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첫 번째
산티아고 가는 길에 있었던
나의 기록 2015
캐리어를 끌고 가는 여행만 해봤지 무거운 배낭을 메고 떠나는 여행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혼자서도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지만 그럼에도 난 떠났고, 무사히 돌아왔다.
죽을 만큼 힘들어도 멈추지 않고 천천히 걷다 보면 거짓말처럼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SIN PRISA PERO SIN PAUSA!
떠나기에 앞서 수많은 인터넷 후기를 접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다녀와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남기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단순한 정보를 남기자니 할 말이 너무 많았고, 긴 글 속에 숨어 있는 내 정보가 과연 도움이 될지 걱정도 되었다. 그래도 내 기록인데 객관적인 정보만 남기는 것은 싫었고, 걸으면서 매일 썼던 일기에서 객관적인 정보와 주관적인 기록을 어떻게 분리할지도 고민이 되었다.
정리하지 못한 채 그렇게 시간만 흘렀고, 이제야 가닥을 잡았다.
나를 위한 나의 기록을 남기자.
까미노 데 산띠아고(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가는 길, 까미노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던 이 길을, 나도 한 번쯤은 걸어보고 싶었다.
졸업하고 독립한 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었던 나는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가고 있었다. 실제로도 많이 아팠고 수술을 위한 병가는 자연스레 퇴사로 이어졌다.
언젠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가보리라고 묻어두었던 많은 곳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퇴사 후엔 오스트레일리아로 한 달간 휴양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캄보디아로 두 달간 봉사활동을 다녀와서는 장기 해외 봉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결국 무산되고 말았을 때, 직장인으로서는 절대 갈 수 없는 이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대부분의 순례자가 출발지로 선택하는 곳은 사리아(Sarria)이다. 프랑스 길을 형성하는 루고 (Lugo) 지역은 산티아고 사도의 묘지로부터 100km가 넘는 거리에 위치함으로써 Compostela를 획득할 수 있는 최소 거리를 충족한다. 이러한 이유로 까미노에 적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출발지이다. 사리아에 도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인 기차는 바르셀로나, 마드리드와 잘 연결되어 있다. 버스를 이용하려면 루고(Lugo)를 통해서 오는 것이 가장 편리하며 스페인 내 많은 도시와 연결되어 있다.
두 번째로 일반적인 출발지는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Port)로 피레네 산맥을 넘기 전에 있는 마을이다. 많은 순례자들이 이 마을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피레네 산맥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순례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이곳에서 여정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레온(Leon)은 까미노 데 산띠아고의 출발지로서 세 번째로 많은 순례자들이 선택하는 도시이다.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빌바오, 세비야, 아 코루냐 등의 도시와 연결되어 있다. 작은 마을인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는 갈리시아 내 프랑스 길의 첫 번째 마을이며, 경로에서 가장 목가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곳 중 하나이다. 까미노를 이곳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게다가 꼼뽀스떼라를 받기 위한 최소 거리를 여유롭게 커버할 수 있는 출발지로, 힘들지만 아름다운 경로인 안까레스(Ancares)의 오르막길을 피해 갈 수 있다. 이곳을 순례 출발지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은 약 4km 떨어진 옆 마을인 뻬드라피따(Pedrafita)를 거쳐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들 또는 피레네 산맥 길을 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론세스바예스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나는 생장 피에 드 포르에서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까지 그리고 무시아를 거쳐 피스떼라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산티아고가 올바른 표기법이지만 현지에서는 산띠아고로 발음한다. 가급적 스페인 현지에서 유용하도록 지명이나 이름 등 고유명사의 경우엔 된소리 발음 그대로 표기하도록 노력했다.
슈퍼마켓을 찾아다닐 때, 스페인 현지인들에게 '돈데 에스따 슈퍼마켓'이라고 물었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스페인에서는 Supermarket이 Supermercado라는 것을 알게 되어 다시 '수페르 메르카도'를 외쳐보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여전히 알아듣지 못했다. 이유가 무얼까 하고 보니, 발음 문제였다. ㄲ, ㄸ, ㅃ를 분명히 발음해야 했다.
