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o Camino de Santiago #40

Lourdes→Saint Jean Pied de Port, France

by 안녕
Day 35.
Monday, May 29


무언가의 소리에 놀라 화들짝 잠이 깼고 창을 닫고 다시 누웠다. 손목이 심하게 가렵긴 했으나 더 이상 번지지 않음에 위안을 삼아 본다.

7시에 일어났지만 피곤한 아침이다. 마지막 아침 식사를 위해 장을 비우고 내려갔다.




빵 바구니에는 커다란 바게트 6조각이 담겨있었지만 혼자서 4조각을 먹고 나니 왠지 눈치가 보여 멈추어야 했다.

다들 왜 그렇게 소식을 하는 걸까? 커피와 빵 밖에 없는데 다들 이걸로 정말 배가 채워지는 걸까?

루르드에서의 마지막 식사라 그런지 왠지 모를 아쉬움에 쉽사리 일어날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샤워하고 룸을 정리하고 짐을 한 곳에 모아 두고 성지로 갔다.

샘물로 목을 축이고 마지막으로 꼬마 생수병에 루르드의 샘물을 담았다.

동굴 미사에서 마지막 영성체를 하고 성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뽀 강을 건너 촛불 봉헌을 하며 가족을 위해 기도드렸다.

동굴이 잘 보이는 강변으로 촛불을 옮기고 로사리오 성당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렸다.




광장 의자에 앉아 톡으로 잠시 안부 인사를 남기는데 날씨가 흐려서인지 배가 아팠다.

화장실을 쓰기 위해 10시쯤 숙소로 돌아갔으나 이미 룸 클리닝이 진행된 후라 화장실을 편히 쓸 수는 없었다. 다시 장을 비우고 짐을 챙겨서 숙소를 나왔다.

바나나를 먹고 성지에 와서 또 먹고 오렌지 하나도 까먹으며 짐을 줄였다. 꺼내 두었던 비옷도 비가 올 것 같지 않아 다시 넣어버렸다.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는데 배낭은 여전히 무거웠다. 이걸 매고 잘 걸을 수나 있을까?

그렇게 만만했던 까미노였는데 지금은 첫 번째 까미노 때보다 더 긴장되고 불안했다.

날씨는 계속 흐리다. 덥지 않아 좋긴 한데 꽤 쌀쌀했다. 아니 추웠다. 2년 전에도 루르드를 떠나는 날엔 추웠었다.




아직 11시다. 기차 시간까지 두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야외에 앉아있자니 너무 추웠다.

강을 건너 Chapelle des Lumières로 갔다. 아침에 내가 켜놓은 초는 잘 타고 있는데 다른 초들은 대부분 쓰러져 있었다.

촛농으로 초의 바닥을 먼저 고정시키고 초를 고정대에 꽂아야 하는데 다들 그냥 꽂아놓기만 했나 보다.

추워서 유리장 안에 있는 초 봉헌대에 들어가서 강 건너 동굴을 보며 묵주기도를 드렸다. 강변 따라 앉을 수 있는 벤치가 곳곳에 있지만 오늘은 앉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성지를 한 바퀴 돌며 침수장에 가서 미처 적지 못했던 글을 받아 적고 바게트를 뜯으며 다시 광장으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들르고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촛불을 확인했다. 새벽에 초를 켰더라면 마지막까지 확인하고 떠날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촛농이 흘러내려 잘 고정되었으니 쓰러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잘 탈 것 같아 안심되었다.




13시, 루르드 성지를 마지막으로 한 바퀴 돌고 이제는 루르드 기차역으로 가야 했다.

광장의 성모님께 인사드리고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 될 루르드 성지의 정문을 30분쯤 나섰다.

갑자기 해가 비친다. 비 소식이 있는 날이었지만 처음처럼 마지막도 활짝 갠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배낭을 메고 루르드 기차역까지 걸어갔다.

A 플랫폼으로 나가니 13시 50분이다.




