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1
그래도 내일의 해는 뜬다고 했다.
내일의 해는 조금 특별할 예정이고, 나는 그 해를 굳이 마주하러 밖으로 나갈 예정이다. 새해를 온몸으로 맞이하는 것은 어느새 조금은 익숙한 의식이 되었다.
지난 30일 동안 글쓰기를 통해 나의 삶 전체를 되돌아보며 많은 기억들을 떠올려보았다. 그중에는 아주 슬픈 것도, 행복한 것도, 아픈 것도, 즐거운 것도, 두려운 것도, 설레는 것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최근 기억일수록 아프고 슬퍼서 우울하고 답답한 것들이 많았다. 그런 기억들을 떠올릴 때면 마음의 하늘에 거무스레한 먹구름이 잔뜩 껴있는, 한 줄기 햇빛도 찾아보기 어려운 그런 날을 보내야 했다.
그래도 참으로 다행인 것은, 해가 뜨고 지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가 져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순간이 오더라도, 내일의 해가 뜨리라는 것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진 않을 것이다. 비록 구름 때문에 해가 조금은 가려져 있더라도.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게 된 계기는 의외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었다.
상담을 지속한지도 어느새 반년이 지났다. 하지만, 상담을 받으며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잠시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다시 최악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반복되고 있었다. 내가 오선지 안 음표가 되어 도돌이표 속에 갇혀버린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던 상담 시간에 평소와 다른 변화의 순간이 찾아왔다. 최근 상담을 하는 내내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 같다는 선생님의 걱정을 애써 웃으며 무마하던 나에게, 선생님이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지금 주변에 본인을 믿고 이해해줄, 본인의 이야기를 다 털어놓아도 괜찮은 사람이 있나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지난 상담까지 억지로 몇 번을 참아내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버렸다. 그간 내 삶에 있어서 쌓인 외로움과 후회의 흔적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면서 눈물방울들이 모여 눈물 줄기가 되었다. 상담의 마지막 10여분을 울고도 모자라 지하철을 타려다가 합정역 대합실에 앉아 청승맞게 또 울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덕분에 덜 창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눈물을 보고, 상담 선생님은 되려 조금은 반가워하셨다. 일반적인 내담자들에 비해 한참 늦었지만, 드디어 울었다며. 오히려 울음으로 감정을 해소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덧붙이셨다. 그것이 정말 도움이 되었던 것일까.
그 날 흘린 눈물은 내 마음속에 폭우가 되어 흘러내렸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순식간에 쏟아진 비의 양이 어마 무시했던지, 잔뜩 껴있던 먹구름이 조금은 걷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해가 뜨는 것을 두려워했고, 해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언제나 해는 매일같이 뜨고 지며 나를 비추고 있었다는 것을.
해가 뜨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해에게서 벗어나 홀로 숨으려 했다. 해가 나를 비추고, 그 빛에 내 추한 몰골이 다 드러나버리고, 그 꼴을 모두에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 언제나 두려웠다. 그래서 언제나 해가 비치지 않는 어둠 속을 원했고, 먹구름이 낀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비가 내리는 것도 쉽게 용납할 수 없었다. 구름은 언제나 해를 가려주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 날 흘린 눈물 덕분에 작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폭우에 모든 것이 휩쓸려버린 탓에 더는 숨을 곳도 없어진 내 마음속에서, 이제 나는 매일 떠오르는 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한다. 부끄러울지라도,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 보려 한다.
맑은 하늘의 청량함과 햇볕의 따스함을, 덕분에 이제는 감사히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녹음했던, 그리고 어제 31일 공개되었던, 「앞뒤로 30날」 매거진과 내년에 대한 ‘기대’를 주제로 진행된 팟캐스트 「xyzorba」. 그 에피소드의 소개에 인용된 내 문장이다.
“물론 퇴사하고 여러 가지 고생을 했지만, 그 고생이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잘한 일이어야 하죠. 앞으로 잘한 일로 제가 만들어 내야죠.”
2021년이라서 특별히 더 기대가 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2021년에도 여전히 매일 내일의 해는 뜰 것이고, 그것이 만드는 작은 변화들을 기대하는 것이다.
폭우로 폐허가 되었지만, 햇빛을 받으며 자라나는 작은 풀 한 포기라도 감사히 바라보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 풀이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을 때까지 잘 키워보겠다는 각오로 내일을 기대하는 것이다. 내 마음속 솔직함이 매일 조금씩 더 자라나고, 매일 쌓아가는 작은 노력들이 모여 의미 있는 결실을 맺기를 바라며.
오늘의 이야기 주제인 2021년의 단 하나의 목표, '매일 마음속 햇빛 쬐기'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30살 앞 30날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브런치 매거진「앞뒤로 30날」은 그 치유의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