'Supermercado, 수뻬르 메르까도'
영어 권에서는 세인트 제임스(St. James), 불어 권에서는 생 자끄(Saint. Jacques), 스페인어 권에서는 산띠아고(Santiago)로 불린다. 야고보 성인은 스페인의 수호성인이며 또한 니카라과와 과테말라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려고 걸었던 길이다. 9세기 스페인 Santiago de Compostela에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고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되면서 오늘날 순례길이 생겼다. 산티아고는 제베데오의 아들이며 신약 성서의 저자인 요한의 형으로 갈릴레아 출신의 어부였다. 7월 25일이 축일인 가톨릭의 성인이며 알패오의 아들인, 또 다른 사도 야고보와 구별하여 장 야고보로도 불린다. 우리에게는 야고보로 불리는 성인으로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자 베드로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 살로메는 성모와 친척이라 따지고 보면 예수와 인척 지간이 된다. 야고보 성인은 성정이 순직하고 신심이 강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그러한 성인의 성정을 좋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안타까워하기도 한 예수는 베드로 성인과 더불어 사도들 중에서도 그를 가장 신임하고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예수가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킬 때나 타볼 산에서 변모할 때 그리고 겟세마니 언덕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할 때 항상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야고보 성인을 자신에게 가까이 있도록 했다. 성인은 서기 44년 빠스카 축일 전날, 헤롯왕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참수되어 예수의 12제자 중에서 처음으로 순교하게 된다. 성경에는 예수의 수난의 말씀이 끝났을 때 성인의 어머니인 살로메가 이렇게 간청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는 그가 마치 자신을 따라서 첫 번째로 순교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 성인이 순교한 날도 예수가 승천한 날과 같은 성 금요일로 예수가 마신 잔을 성인도 마시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자리 잡은 이베리아 반도는 대서양과 지중해에 둘러싸여 있는 땅으로 사람의 주먹처럼 생겼다. 스페인에 가톨릭이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1세기 중엽 로마인들의 침략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이미 그 이전에 사도 바오로를 포함한 7명의 사도들이 선교를 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스페인에 가톨릭이 알려진 것은 야고보 성인 때문이었다. 야고보 성인은 예수의 12제자 중의 한 사도로 복음서, 사도행전과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한 사도다. 그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뒤, 유대 땅을 떠나 머나먼 서쪽 땅으로 선교를 떠나게 된다. 바로 로마 제국의 속주인 이스파니아(현재의 이베리아 반도)에서 선교하려고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그러나 야고보 성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신자로 만든 사람의 수는 극히 적었다고 한다. 이에 성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나 얼마 되지 않아서 헤롯왕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참수되어 순교했다. 그의 스페인 전도여행에 대하여 성경에 묘사된 것은 없다. 다만 유대의 헤롯왕에 의해 기원후 44년에 처형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의 죽음은 성 루까가 로마에서 쓴 사도행전 12장 1절과 2절에 언급되어 있다. 헤로데 왕이 교회의 어떤 사람들에게 박해의 손을 뻗쳐 우선 요한의 형 야고보를 죽였다. 전설에 따르면 헤롯왕에 의해 처형된 야고보는 제자들에 의해 수습되어 돌로 만든 배에 실려 스페인 북서쪽으로 향해 보내졌다고 한다. 몇 명의 제자들이 그의 유해가 담긴 널을 해변까지 나르자 천사가 양 옆을 붙잡고 있는 돌로 만들어진 배가 나타나 그 널을 실었다고 한다. 이 돌로 만든 배에는 노와 돛 그리고 선원조차도 없었다고 하는데 그 배는 일주일 동안 지중해를 지나 대서양까지 나아갔다고 한다. 배는 풍랑을 만나고 로마 시대 갈리시아 지방의 수도였던 현재의 빠드론 지역인 이리아 플라비아에 닿아 기다리던 제자들이 시신을 수습했다고 한다. 이를 통하여 성 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성 마르코가 베네치아에 부를 주고 성 안드레아가 비잔틴의 위엄을 상징하듯이 성 야고보는 당시 이슬람 세계와 접하고 있던 갈리시아의 수호성인에서 스페인 전체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당시 갈리시아는 718년부터 1492년까지, 약 7세기 반에 걸쳐서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로마 가톨릭 왕국들이 이베리아 반도 남부의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을 축출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회복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스페인어로 재정복이라는 뜻의 레꽁끼스따(Reconquista) 열기가 고양되던 곳이어서 성 야고보의 전설은 당시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언제나 볼 수 있게 된다.