생장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고, 공립 알베르게에서 잘 수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기차 시간 때문에 생장에는 늦게 도착하니 공립에서 잘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며칠 머물 거라 상관은 없었다.




14시 18분, 루르드를 떠났다.

금방 뽀에 도착했고 15시 10분 Orthez, 15시 56분 Bayonne에 도착했다.

바욘 기차역에 앉아서 이것저것 뒤늦은 검색을 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18시다.

밖을 내다보니 이미 생장 행 버스가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거의 마지막으로 배낭을 화물칸에 싣고 버스에 오르니 창가에는 비어있는 좌석이 없어서 통로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18시 6분, 순례자를 실은 대형버스는 바욘을 떠나 생장으로 향했다.




Saint Jean Pied de Port (179M)는 스페인 국경으로부터 약 8킬로미터가량 떨어져 니베강(Río Nive)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으며, 바스크 지역 곳곳으로 도로가 뻗어있는 교통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아름다운 도시는 찬란한 문화유산들과 훌륭한 음식, 축제, 주변 경관 및 여유로운 생활로 시작하는 순례 설렘과 불안함에 쌓인 순례자를 위로해 준다.

바스크의 지방의 중심인 Pays de Cize 지역에 자리 잡고 있으며, 피레네를 건너 론세스바예스로 향하기 직전의 마지막 구간으로, 전통적으로 산티아고 가는 길을 따라는 순례자들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마을이다.

또한 파리(París), 베즈레이(Vézelay), 르퓌(Le Puy)에서 출발한 3개의 까미노 루트들이 만나게 되는 마을로 순례자들이 험난한 피레네 산맥 직전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마을이다.




생장 피에드포르는 가톨릭이 산티아고 가는 길을 열어준 마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생장 피에드포르를 통과해 피레네를 넘는 길은 과거 로마의 십자군, 서고트인, 게르만 민족, 순례자, 무역상과 나폴레옹의 군대 모두에게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Pied de Port라는 말은 피레네 지방의 방언으로 ‘통로의 발치’라는 말이라고 한다.

마을은 분홍색을 띠는 사암으로 만들어진 생장 피에드포르 성을 마을을 관통하는 중심도로가 둘러쳐 있다.

Saint Jean Pied de Port는 원래 사자왕 리처드에 의해 세워진 St. Jean le Vieux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나바르의 왕에 의해서 현재의 위치에 새롭게 만들어졌다.

Saint Jean Pied de Port는 나바레 왕의 지시로 12세기말에 이후 건설된 뒤 나바레 왕국 북피레네 중심 도시가 되었다.

론세스바예스에서 피레네 산맥을 가로지르는 핵심 포인트인 시즈 언덕(Col de Cize)의 자락에 있는 Saint Jean Pied de Port의 전략적 위치는 이 도시를 군사 거점지, 요새 도시, 거래 중심지, 산티아고 데 꼼뽀스떼라로 향하는 순례길의 핵심 경유지로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St. Jean le Vieux에는 로마 십자군의 캠프 흔적이 남아있으며 오랫동안 이 마을은 Bordeaux에서 Astorga로 이어지는 로마루트의 포스트로 사용되어 왔다.

프랑크 왕조가 이 길 위에 남겨놓은 유물들은 그리 많지 않으나, 론세스바예스와 생장 피에드포르에는 778년 롤랑과 샤를마뉴의 군대가 남긴 역사적 사건들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다.

또한 우루쿠루로 가는 길에서는 샤또 피그뇽(Château Pignon)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1512년 나바레의 정복자였던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지어진 방어 성곽으로 나폴레옹 전쟁 당시 파괴되었으나, 현재까지도 피레네 산맥을 넘는 순례자들을 지켜보고 있다.




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시작되는 순례길은 알바(Alba)의 공작에 의해 1512년 복구되었고, 1714년에 이사벨 데 파르네시오 (Isabel de Farnenesio)의 통행을 쉽게 하기 위해 확장되었다고 한다.

