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o Camino de Santiago #39

Lourdes, France

by 안녕
Day 34.
Sunday, May 28


손목의 부기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혈관 따라 팔목으로 번지는 걸 보면서 공포마저 느꼈다.

저녁의 외출이 도움이 되었는지 일찍 잠이 들었지만 밤새 긁었는지 물집이 터져 진물이 흘러나와 있었다.




5시 50분 알람에 일어나 동굴로 향했다.

아시아인 단체 미사 같았는데 아오자이를 입은 사람들이 있는 걸 보니 베트남에서 왔나 보다.

미사를 끝내고 동굴의 샘을 보려고 줄을 섰는데 동굴이 말라가고 있는 건지 아님 기분 탓인지 동굴 벽에선 물기를 찾기가 힘들었다.

샘물에 손목을 적시고 돌아오는데 신선한 바람이 기분 좋았다.




어제 담아 두었던 커피가 아직 남아 있어 오늘은 빈 손으로 식당에 갔는데 학생들로 가득 차 있어서 비어 있는 룸으로 가서 앉았다.

오늘은 스태프가 아무도 보이지 않아 옆에 가서 잔에 커피를 채워오니 인자한 미소의 아저씨가 나타났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지만 여전히 정체가 궁금했다.

오늘은 큼직한 바게트 4개가 있는 테이블에 앉았고 버터 4개를 듬뿍 발라 먹었다. 듬뿍 바른다는 의미가 무언지 이번 여행에서 새삼 느끼고 있다.

평생을 다이어트와 싸우는 통에 지방 덩어리인 버터를 먹을 기회는 별로 없었지만 여행지에선 죄책감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늦잠을 잤는지 학생 하나가 뒤늦게 와서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그녀의 친구들은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친구들과 싸운 것인지 스스로를 왕따 시키고 있는 것인지 조심스러웠다.

커피를 더 채워오고 모두가 떠나가고 다른 테이블에 남아있던 빵 하나를 가져와 버터 하나를 듬뿍 발라 먹었지만 그래도 허전하다.

사람들이 더 들어오는 걸 보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침수는 포기할까 보다. 뭐 하나를 하려면 더 큰 희생이 따르는 것 같아 이젠 겁이 난다. 더 절실한 이에게 양보한 걸로 하자. 조용히 떠나고 싶다.

루르드에 왔지만 왠지 환대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2년 전과 사뭇 달라진 나, 이곳 분위기 등 모든 게 무섭다, 두렵다. 난 아직 극복하지 못했나 보다, 아직 용서받지 못했나 보다.

이제 미사 참여는 못 할 것 같다. 형식적인 것도 소용없는 듯싶다. 계속 느끼고 있는 거지만 여행은 하나의 목적만 가지고 와야 하는 것임을 새삼 느끼고 있다.

2년 전에도 환대받지 못했는데 나 혼자 착각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너무도 기쁜 나머지, 너무도 행복한 나머지 모든 걸 아름답게만 느꼈던 것은 아닌지.

루르드의 성모님은 익살스러운 표정이다. 내가 2년 전에 느끼고 지금까지 간직했던 이미지는 결코 아니었다.

여기 오면 안 되는 거였나? 이 여행 자체가 무리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앞으로 힘든 날이 더 많을 텐데, 벌써부터 겪지 않아도 되는 건데 혹시라도 액땜일까?




손목은 가려움이 심해졌고 점점 부어올라 겁이 나서 약을 먹었다. 원인이 뭔지는 몰라도 일단 부어 오른 거라도 가라앉혀야만 했다.

혹시 리옹에서 생겼던 다리의 가려운 부기와 같은 종류일까? 하루 만에 호전될 수 있을까?




복도에서 다른 룸을 청소하는 챔버 메이드를 보았다. 아프리카계 여성이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시트를 복도 바닥에 그냥 방치했다.

먼지 제거를 하지 않고 세탁을 하기 때문인지 새 시트에도 먼지가 그대로 있었다. 좋은 선입견 또한 이성을 흐리게 할 수 있나 보다.

장을 비우고는 10시 반쯤 나섰다.




광장에서 와이파이에 접속했다. 혹시나 하고 보냈던 생장 공립 알베르게에서 메일이 왔다.

하지만 사립 알베르게에 대한 안내가 왔을 뿐이다. 알베르게를 팔았는데 새로운 호스트는 영어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생장의 공립 알베르게를 개인에게 팔았다는 뜻일까?

도착하는 대로 발까르로스로 가고 싶었지만 기차를 타면 생장에 19시 넘어 도착하는데 늦어도 너무 늦었다.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어 일단 까르푸 마켓으로 갔다. 오렌지가 남아있긴 한데 내일 먹을 걸 생각하면 미리 사 와야 했다.

바나나 7개 1.17kg 1€란다. 1kg에 2€ 정도였을 때는 양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았지만 큰 바나나 7개가 1kg 정도라면 바나나 가격이 비싼 편은 아니었던 셈이다.

오늘은 바나나와 바게트를 사 왔다. 바나나는 많이 익은 상태였지만 오렌지를 사도 이틀이면 다 먹으니 내일까지 먹기로 했다. 오렌지가 더 필요하면 내일 까르푸 시티에 가서 사기로 했다.