야고보 성인은 정치적으로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에서 주요한 명분이 되었다. 전설 속에서 야고보 성인은 로그로뇨 근처 ‘끌라비호 전투’에서 백마 탄 전사의 모습으로 나타나 이슬람 군대를 향해 칼을 휘두르며 이슬람교도의 앞을 막았다고 한다. 야고보의 모습을 보고 사기가 오른 가톨릭 군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진격하여 승리했다고 한다. 때문에 야고보는 평화주의자로서의 이미지를 가진 산띠아고 뻬레그리노(Santiago Peregrino)보다 산띠아고 마따모로스(Santiago Matamoros)라고 많이 불린다. 현재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 시청으로 쓰고 있는 라호이 궁전에 백마를 탄 야고보 성인의 기마상이 놓이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다. 그렇지만 용맹한 모습으로 백마를 타고 있는 성인의 모습과 발 밑에 떨어진 이슬람교도의 머리는 아이러니한 대조를 이룬다. 9세기부터 가톨릭에서는 이슬람 침략에 대항하는 방법의 하나이자 북부 스페인 사람들이 이교도로 개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산띠아고까지의 순례를 장려했다. 산티아고 순례의 홍보는 중세 마케팅의 결정체가 되었으며 이후 순례자들의 숫자는 수백 년 동안 계속 증가했다. 특히 터키가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순례 여행이 위험해지자 수많은 프랑스 신자들이 예루살렘 대신 산티아고 순례에 나섰다고 한다.
1189년 마침내 산티아고 데 꼼뽀스떼라는 교황 알렉산더 3세에 의해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가톨릭의 성지로 선언되었다. 또한 교황은 칙령을 발표하여 성스러운 해(산띠아고의 축일인 7월 25일이 일요일이 되는 해)에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에 도착하는 순례자는 그동안 지은 죄를 완전히 속죄받고 다른 해에 도착한 순례자는 지은 죄의 절반을 속죄받는다고 대사를 선언했다. 이를 계기로 순례자들의 수는 12, 13세기에 가장 많이 증가되는데 이 시기에만 약 50만 정도의 순례자들이 이 길을 걸었으며 이때 순례 길을 따라 수많은 도시와 마을이 생겨났다.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 가톨릭의 수복이 완료된 후 순례자 숫자는 점차 줄어들었고 20세기 중반에는 소수의 사람들만 순례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쇠퇴의 길을 걷던 산티아고 순례는 1982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를 방문하면서 다시 가톨릭 신자들의 대중적인 인기가 불붙기 시작한다. 또한 1987년에 EU가 까미노를 유럽의 문화유적으로 지정하고 1993년 유네스코가 까미노를 세계문화유산에 추가하면서 순례자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1997년 파울로 코엘료가 발표한 <연금술사>가 세계적인 밀리언 셀러가 되면서 소설의 배경이 된 이 순례자의 길이 젊은이들의 문화 코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현재 대부분의 순례자는 프랑스와 스페인을 지나는 루트인 Camino Francés를 걷는다. 보통 까미노 프란세스는 피레네 산맥 발치의 생장 피에 드 포르에서 출발하게 된다. 실제 걷게 되는 거리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까지 800km이며 피스떼라까지는 929km에 달한다. 장거리 도보 순례인 만큼 개인차에 따라 짧게는 30일, 길게는 40일이 걸리게 되는데 시간이 부족한 순례자들은 이 길의 일부분을 몇 년에 나누어 걷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에 있는 순례 사무국에서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까지 마지막 100km 이상을 걸은 순례자에게 Compostela 완주 증명서를 주고 있다. 순례자 수는 야고보 성인의 축일인 7월 25일이 일요일이 되는 성스러운 해에 절정에 이룬다. 지난 희년인 2010년에는 27만 명이 넘는 순례자가 이 길을 걸어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에 도착했다.