또한 1807년에 프랑스 포병대의 스코트 장군은 나폴레옹의 이름으로 스페인을 침공하기 위해 이 길로 병사들을 이끌었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오며 산티아고 가는 길로 인해 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된 생장 피에드포르는 도심에서 피레네 산맥의 험한 오르막길을 시작하는 길까지 나무로 된 발코니와 아름다운 추녀를 갖춘 바스크 지방 특유의 건물들로 순례자를 들뜨게 한다.




생장 피에드포르의 문장(紋章)은 마을의 역사를 대표하는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수호성인 세례자 요한의 왼손에는 이름인 적힌 깃발이, 발아래에는 어린양이 잠들어있다.
세례자 요한의 오른손은 상징하는 총안(銃眼)이 있는 아성(牙城)인 생장성을 가리키고 있다.
체인 뭉치가 중심의 에메랄드를 둘러싸고 있는 나바레 왕국의 문장이 성의 아래쪽에 위치한다.




생장 피에드포르에 도착하면 맨 처음 순례자 사무실을 찾아가서 순례자 여권인 끄레덴시알을 만들어야 한다.

이 길의 최종 목적지인 Santiago de Compostela와 Fisterra까지 가는 길에서 자신이 순례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끄레덴시알에는, 지나는 마을의 알베르게와 성당 등에서 개성 넘치는 세요를 받을 수 있다.

순례자는 끄리덴사알 신청 시 순례의 목적을 골라야 한다. 끄레덴시알을 만들면 알베르게를 배정받거나 소개받을 수 있다.






또한 이제는 나바레 문에서 야고보의 문까지 중세 성벽을 따라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생장 피에드포르의 중심지를 굳건히 지키던 요새 수비대 병사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초소, 망루, 총안 등이 우리를 역사 속으로 이끌며 도시의 군사 문화유산과 건축물들을 탐험해 보도록 유혹한다. 도시의 상공에서 걷는 것처럼 매력적인 길이 될 것이다.

또한 중세 야고보의 문에서 성채까지 말을 타거나 걷던 길이 있다. 비탈지고 구불구불한 길을 좀 더 말을 타기 쉽도록 의도적으로 조약돌을 배치한 조약돌의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스페인 거리(Rue d’Espagne)는 도시 성벽 외곽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의 집들은 상인방에 집주인의 직업이나 거래품목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현재도 9번지에는 밀 가격이 주요 이슈였던 1789년의 높은 밀 가격의 기록이 남겨져 있다.

이처럼 생장 피에드포르의 구도시는 중세의 특징들이 많이 남아있다. 단순히 중세로부터 전해져 오는 길거리 양식뿐 아니라 전통적 건축양식도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로 된 다리와 함께 성당거리와 데스빵 거리의 길들은 도시의 역사적 핵심을 이루고 있다. 좁고 조약돌로 포장된 도로와 일직선으로 늘어 선 파사드, 잘 보존된 역사적 건축물이 이 오래된 거리에 매력을 더하며 과거 시절을 환기시키고 있다.

생장 피에드포르의 식당에서는 이 지역 특산물을 이용하여 순례자들에게 매우 다양한 요리를 제공하며 뛰어난 요리 솜씨로 이 지역 전통을 잘 유지해 오고 있다. 살비데빨롱베 (나무비둘기구이), 아쇼아(소고기나 송아지고기), 어린양 스위브레드, 작은 송어, 바스크 스타일의 닭고기, 피레라드 (양파와 후추 그리고 토마토를 넣은), 바스크 스타일의 새끼오징어 요리 등 이 지역의 전통 음식을 즐길 수 있다.