10€인 생장 공립 알베르게에 머물기 위해서는 오전에 도착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보통 바욘에서 하루를 묵고 첫차로 생장으로 가곤 한다.

2년 전엔 나도 그랬었지만 이번에는 생장에서 며칠 쉬다가 출발할 생각이었고 하루밖에 머물 수 없는 공립은 마지막 날에 머물 생각이라 굳이 일찍 도착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생장의 사립 알베르게는 가격이 저렴한 편이 아닌 데다 저렴한 순서대로 꼼쁠리또가 되어버려 오후 늦게 도착하면 비싼 가격대만 남아있게 될 텐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현재 상태로선 하루라도 빨리 까미노를 시작하고 싶었다. 베드버그 박멸을 하지 못한 상태라 하루라도 빨리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마당이 있는 알베르게로 가야 했다.

아름다운 루르드에서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데 생장에서는 가능할까 싶기도 했다.

일단 가서 부딪히는 수밖에 없었다. 설마 노숙을 하겠어?




숙소로 돌아왔는데 현관문이 닫혀있어서 초인종을 눌렀다. 거대한 성과 같은 수도원 건물이라 누군가 나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샤워하고 땀을 식히며 점심을 먹었다. 잼을 새로 뜯었는데 오렌지 껍질이 들어가 있는 잼이었다. 내 입맛에는 별로였지만 그래도 듬뿍 발라 먹었다.




14시쯤 다시 성지로 갔다.

광장 그늘에 앉아서 인터넷이나 하며 숙소 정보를 알아보려고 했으나 발걸음이 침수받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14시부터 시작된 침수 대기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대기석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난 대기장 밖에 서 있는 상황이었지만 혹시 몰라 그냥 서서 기다렸다.

10분쯤 후에 대기장에 입장시켜 주어 얼떨결에 침수를 기다리는 긴 의자에 앉게 되었다.




Accès Piscines
Italy:ANDARE A BERE ED A LAVARE ALLA FONTANA
England:GO DRINK AT THE SPRING AND BATH IN ITS WATERS
France:ALLEZ BOIRE A LA FONTAINE ET VOUS Y LAVER
Germany:GEH TRINK AUS DER QUELLE UND WASCHE DICH DARIN
Spain:VE A BEBER Y BAÑARSE EN LA FUENTE




가서 샘물을 마시고 몸을 씻으라는 루르드 성모님의 말씀이 여러 나라의 언어로 새겨져 있었다.

봉사자들은 어쩜 다들 하나같이 천사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반복되는 그 일이 힘들 수도 있을 텐데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친절했다.

줄어들 것 같지 않던 긴 대기줄에 앉아 두 시간의 기다림 끝에 침수를 받고 나왔다.




대기석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문이 나란히 있는 대기실이 있다.

거기에서 봉사자의 안내에 따라 침수를 끝낸 사람이 나오는 룸으로 들어가면 또다시 탈의실 분위기의 룸이 있었다.

이곳에도 이미 열명 정도의 대기자가 타월만 두르고 기다리고 있었다.

양쪽으로 의자가 놓여있고 의자 뒤로 옷을 담아두는 바구니가 놓인 수납장이 있었다.

봉사자가 목욕 타월로 가려주면 오픈된 공간에서 옷을 벗어야 하는데 알려진 것과는 달리 속옷까지 다 벗어야 했고 타월을 몸에 둘러주면 그대로 앉아서 기다리면 된다.

차례가 되면 물이 있는 공간으로 안내해 주는데 물에 들어가기 직전 봉사자가 타월을 벗겨내고 동시에 물속에 있는 봉사자가 젖은 타월을 몸에 둘러준다.

양쪽에서 팔을 잡아준 상태로 입수하게 되는데 맞은편 성모상을 바라보며 성모송을 외웠다.

침수를 받으려고 간 것이 아니라 아무런 계획 없이 간 거였지만 봉사자가 일러주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다 벗은 상태로 들어갈 줄은 몰랐다. 베드버그에 온몸이 뜯긴 데다 다리는 피멍이 든 상태였다.

그런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숙제를 끝낸 듯한 개운함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원래의 목적인 인터넷을 하려다 여기서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싶어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돌담길에선 또 울컥했지만 또 다른 기쁨이었고 감사의 눈물이었다.

샤워하고 빨래를 하고 나니 허기가 져서 뜨거운 물을 받아와 커피를 마시고 바게트에 잼을 발라 먹고 바나나도 하나 까먹었다.

이게 행복이지 뭐. 내일 일은 알아서 해주시겠지.




18시 저녁 햇볕에 빨래를 바짝 말렸다.

5월의 마지막 주일 그리고 루르드에서의 마지막 해가 저물고 있었다.

내일은 여전히 비 소식이 있었지만 새벽에만 내리고 그치길 바라본다. 목요일을 제외하고는 일주일 내내 비 소식이라 내일도 큰 기대는 하지 말아야겠다.




●Sanctuaires de Lourdes
●Grotte de Notre Dame de Lourdes
●Accès Piscines




Carrefour Market Lourdes 1.30€
Banana 1.17kg -1.00€
Baguette -0.30€
Maison Saint Pierre et Saint Paul +B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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