10세기에는 대성당의 은으로 만들어진 상자에 담겨있는 야고보 성인의 유골에 기도를 올리기 위해 강도와 늑대들의 위험을 감수하고 이 험한 길을 걸었다. 또한 야고보 성인의 전설이 있기 이전 고대 켈트 족도 은하수를 따라 비아 락테스(Via Lactes)라고 불리는 이 길을 태양이 지는 피스떼라의 태양 신전을 향해 걸었다. 당시 피스떼라는 세상의 끝으로 알려져 있었고 사람들이 육로로 여행할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었다.
현대의 순례자들은 산티아고와 피스떼라까지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이유 때문에 도보로 순례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인이 잠든 성스러운 도시까지의 순례라는 종교적인 이유로 걷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난 휴식을 원해서 또는 좀 더 단순한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순례길에 참여하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모든 여행 특히 장기간의 도보여행에는 어느 정도 위험요소가 따른다. 여행의 첫 번째 원칙 조심을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 안전하다. 만일을 위해서 떠나기 전 기일에 맞춘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 스페인 북부의 작은 마을들은 대부분 순례자들로부터 나오는 유로화가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순례자들에게 너그럽고 친절하지만 까미노를 걸으면 몇 군데 대도시를 거치게 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대도시에서는 구걸을 하는 걸인이나 소매치기 혹은 강도나 도둑도 있다. 또한 교통사고에도 유의해야 한다. 순례자들이 지나는 길은 대부분 차들이 많지 않은 비포장 시골길이지만 도시에 들어서면 소음과 혼란에 당황해서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그렇지만 주의를 하되 불안에 떨 필요는 전혀 없다. 중세의 까미노는 순례자를 노리는 도둑과 강도, 통행세를 받으려는 영주들과 욕심 많은 여관 주인 그리고 늑대로 넘쳐나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현재의 까미노는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는 목동과 호기심 많은 아이들 그리고 순례자에게 간식과 물을 건네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만약 길을 가다 신변의 문제가 생기면 침착하게 주위에 있는 현지인이나 동료 순례자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다. 중세에 순례자를 지키던 백마 탄 템플 기사단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까미노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예상하지 못한 영적 체험을 한 순례자는 아주 많다.
중세시대부터 있던 늑대는 아직도 순례자들에게 문젯거리다. 시골길에서 마주치는 목줄 풀린 늑대를 닮은 개들이 있다. 보통은 온순하나 가끔씩 사납게 짖어대는 개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세워야 한다. 도망가지 말고 조용히, 눈을 마주치지 말고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나무로 만든 지팡이나 등산용 스틱을 가져가기를 권한다. 또 다른 늑대는 젊은 여성 순례자에게 접근하는 스패니쉬 마초 청년, 과도한 스킨십을 해오는 노인, 동료 남성 순례자들이다. 보통 이런 젊은 외국 남성들의 행동은 단순한 호기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까미노에서 만나 짧은 연인이 되는 남녀를 종종 보게 되기도 한다. 지나친 과민 반응은 자신의 순례 길을 더욱 지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중세부터 까미노에는 순례자의 지갑을 노리는 술집이 있었고 아직도 대도시와 일부 시골 마을에는 남성 순례자를 유혹하는 야릇한 술집이 성업 중이다. 까미노에서의 호기심은 길 자체와 그 길을 걷는 자신에게만 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매일 밤 와인의 달콤한 유혹을 적당한 선에서 뿌리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로 향하는 순례길은 많다. 중세의 순례자들은 갈리시아의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로 가기 위해 자신의 집에서부터 걷거나 말을 타고 출발했다. 자연스럽게 전 유럽에는 핏줄처럼 얽혀있는 수많은 까미노가 생기게 되었다. 현재까지도 약 100여 개의 까미노 루트들이 남아있으며 새로운 루트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가장 많이 알려진 루트는 까미노 프란세스(Camino Francés) 즉 프랑스 루트다. 