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o Camino de Santiago #41

Saint Jean Pied de Port→Valcarlos, Spain

by 안녕
Day 36.
Tuesday, May 30


코 고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 때문에 밤새 뒤척이는 아래 침대의 움직임 때문에 나까지도 잠을 설쳤다. 게다가 속이 계속 불편했다. 새벽에 화장실을 다녀왔지만 좀처럼 편해지지 않았다.

그러다 한두 명씩 일어나서 나갔고 나도 7시쯤 눈이 떠졌다. 이곳에서 며칠 머물다 출발할 생각에 계속 누워만 있었다.

빨리 걷고 싶은 마음이 커지고 있었다.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니 마음만 점점 복잡해졌다.




7시 반쯤 모두 나가고 혼자가 되자 나도 일어나 준비했다.

욕실에서 칫솔을 떨어뜨렸는데 벌써 한 달이 지났으니 교체할 때가 되었나 보다.

다들 출발한 것 같아서 나도 배낭을 챙겨서 식당으로 내려갔다. 어젯밤 엄청난 수다로 힘들게 했던 아저씨가 식사를 하고 있어서 순간 긴장했다.

알베르게 데사유노는 커다란 바게트였는데 남은 거니 먹어도 된단다. 남아있는 바게트 한 조각을 잘라먹었는데 오늘 구운 게 아닌지 푸석하니 맛이 없었다. 안 먹길 잘한 것 같았다.

모두가 떠난 식당에 홀로 남아 믹스커피를 마셨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상황이지만 일단 알베르게를 나왔다.

Rue de la Citadelle를 내려와서 일단 문이 열려있는 Église Notre Dame du Bout du Pont으로 들어갔다.




Notre Dame du Bout du Pont
프랑스 바스크 지역에서 바욘 대성당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고딕 양식 건축물이다.

1212년 Las Navas de Tolosa 전투에서 무어인을 격퇴한 기념으로 나바레의 왕, 산초 엘 푸에르떼에게 헌정된 13세기 초반의 건물 원형이 남아있는 성모승천 성당이다.

회랑은 19세기에 증축되었는데 바스크 전통에 따라 남성만 이용할 수 있었다. 장엄한 분홍빛의 사암 파사드는 조각된 기둥과 기둥머리의 고딕 문을 더욱 특색 있게 만든다.

내부에는 19세기에 추가된 두 개의 통로와 두 층에 걸친 좌석으로 된 넓은 신도석이 있으며 이는 기둥과 들보의 장대한 앙상블을 자아낸다.

다변형의 성가대석 양쪽으로 두 개의 륄로 삼각형 형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이 도시와 나바레 왕국의 문장을 그려내고 있다.

최근 복구된 Cavaillé Coll 오르간으로 아름다운 미사곡이 연주된다.




2년 전 화창한 날씨의 Saint Jean Pied de Port 풍경에 반해서 이번에는 이곳에서 며칠 머물 생각이었다.

이번에도 6월 1일부터 까미노를 시작할 생각이기 때문에 아직 이틀간의 여유가 있었지만 계속 이런 날씨라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오늘 하루만 더 머물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내일 날씨가 어떨지는 알 수가 없었고 솔직히 이런 날씨의 연속이라면 굳이 머물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까르푸 오픈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간식을 사고 나서 생각해 보려고 했는데 하몽 치즈 보카디요가 있으니 바게트를 사러 굳이 까르푸에 갈 필요도 없었다.

성당에 앉아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고민해 봤지만 아무래도 인연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 오늘부터 걷자.




시차에 적응했고 Saint Jean Pied de Port에 아침 일찍 도착했다면, 피레네를 넘어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하는 일정을 하루로 계획할 수 있지만 오후에 도착하였거나 시차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면 가급적 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첫날을 보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또한 늦은 오전이나 이른 오후에 도착한 순례자라면 피레네 산맥에 있는 오리손이나 온또 또는 Valcarlos까지 짧게 걸으며 이틀에 걸쳐 피레네를 넘는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생장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까미노 사인은 일반적인 노란색 화살표보다는 빨강과 흰색 페인트로 표시되어 있다.




