 자연스레 글로 옮기는 내가 가끔은 신기하기도 했다. 2020년에 이루려 했던 목표는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30일 글쓰기의 목표는 이루어낸 듯하다.



그래서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사는 삶이 꽤 멋져 보였다.

- 「30살 앞 30날」D-30, 30살과 30대


언젠가부터 나는 ‘기술’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사전적인 의미의 기술도 맞지만, 그보다는 나만의 무언가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에 가까웠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아티스트들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특히, 좋아서 만드는 작업물을 위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며 버텨내는 예술가들을.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그 힘든 길을 인내하며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그 가시밭길을 발끝으로 톡톡 건드리며 나 자신을 시험하는 중인 것 같다.


얼마 전 팟캐스트 <아랫집 윗집 여자, 리뷰합니다> 에서 내가 추천한 컨텐츠가 떠오른다. 뱃사공의 노래 <레인보우>. ‘힘내 시X놈아 이건 빈말 아녀.’


그래, 힘내 시X놈아.



향을 피우는 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아마 몇 시간 전까지 한강에서 홀로 그 난리를 피웠던 것을 해소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나는, 사자니까.

몰래 숨어 지낼 구덩이를 파내는 나는, 사자니까.

나는, 거짓말쟁이니까.

- 「30살 앞 30날」D-26, 5달 26날


이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향을 하나 피웠다.

집에 놓인 향의 종류만 해도 3가지로, 인도-일본-한국산이 종류별로 구비되어있다. 거의 매일,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면 향을 피우며 달래고는 한다. 이전처럼 귀신에 홀린 듯 새벽 한강에 끌려가지는 않는 것을 보면, 많이 나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참회하는 마음을 뱉어내듯 쓴 <사자>라는 글. 거짓말쟁이였던 내 예전 삶을 후회하는 마음과 앞으로는 거짓말쟁이로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아, 향과 함께 피워내 본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바쁘고 힘든 일상에 쫓기다 보면 꿈을 꿀 여유가 없어진다. 지친 몸을 회복하기 위해 1분이라도 더 빨리 잠들기를 바랄 뿐, 마음을 달래고 내일을 꿈꾸기 위한 시간을 가질 틈은 점차 없어진다.

...

나는 우리 모두가 그럴 때면 하늘을 보는 여유를 갖길 바란다.

하늘은 언제나 우리 위에 있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하늘을 바라볼 일이 많지 않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수줍게 팔을 벌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3초만 멍하니 바라보자.

- 「30살 앞 30날」D-22, 꿈을 꿀 수 없는


2021년을 맞이하며, 새로운 습관을 만드려고 한다. 매일 해가 떠있는 시간에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는 것. 마스크를 써야 하는 답답한 상황일지라도, 5분 남짓한 여유를 가지는 것. 오늘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법을 지키지 않는 가해자 때문에 생기는 피해자가 그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서 감내해야 할 스트레스와 경제적, 사회적 비용은 어쩌면 그 피해보다 더욱 크고 무겁다. 그런 와중에도 가해자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것이 고의적이든,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든 간에.

- 「30살 앞 30날」D-19, 금기의 영역에서


2020년 연말에 이어서, 2021년 새해에도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는 맹위를 떨치고 있는 모양새다. 전국적으로 5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이 2주간 적용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그에 따른 피해도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 당장에 문을 닫는 가게들이 하나둘 늘어가는 것이 보일 정도니까.


이런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사회적으로도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 그 간극을 좁히는 역할의 사람들은 막상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오히려 지켜야 할 것들도 지키지 않는 뻔뻔함이 무섭기도 하고. 더 이상의 피해와 갈등이 늘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어쩌면 워크와 라이프를 일치시키려는 시도이다. 일에 대해 항상 깨어있는 태도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영감이라는 것은 일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불쑥 찾아오는 법이기도 하다.

- 「30살 앞 30날」D-15, 2⁴


일과 삶의 관계에 대한 여러분의 태도는 어떠한가요? 일과 삶은 분리되어야 하는 것인가요, 일과 삶이 동일시되어야 하는 것인가요. 혹은 그 무엇도 아닌, 모호하게 섞인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요.


얼마 전, 출판업계의 저명한 분들이 모인 온라인 심포지엄에서, 월간 디자인의 편집장님께서는 '워라블'이라는 단어를 제안했다. 워크-라이프 블렌디드라는, 일과 삶이 섞여 그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이 자신에게 적합한 라이프스타일이라고. 그렇지만 24시간 내내 일과 분리되지 못하는 삶은 왠지 많이 피폐할 것 같기도 하다. 평생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듯한 문제인 것은 확실하다.



혹 내 글을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지금껏 쓴 글 중에 어떤 글이 가장 인상 깊었을지도 궁금하다.

- 「30살 앞 30날」D-16, 중간점검


매번 막아놓던 댓글을 용감히 열어 놓겠습니다. 당신은 어떤 글이 가장 인상 깊으셨나요?



매년 1월 1일, 새해를 맞이하며 치르는 작은 의식이 있다. 어떤 공책이든 집히는 대로 들고, 따뜻한 커피와 함께 카페 한 켠에 앉아서, 마지막 장을 펴놓고는 올해를 간단하게 리뷰해본다. 그리고는 새해에 하고 싶은 일들을 아무렇게나 적는다. 그 일들이 조금은 허무맹랑할지라도. 그렇게 지난 365일을 내려놓고 다음 365일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내년, 2021년 1월 1일에는 절대 잊지 않고 해야 할, 새해 첫 숙제를 오늘 여기에 남겨 놓는다.