이 길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을 넘어서 빰쁘로나, 부르고스, 레온을 거쳐서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로 향하는 루트다. 물론 이 루트 말고도 세비야(Sevilla)에서 시작하여 까세레스(Cáceres)와 살라망까(Salamanca), 메리다(Mérida)를 거치는 은의 길로 불리는 비아 델 라 쁠라따(Vía de la Plata)도 있고 오비에도(Oviedo)에서 시작하여 루고 지방을 지나 까미노 프란세스와 만나는 까미노 프리미티보(Camino Primitivo)도 있다. 몇 년 전부터 국내 순례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까미노 노르떼(Camino del Norte)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인 이룬(Irún)에서 시작하여 스페인의 북쪽 해안을 걷다가 내륙으로 들어와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로 이어지는 루트다. 이렇게 까미노 데 산띠아고는 프랑스의 4대 루트와 스페인에서 시작되는 3대 루트가 많이 알려져 있으며 이 외에도 포르투갈, 독일, 스위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헝가리와 폴란드 등 전 유럽에 걸쳐 이어져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길이 전부가 아니지만 대부분의 순례자가 특히 까미노를 처음 걷는 순례자가 택하는 루트는 프랑스 길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Camino Francés
까미노 프란세스는 순례자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루트로 프랑스를 지나는 프랑스 3대 루트들이 피레네 산맥의 북쪽에서 까미노 프란세스와 만나며 스페인에서의 여러 루트들도 이 루트와 만나게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이 루트는 프랑스의 생장피에드포르(St Jean Pied de Port)나 스페인의 론세스바예스에서 시작되어 빰쁘로나, 뿌엔떼 데 라 레이나, 로그로뇨, 부르고스, 레온, 아스트로가, 뽄페라다와 사리아를 거쳐서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에서 끝난다. 이 루트는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걷는 루트인 만큼 노란 화살표, 가리비 모양이 있는 까미노석을 따르면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이 루트에는 순례자를 위한 시설들이 잘 정비되어 있으며 특히 순례자 숙소가 충분해서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잠자리에 큰 어려움이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잘 정비가 되어 있는 루트이기 때문에 순례자들은 간혹 이 루트에서 까미노의 상업화라는 언짢은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순례자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여름 시즌에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 100km 이전인 사리아에서부터는 숙소를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다. 이 루트에서 상당히 다양한 지형을 걸어야 하는데 초반의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에는 경사가 급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어야 하며 라 리오하의 풍요롭고 평화로운 포도밭과 밀밭 사이를 걸어야 하고 부르고스와 레온 사이의 광활하고 황량한 메세타 지역도 걸어야 한다. 또한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에 가까워지면 다시 오 세브레이로 언덕과 같이 높은 산악 지대도 지나야 한다.
Camino Aaragonés
까미노 프란세스와 만나게 되는 까미노 아라고네스는 해발 1,600m에 자리 잡은 피레네 산맥의 마을인 솜포르트(Somport)에서 시작하여 하까(Jaca)를 거쳐 뿌엔떼 라 레이나까지 약 160km에 달한다. 이 루트 역시 까미노 프란세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노란색 화살표와 까미노 명판이 충분히 갖춰져 있어서 길을 찾기가 쉬우며 까미노 프란세스에 비해 순례자 수가 많이 적기 때문에 여름 성수기에도 알베르게, 오스딸과 같은 숙소를 이용하는데 큰 불편이 없다. 대체로 이 루트의 지형은 대부분 평탄하고 부드러워 비슷한 느낌을 주나 해발 1,600m의 프랑스 스페인 국경 마을인 솜포르트에서 시작되는 초반의 내리막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다.