#La Citadelle
생장 삐에드뽀르 성은 70M 높이로 Mendiguren 언덕에 세워진 성채다. 1625년에 건설되었으며 1640년대에 보강되었다. 이는 Vaban 이전의 군사 기술자가 설계한 항성 형태 축성의 뛰어난 예로 보방이 1685년 이 성채를 방문한 이후 재설계하였다. 시즈 산악 패스에 이르는 중심 도로이자 피레네를 넘어 스페인으로 향하는 핵심 포인트인 이 지점의 전략적 중요성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Demi-lune Royale Viewpoint
로열 반달 전망대에서는 계곡과 산 중턱의 동굴 너머 펼쳐진 훌륭한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작은 첨탑이 있는 Pavillon des Gouverneurs로 연결되는 도계교의 아래에는 269개 계단이 있는 산책로가 있다. 이 길은 니베 강둑에 위치한 교회 애프스 옆 Porte de l’Echaugette 자락까지 연결된다. 성당으로 갈 때 이 길을 따르는 것도 재미있으나 처음부터 힘을 빼고 싶지 않으면 길을 되돌아가 다른 루트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




깜보를 지나 19시 27분 Saint Jean Pied de Port에 도착했다. 버스로 대체되었지만 종착지는 기차역, Gare de Saint Jean Pied de Port다.

생장 피에드포르 역에 도착하면, 먼저 순례자 사무실을 찾아가야 한다. 순례자 사무실에서는 순례자 증명서인 끄레덴시알을 발급해 주고 몇 가지 간단한 주의사항과 지도, 알베르게 정보 등을 제공해 준다. 이때 순례자는 자신의 체력과 시간, 날씨를 고려하고 자원봉사자인 오스피탈레로의 안내를 받아 첫날과 둘째 날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순례자 사무실에서 받게 되는 지도는 론세스바예스까지의 첫날 루트 지도와 프랑스 길의 고도지도이다.

파리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시차에 적응했고 생장 피에드포르에 아침 일찍 도착한 순례자라면 피레네를 넘어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하는 일정을 하루로 계획할 수 있지만 오후에 도착하였거나 시차에 적응을 하지 못한 순례자는 가급적 생장 피에드포르에서 순례의 첫날을 보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또한 늦은 오전이나 이른 오후에 도착한 순례자라면 피레네 산맥에 있는 오리손이나 온또(겨울철에는 발까를로스)까지 짧게 걸으며 이틀에 걸쳐 피레네를 넘는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생장 피에드포르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까미노 사인은 일반적인 노란색 화살표보다는 빨강과 흰색 페인트로 표시되어 있다.

생장 피에드포르를 출발하여 첫날과 둘째 날, 그리고 셋째 날의 첫 번째 마을인 부르게떼까지는 특별히 행동식을 구할 상점이 없으므로 생장 피에드포르의 슈퍼에서 필요한 음식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순례의 마음 가짐을 새기며 까미노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천천히 무리를 하지 않고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계단을 올라 작은 문을 통과하게 된다.

우강게 거리를 지켜보고 있는 프랑스 문(Porte de France)은 그 이름의 유래가 프랑스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서 유래하고 있으며 다른 성문과 비슷하다. 프랑스로부터 오는 군대가 이 문을 통하여 들어왔다.




우선 생장 피에드포르를 방문한 순례자들이라면 꼭 사진에 담는 시타델 거리(Rue de la Citadelle)가 있다. 오르막 길을 따라 집들이 모여있는, 요새도시라는 이름에 걸맞은 거리이다.

지역 석재인 분홍빛 아라두아(Arradoy) 사암이 파사드에 널리 이용되었으며 간혹 다른 빛깔의 석재를 섞기도 한다. 돌출형 바닥, 목재 건물, 조각된 기둥을 이용한 처마는 이 거리 가옥들의 건축적 특징이다.

상인방에는 암시적인 명문이 음각되어 있으며 기하학적 디자인이나 종교적 상징들로 장식되어 있다.

프랑스 문을 지나 Rue de la Citadelle의 오르막 길을 따라 순례자 사무실로 가면 된다.




두 번째라 그런지 아무런 감흥 없이 순례자 사무소에서 끄레덴시알을 발급받았다. 조가비를 배낭에 매달고 공립 알베르게에 가보니 소문과는 달리 여전히 10€였지만 역시 이미 꼼쁠리또였다.

