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과 디자인을 함께 [두루]
정말 오랜만에 독립 잡지 제작기로 돌아왔습니다. 2021년 새해를 맞자마자 매거진 손 2호 작업에 돌입하여 2월 말에 무사히(?) 펀딩을 끝내고 발행을 완료하였고, 곧바로 이어진 커넥티드 북페어 이후 전국 독립서점에 입고를 부탁드리며 자체적으로 홍보를 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네요. 커넥티드 북페어 후기도 조만간 업로드할게요.
매거진 일 이외에도 생애 가장 다사다난한 3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몇 가지 외주 작업을 진행하면서, 생업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하던 와중에 첫 개인전을 오픈했습니다. 매거진 손의 고정 코너 '소지품의 소지품'을 함께 만드는 스튜디오 빌롱잉스(마포구 망원동, @be_long_ings)분들과 함께 전시를 오픈했어요.
[프로젝트 임보중]의 두 번째 전시로, <쓰임새를 찾아서>라는 전시입니다. 제가 빌롱잉스에 맡긴 소지품들을 주제로, 우리의 쓰임새에 대한 생각들을 오브제와 텍스트, 이미지로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4월 11일 일요일까지 온-오프라인으로 동시 진행 중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전시 안내 보러가기(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CMgUboZp1SQ/
다섯 번째 이야기는 드디어 편집과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주제가 막상 글을 준비하다 보니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주제였습니다. 편집이라는 것을 따로 배우지 않았기에 명확히 정의하기도 어렵고, 편집과 디자인을 글로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고, 어설프게 설명을 하는 것이 독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그래서 이참에, 출판의 과정 속에 어떤 역할들이 함께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보려 합니다. 저도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 되겠네요. 그리고 그 역할들 중에서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왜 중요한지, 둘의 업무를 혼자 함께 처리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출판사에는 이런 직능들이 있다. 편집자는 머리에 해당한다. 그리고 디자이너는 손이며, 영업은 발에 해당한다. 이 모든 것이 잘 맞아야 출판사가 잘 유지되겠지만 역시 핵심은 편집이다. 그렇다고 해서 손과 발의 역량을 낮게 보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멋진 콘텐츠도 비주얼이 별로면 독자의 손에 잘 들리지 않고, 콘텐츠와 비주얼이 좋아도 잘 알려지지 않고 구매자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위치에 현물이 없으면 책은 잘 발견되지 않아 팔리지 않는다.
편집자는 독자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직업이다. 이것이 기획과 작품 선별의 시작점이자 핵심이다. “즐거움을 줄 것인가, 지식 전달을 줄 것인가, 교훈을 줄 것인가, 계몽을 할 것인가, 실용적 가치를 줄 것인가.” 이런 것들이 기획의 출발이다.
세부적으로 기획에는 이런 요소들이 포함된다. 아이템과 주제의 설정/내용의 구성/타깃 독자 설정/페이지의 구성/디자인의 방향/필자의 섭외/출간시기/책의 판형/종이의 지질/제본의 방식/가격/마케팅 아이디어 등이다.
이쯤에서 편집자라는 역할의 중요한 포인트를 찾을 수 있다. 편집자는 책을 만드는 전 과정에 개입하여 그 안에 만나는 사람들 전체를 조율해야 한다. 그래서 근래에 편집자를 Book Producer라고 부르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에 출판 편집자는 어떤 일을 하는가?>, 경기대뉴스, 김희연, 2019.
*출처 http://kgunews.com/news/view.php?idx=1768
편집 업무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여러 글을 읽던 중, 도움이 된 기사의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편집 업무를 보다 크고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는 듯합니다. 작게는 교정(오타, 비문 등 수정 작업) 및 교열(문장과 글의 흐름 정돈, 전달력 향상) 작업을 전담하는 것이 편집자의 고유한 업무이지만, 크게 보면 전체적인 흐름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이죠.
편집자는 책을 만드는 전 과정에 개입하여 그 안에 만나는 사람들 전체를 조율한다. 이 문장 속에 편집 업무의 핵심이 담겨 있는 것 같네요. 일반적으로 기획자들이 하는, A부터 Z까지 전체 과정을 계획하고 완성시키는 역할을 출판계에서는 편집자가 맡게 되는 것이죠.
기획자라는 한글 표현이 참 애매모호한 개념이기는 해서, 그 의미가 Producer일 수도, Planner일 수도, Manager일 수도, Director일 수도, 혹은 Designer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설계자의 의미에 가까운 Designer를 지향하는데요, 여러분은 어떤 단어를 더 선호하시나요?
낯부끄러운 표현이긴 하나, 매거진 손의 편집장으로서 저는 편집 업무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책의 목적을 설정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제작 과정에서 내적인 목표를 완수하는 일.
그리고, 이와 같은 맥락에서 디자인 업무는 이렇게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책의 외적인 목표를 완수하여 책을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일.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임의로 내린 정의다 보니 어딘가 허술하고 모자랄 수 있겠지만, 머리에 해당하는 편집 업무와 손에 해당하는 디자인 업무라는 말에 공감을 하다 보니 이런 정의를 내린 것 같습니다. 도식화하자면 아래처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목적: 실현하려고 하는 일이나 나아가는 방향.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의 관념.