Camino Norte
까미노 노르떼 즉 북쪽 길은 루따 데 라 꼬스따(Ruta de la Costa)라고도 불릴 정도로 스페인 북부의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서 걷는 루트로 중세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교도들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도시인 이룬(Irún)에서 시작해서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까지 약 830km에 이르는 이 루트는 산 세바스찬(San Sebastían), 빌바오(Bilbao), 산딴데르(Santander), 리바데오(Ribadeo)를 거쳐서 까미노 프란세스의 아르수아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까미노 프란세스에 비해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아서 상당히 어려운 편이며 순례자를 위한 숙소와 편의 시설도 부족해서 초보 순례자나 체력적으로 자신이 없는 순례자에게는 그리 권할만한 루트는 아니다. 해안을 따라 걷는 루트지만 이 길을 걸으면서 상당히 많은 길에서 바다보다는 험한 산길을 걸어야 한다. 노란색 화살표와 더불어 빨간색과 하얀색 페인트가 아래위로 칠해져 있고 가리비 모양의 까미노석도 길안내를 돕고 있다. 그렇지만 까미노 프란세스에 비해서 길을 찾기가 다소 어려우며 아름다운 해안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Vía de la Plata
비아 데 라 쁠라따는 스페인이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을 때 순례자들이 이용했던 루트로 알려져 있다. 이 루트의 시작은 세비야(Sevilla)에서 시작되는데 이 루트가 국내 순례자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 중 하나는 마드리드로 항공편을 예약하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까지 약 1,000km에 가까운 이 길은 쁠라따(Plata)라는 이름 때문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은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것은 과거 이 루트가 로마시대부터 광물의 이동 통로로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세비야에서 시작되어 메리다(Mérida), 까세레스(Cáceres), 살라망까(Salamanca), 사모라(Zamora)를 거쳐 까미노 프란세스의 아스또르가와 합쳐지기도 하고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까지 직접 이어지기도 한다. 비아 데 라 쁠라따 역시 노란 화살표가 잘 표시되어 있어 항상 순례자의 등불이 되어주고 있다. 사모라까지는 그리 힘든 구간이 없지만 사모라에서부터 아스또르가에 이르는 길과 사모라에서 직접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에 이르는 길은 모두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하기 때문에 상당히 힘든 코스다. 특히 여름철에 이 루트를 선택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한 여름에는 이 길을 걷는 스페인 순례자가 적을 정도로 까미노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루트고 순례자를 위한 시설이 많이 부족하다. 특히 알베르게의 경우에는 계절과 지역에 따라서 사용이 불편할 수도 있다.
Camino Primitivo
프리미띠보는 ‘초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까미노 프리미띠보는 초기 까미노, 오리지널 까미노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까미노 프리미띠보가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서기 813년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에서 산티아고 성인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알폰소 2세가 말을 몰아 산티아고로 향한 최초의 순례길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길은 까미노 노르떼를 걷던 순례자들이 까미노 프란세스로 돌아가기 위해 많이 이용되고 있는 루트다. 까미노 프리미띠보의 시작은 오비에도(Oviedo)에서 시작하며 까미노 프란세스의 멜리데까지 290km가량 된다. 순례자의 수가 많지는 않아도 워낙 오래된 루트이기 때문에 노란색 화살표가 충실히 그려져 있어 길을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으며 알베르게의 수도 순례자 수에 비해 충분하다. 그렇지만 이 루트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한 깐따브리까 산맥을 넘어야 하는 부담도 있다.
Camino Portugués
까미노 뽀르뚜게스는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의 대성당을 출발하여 북쪽의 해안 마을인 뽀르또(Porto)를 지나며 대서양 해안을 따라 걷다가 뚜이(Tui), 뽄떼베드라(Pontevedra), 빠드론(Padrón)을 거쳐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까지 630km에 걸쳐 이어지는 루트다. 이 루트는 특히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가톨릭 성지인 파띠마와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를 이어주는 루트이기 때문에 많은 가톨릭 신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산띠아고 떼 꼼뽀스떼라에서 순례 완주 인증서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국경 마을인 뚜이에서 110km 구간을 걸어야 한다. 이 루트는 총거리가 그리 길지 않고 까미노 노르떼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학생 순례자 수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순례자를 위한 노란색 화살표가 충분히 있으며 파띠마로 향하는 파란색 화살표도 있어 길 찾기에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여름 성수기 방학 시즌의 학생 순례자들을 피한다면 알베르게에 머무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Camino de Madrid
까미노 마드리드는 마드리드에서 사하구나미노 델 살바도르(Sahagúnamino del Salvador)를 지나 레온(León)을 거쳐 오비에도(Oviedo)에 이르는 길로 까미노 프리미티보와 만나게 된다.
Camino de la Lana
라나 루트는 알리깐떼에서 부르고스로 이어지는 루트다.
Camino Vasco del Interior
까미노 바스꼬 델 인테리오르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 도시인 이룬(Irún)에서 시작하여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 (Santo Domingo de la Calzada)로 이어지는 루트다.
Camino de Invierno
까미노 인비에르노는 까미노 프란세스의 얼터너티브 루트로 뽄페라다 (Ponferrada)에서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로 이어지는 길이다.
Camino Vadiniense
까미노 바디니엔세는 뽀떼스 비아 리아뇨 (Potes via Riaño)와 씨스띠에르나 (Cistierna)에서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Mansilla de las Mulas)까지 140Km에 이르는 루트다.