공립 알베르게에 메일을 보냈는데 사립 알베르게를 안내해 주어 잠시 혼동이 있었지만 공립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었다.

어차피 생장에서 이틀 이상을 머물면서 구석구석 살펴볼 예정이라 하루밖에 머물지 못하는 공립은 오늘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사립은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늦으면 늦을수록 비싼 알베르게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음을 간과했다.

저렴한 알베르게는 이미 침대가 남아있지 않았고 Le Chemin Vers L'etoile는 침대가 남아있었지만 데사유노 포함 18€이었다.

일단 다른 알베르게에 가봤으나 대부분 17€에다 꼼쁠리또라 다시 돌아와서 데사유노는 빼고 17€에 등록했다.




도중에 만난 한국인 두 명도 같은 알베르게에 체크인했다.

짐을 풀고 한 명은 저녁 먹으러 나갔고 나 혼자 식당으로 내려가니 한 명은 언제 내려가 있었는지 이미 식사를 마친 후였다.

룸으로 가는 것 같더니 이내 다시 식당으로 내려와서 얘기를 건네는데 아버지 연배의 이 아저씨는 까미노 경험이 많으시단다.

가족 없이 매번 혼자서 걸으셨단다. 까미노 경험을 얘기하실 줄 알았으나 묻지도 않은 자식 자랑에 돈 자랑까지 하셨다.

그러시면 어디서든 대접받지 못할 거라 말씀드리고 싶었으나 오죽하면 그럴까 싶어 조용히 얘기를 들어드렸다.

하지만 한 시간가량 이어진 자랑을 듣다 보니 좀 힘들어졌는데 티가 났나 보다. 기분이 나쁘셨는지 대뜸 내가 자기 막내딸이랑 비슷하게 생겼단다. 막내딸이 75년생인데 고집이 세다, 다른 자식은 다 잘 되었는다, 자식 중에 막내딸이 제일 못 되었다고 한탄했다.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시지? 내가 그렇다는 말인가? 오늘 아주 힘든 하루였지만 쉬지 못하고 하시는 얘기를 다 들어드렸는데 싫다는 말을 그렇게 하시나 보다.

그러면서도 계속 붙들고 얘기하시는 아저씨의 의도는 알 수 없었지만 21시 반쯤에서야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2년 전 첫 번째 까미노에서 수녀로 오해받은 일이 있어서 이번 까미노를 염두에 두고 몇 달 전에 난생처음 헤어 탈색에 도전을 했었다.

그나마 지금은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서 상투머리를 하고 모자를 쓰면 티가 나지 않았지만 선입견이라는 게 생겼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할 일이 많았는데 얘기를 다 듣고 샤워하고 침대로 오니 이미 캄캄했다. 정리고 뭐고 그냥 자야 했다. 그런데 또다시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Lourdes
●Sanctuaires de Lourdes
●Grotte de Notre Dame de Lourdes
●Basilique Notre Dame du Rosaire de Lourdes
●Chapelle des Lumières




Lourdes→Bayonne→Saint Jean Pied de Port, France

Lourdes 14:18~15:56 Bayonne (Intercités 14145)
Bayonne 18:06~19:12 Saint Jean Pied de Port (TER)




○Saint Jean Pied de Port
●La Citadelle
●Demi Lune Royale Viewpoint
●Église Notre Dame du Bout du Pont
●Porte de France
●Porte de Saint Jacque
●Porte d’Espagne
●Porte de Notre-Dame
●Porte de Navarre
●La Prison des Evêques
●Maison Larrabure
●Maison Arcanzola
●Maison des États de Navarre
●Maison Mansart
●Accueil des Pèlerins de Saint Jacques de Compostelle
●Pont d’Eyheraberry
●Le Marché Ville de Saint Jean Pied de Port

775.0km/775.0km




Bougie Votive de Lourdes -2.50€
Lourdes~Bayonne~Saint Jean Pied de Port -17.60€
Credencial +Concha -2.00€
Le Chemin Vers L'etoile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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