- 「30살 앞 30날」D-12, TO DO LIST


다행히, 올해는 새해 의식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다음은 그날 작성한 리스트의 내용이다.


하나, 거짓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기

둘, 매거진 손 3호까지 상반기 내에 발행하기

셋, 꾸준하게 운동하고 술은 줄이기

넷, 유튜브를 줄이고 대신 책 읽고 글쓰기

다섯, 스스로를 꾸준히 연구하고 꿈과 목표를 세우기

여섯, 브런치나 외주 작업의 기회를 만들기


그리 허무맹랑해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것을 다 해내려니 벌써부터 마음이 괜히 두근거린다.



달리기를 건강하게 잘하려면 명심해야 하는 중요한 포인트들이 있다.

발에 맞고 편한 러닝화를 신고 뛸 것, 일주일에 3일 이상 규칙적으로 뛸 것, 호흡과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집중할 것. 그중에서도, 뛰는 동안에는 절대 발을 내려다보지 말고 시선을 멀리 향하고 있을 것.

- 「30살 앞 30날」 D-7, Always


부끄럽게도 아직 올해는 달린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달려야 할 때다. 작업 속도를 올리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요즘, ‘발을 내려다보지 말고 시선을 멀리 향하고 있을 것’이라는 문장이 내 마음을 깊게 파고든다.


요 며칠 생활패턴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과거의 아픈 기억이 또다시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발 밑을 보는 것도 문제인데, 뒤를 돌아보고 있는 형국이라니. 그래도 메일을 보내는 와중에 트라우마가 되살아날 줄은 정말 몰랐다. 직장인이던 시절, 보낸 메일을 감시당하듯 토씨 하나하나 검열당하고 지적받던 그 순간의 불쾌하고 당혹스러운 감정이 되살아나버렸다. 한 마디 대꾸라도 했어야 할 것을, 주눅이 들어 한 줄기 식은땀만 흘리던 그 순간.

언제 들어갔는지 모를 양말 속 작은 돌멩이에 발바닥이 찔려 따끔하는 것처럼, 다 잊어버렸으리라 짐작했던 기억이 아물던 상처를 다시 찢어버렸다.


돌멩이를 빼내기 전에는 달리지 못한다. 달리더라도 언제 찔릴지 모른다는 불안함으로 인해 어정쩡한 자세와 속도로 뛰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자극이 곧 불안으로 바뀌는 것이 느껴져, 듣던 노래도 잠시 멈추었다. 어서 빠져라 돌멩이야, 제발.



꾸준함, 혹은 지속성은 지금까지의 내가 자연스레 포기한 가치였다. 30살 전까지 뭐든 닥치는 대로 해보겠다는 마음가짐과는 정반대의 것이었으니까. 길어야 6개월짜리 삶을 사는 것에 익숙해질 정도였으니까.

그런 나에게는 굉장한 도전인 것이다. 물론 마음은 조급하지만, 그래도 3호까지는 견뎌야 한다.

그래야 내 매거진도, 나도 정체성이 생길 수 있을 것만 같다.

- 「30살 앞 30날」D-3, 2, 1.


3호까지가 정확히 1년. 1년짜리 삶의 종착점을 매거진 3호로 찍어야 한다.

정체성을 내가 규정할 수 없다면, 외부의 시선을 통해서라도 내 삶을 규정하고 싶은 심정이다.



나 또한 매 순간 내 다음을 향해 함께 나아갈 동반자를 찾고 있다. 그것이 때로는 부모님이나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드럼 연주 같은 취미일 수도 있고, 매거진을 만들고 글을 쓰는 일일 수도 있고, 정말 사랑하는 연인이 될 수도 있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2인조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소중하고, 정말 소중하다. 내년, 아니 내일부터는 더 열심히 사랑하고 싶다.

- 「30살 앞 30날」D-2, of us.


“지금 주변에 본인을 믿고 이해해줄, 본인의 이야기를 다 털어놓아도 괜찮은 사람이 있나요?”

- 「30살 앞 30날」D-1, 단 하나의 목표


아직은, 나 자신과 그리 친해지지는 못했다. 여전히 이석원 작가의 「2인조」를 다 읽지 못한 탓도 있고, 습관처럼 나 자신보다 외부 자극에 더 집중하게 되는 탓도 있다.

‘매일 마음속 햇빛 쬐기’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일주일 동안 잘 지켰냐고 묻는다면, 솔직하게 아니라고 대답해야 한다. 그래서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다시 되새기고 싶은, 가장 중요한 문장.


지금 이렇게 30일 동안 다가올 새해를 준비하는 것처럼, 1월 1일이 되면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는, 숨을 고르는 시간도 필요해진다. 억지로 급하게 뛰어 나갔다가는 이내 호흡이 달려서 멈춰 서야 할지도 모른다.

- 「30살 앞 30날」D-28, 2월






「앞뒤로 30날」매거진에 참여하실 분들을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일기처럼 매일 글 쓰는 습관을, 일기보다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만들어가실 분들이라면 환영합니다. 저 또한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 다시 다른 주제를 가지고 30날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보겠습니다. 경험은 두려움을 없애는 가장 좋은 치료제인 듯합니다.


에필로그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행복하세요.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브런치 매거진「앞뒤로 30날」은 그 치유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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