Camino Baztan
까미노 바스딴은 생장으로 향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서 많은 순례자들이 잠시 머물게 되는 프랑스의 바욘 (Bayonne)에서 투우와 헤밍웨이의 도시 빰쁘로나 (Pamplona)로 이어지는 105Km에 달하는 루트다.
Viejo Camino de Santiago
비에호 까미노 데 산띠아고는 까미노 노르떼의 도시 빌바오 (Bilbao)에서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 (Villafranca del Bierzo)까지 450km에 걸쳐진 루트다.
Camino Mozárabe
까미노 모사라베는 알람브라 궁전으로 많이 알려진 그라나다 (Granada)에서 메리다 (Mérida)까지 410Km에 이르는 루트다.
Ruta del Ebro
루따 델 에브로는 또르또사 (Tortosa)에서 출발하여 사라고사 (Zaragoza)를 거쳐 로그로뇨 (Logrono)로 이어지는 350Km에 달하는 루트다.
Camino de Levante
까미노 라반떼는 발렌시아 (Valencia)에서 사모라 (Zamora)로 이어지는 루트로 비아 데 라 쁠라따 (Via de la Plata)와 만나게 된다.
Camino Del Sureste
까미노 델 수레스떼는 알리깐떼 (Alicante)에서 시작하여 메디나 델 깜뽀 (Medina del Campo)로 이어지는 루트로 까미노 라반떼와 마찬가지로 비아 데 라 쁠라따 (Via de la Plata)와 만나게 된다.
Camino de Santiago는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Santiago de Compostela의 순례지이다. 주로 프랑스 각지에서 피레네 산맥을 통해 스페인 북부를 통과하는 길을 가리킨다.
이 길은 9세기 스페인 Santiago de Compostela에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유럽 전역에서 많은 순례객들이 오가기 시작했던 길이다. 산티아고 순례에 관한 배경에는 당시 이슬람 군대의 위협에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고자 했던 정치적인 목적이 강했다. 성 야고보를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되면서 오늘날 순례길이 생겼다.
러시아, 핀란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각지에서 산티아고로 가는 여러 갈래길 가운데 가장 알려져 있는 '프랑스 길'은 프랑스 남부 국경 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이르는 800km 여정으로 프랑스인들이, 프랑스에서부터 오는 길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하루에 20여 km씩 한 달을 꼬박 걸어야 한다.
최종 목적지가 Santiago de Compostela 대성당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중세시대에 기독교 순례자들의 매우 중요한 순례길 중의 하나였다.
전설에 따르면 야고보는 이베리아 반도까지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다. 갈리시아에 이장되었는데 후일 그의 유골함이 놓인 도시를 성인의 이름을 따와 Santiago de Compostela라고 부르게 되었다. 전통적인 순례 방식은 본인의 집에서 시작하는 것이지만 주요 경로로 간주되는 몇몇 길이 있었고 중세시대에 번성하던 길은 흑사병과 종교 개혁의 물결에 쇠퇴해 갔다. 1980년대가 되자 매년 겨우 수백 명의 순례자들만 찾는 매우 한적한 순례길이 되었다. 1987년, 유럽평의회가 첫 번째 유럽 문화길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선정하면서, 순례 붐이 일게 된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는 세계 각지의 순례자들이 순례길을 다시 찾는 계기가 되었다.
성 야고보 축일과 일요일이 겹치면 교황의 칙령에 따라 성스러운 해 또는 희년이 선포된다. 윤년 여부에 따라 5,6,11년마다 돌아오게 되는데, 이 시기는 순례객이 더 늘어난다.
조개는 12세기부터 세례성사의 표상으로 사용되었고, 순례의 상징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길가는 도중에 조개 표식이 세워져 있다. 순례길을 모방한 제주도 올레길은 제주도 특산물인 조랑말을 형상화하여 길 곳곳에 표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스페인 관광청이 판매하는 순례자 여권인 끄레덴시알 (Credencial, Pilgrim Passport)에 세요 (Sello, Stamp)를 찍어 본인이 그 길을 걸은 순례자임을 인증한다. 제주도 올레길도 동일한 패스포트를 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