책의 목적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지식이나 가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함일 수도 있고, 창작 욕구를 채우기 위함일 수도 있으며, 특정 이슈를 공론화하려는 목적도 있을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자극하는 것이 목적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매거진 손의 경우에는 욕망의 발현이 가장 주된 목적입니다. 1호 WAVE에서는 기획-편집-디자인 전부를 홀로 진행하려는 창작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2호 PUSH PULL에서는 공통된 주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기획의 실현이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이어질 3호 또한 또 다른 욕망의 덩어리일 것입니다.
이러한 최초의 목적이 형성된 이후, 책의 주제와 형태, 구성, 소재, 발행 시기, 가격 등의 세부 목표들을 차례로 설정하며 책의 완성을 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그 여정은 또다시 제작과 판매라는 두 가지 단계로 구분해볼 수 있겠네요.
먼저 책의 제작 과정 속에 있는 다양한 세부 목표들을 크게는 내적/외적인 목표로 구분해볼게요. 주제와 구성, 내용(글, 사진 등) 등을 컨텐츠와 관련된 목표들을 내적 목표로, 책의 판형이나 재질, 형태와 표현 방식 등 비주얼과 관련된 목표들을 외적 목표로 나누어 각각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목표 달성을 위한 주체로서 일하게 되는 것이죠.
다음으로 판매 과정에서는 편집자와 영업 담당자가 힘을 합쳐야 합니다. 가격과 발행 시기, 마케팅 수단 등 사전 계획과 관련된 내적 목표들을 편집자가 이끌고, 입출고와 PR, 유통 네트워크 등 전략의 실행에 대한 외적 목표들을 영업 담당자가 이끌어 나가는 것이죠.
큰 출판사일수록 이 단순한 도식 안에서 여러 단계로 세분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반대로, 1인 독립 출판은 이 모든 것을 홀로 담당해야만 하죠. 저 또한 홀로 매거진을 만드는 제작자이기에, 이런 구분이 가끔은 의미가 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편집장이라는 호칭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일들에 휩쓸려 큰 흐름을 놓치는 순간, 최초의 목적부터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경계하고 있기도 하죠. 절대 정신줄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위에서 정리했던, 출판의 과정과 편집-디자인-영업 업무에 대한 분류에서 한 가지 빠진 내용이 있죠. 바로 컨텐츠(내용)에 대한 것입니다. 물론 전문 편집자를 고용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독립 출판은 직접 컨텐츠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되기에, 저자는 곧 편집자가 되기도 하며 편집 업무 중 필자(저자) 관리에 대한 항목은 자연스럽게 생략이 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디자인 과정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저자이면서 동시에 편집자인 상황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특징은 편집의 소스가 되는 글을 거침없이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이죠. 심지어는 과감하게 전문을 삭제할 권한도 있습니다. 대단하죠? 이번 호에서 여섯 작가분들의 기고글을 편집하면서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된 점입니다. 교정은 부담스럽지 않지만 교열은 부담스럽고, 나아가 수정을 요청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는 것을 느꼈죠.
또 하나의 특징은 글맛을 유지하기가 좋다는 것입니다. 글을 쓴 사람도, 다시 읽고 편집하는 사람도,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다 보니 특유의 취향을 그대로 보여주기에 적합합니다. 타인의 교정과 교열을 받으며 자칫 원래의 글맛이 상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저는 계속해서 스스로 교정과 교열을 보는 것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 글맛이 언제나 좋을 수는 없겠지만, 나쁜 맛도 내 맛이라 좋다고 여기는 것이죠. 아, 마치 라면 스프처럼 그 맛을 수습해줄 수 있는 마법의 문장은 절대 잊으면 안 됩니다. "저자 고유의 글맛을 살리기 위해, 표기와 맞춤법은 저자의 의도를 따르고 있습니다."
디자인 과정에서도 저자와 디자이너가 동일하다는 것은 꽤 도움이 됩니다. 글과 사진 등의 컨텐츠를 더미(덩어리)로 보지 않고 개별 개체로 취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을 하면서 가장 난감한 순간은 넣어야 하는 문장이 애매하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때나 들어가야 하는 사진이 애매하게 사이즈가 맞지 않는 경우입니다. 컨텐츠는 어디에 어떻게 배치되고 보여지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천차만별인 만큼, 그런 경우를 마주하게 되면 깊은 한숨부터 내뱉게 되죠. 디자이너가 임의로 문장을 수정하거나 사진을 크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하지만, 그 디자이너가 저자라면 경우가 다릅니다. 비주얼을 위한 편집이라는, 사고의 전환을 통해 역으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 것이죠. 정해진 레이아웃을 과감하게 무시할 수도 있고, 없던 여백이나 빈 페이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으며, 아예 그 컨텐츠를 없던 일로 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단, 그 결정이 최초의 목적을 배반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죠. 어쩌면 그 과감한 결정이 목표 달성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구요.
하지만, 이러한 특징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편집과 디자인이 수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 하기에 더욱 힘든 과정을 겪기도 하며,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나 자신과 타협을 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최선이 최고가 아님을 인정해야 할 때 느끼는 무력함과 좌절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니까요.
다음 글에서는 편집과 디자인을 혼자 진행하면서 느낀 것들과 실제 편집 및 디자인에 있어서 아주 사소하게나마 팁이 될만한 것들을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2호 발행을 마치고 3호를 구상하고 있는 요즘, 브런치 연재글이 다시금 책의 목적부터 정비하게 되는 소중한 계기를 만들어 주네요.
2021년 2월의 이야기
@do.rough @magazine.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