피레네 산맥을 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루트가 있는데 둘 다 모두 전통적인 까미노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Ruta de los Puertos de Cize로 산티아고를 가는 순례자들이 지나는 일반적인 루트로서, 해발 146미터의 생장에서 해발 952미터의 론세스바예스로 가기 위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한다. 이 구간은 피레네 산맥의 경사면이 남북으로 경계를 이루며 기나긴 까미노 길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구간이다. 이 루트는 웅장한 피레네 산맥의 풍광과 울창한 활엽수림이 길을 따라 아름답게 펼쳐져 있지만 이 루트를 지나기 위해서는 Col de Lepoeder를 넘어야 한다.

두 번째 길은 자전거 순례자들과 기상이 좋지 않은 시기에 주로 이용하는 루트인 Via Valcarlos다. 발까르로스를 거치는 이 길은 시세 언덕길보다는 좀 더 길고 좀 더 걷기 편하지만 이 루트 역시 피레네 산맥의 아름다운 계곡길을 즐기기에는 충분하다. 아름다운 Valle de Carlomagno를 지나게 되며 Puerto de Ibañeta를 넘어야 한다.




8시쯤 노트르담 뒤퐁 성당을 나왔다. 바로 이어서 야고보의 문(Porte de Saint-Jacque)을 통과했다.

Porte de Saint-Jacque
야고보의 문은 1998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문으로 순례자들이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로 향하는 전통적인 출입구다. 전통적으로 프랑스인들은 생장 르비유, 마들렌 지구를 거쳐 이 문을 통과해 론세스바예스로 향했다. Irouléguy 소유의 포도밭으로 뒤 덮인 Arradoy 언덕을 조망할 수 있다.




노트르담 문을 통해 Nive 강을 건넌다.

#Porte de Notre-Dame
노트르담 문은 니베 강을 가로지르는 오래된 다리와 Rue d’Espagne를 향해 자리 잡고 있다. 성문 타워의 상단에는 세례자 요한의 성상과 자애로움의 상징인 성모와 아기 예수가 위치하여 도시를 굽어 보살피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날 반드시 지나야 하는 뽀르떼 에스빠뇬(Porte d’Espagne)을 통과했다.

#Porte d’Espagne
스페인 문은 1840년대에 도시의 성벽에 건설된 문으로 피레네를 넘는 널찍한 중세 도로 쪽으로 향해있다. Route Napoléon은 Route du Maréchal Harispe로 변경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날 반드시 지나야 하는 문으로 아름다운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론세스바예스로 향하는 순례자들이 이 길을 따라 걷게 된다.




피레네 산맥을 넘으려면 오른쪽 이어지는 Chemin de Saint Jacques라고 표시되어 있는 길을 따라, 오리손이 있는 시세 언덕길로 가면 된다. 하지만 이 길은 날씨가 좋지 않을 때나, 겨울철에는 피하는 것이 좋다.

나도 이번에는 Via Valcarlos를 걸을 계획이라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의 첫 번째 마을인 Valcarlos로 향했다.




가깝다고 생각하고 만만하게 봤는데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비옷을 걸친 상황에서 주렁주렁 무언가를 매달고 가자니 더욱 버거웠다.

젖은 차도에 보카디요 봉지를 떨어뜨렸는데 종이 봉지가 비에 젖었다. 찝찝해서 봉지를 벗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우걱우걱 씹으며 걷게 되었다. 하몽은 여전히 낯선 음식이었다.




프랑스의 마지막 마을인 Arnéguy를 지나 드디어 국경을 넘어 스페인 Navarra에 들어섰다.

또한 까미노의 표식이 프랑스 식에서 스페인 식으로 바뀌었다.




NAVARA는 9세기부터 16세기까지 독립 왕국이었으므로 건축학적으로 중요한 기념물들이 많다. 그리고 여러 순례길이 나바라를 지나면서 한 개의 길로 합쳐진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오래된 왕국의 아름다운 예술적 유물들도 많다. 이 중 론세스바예스의 왕실 부속 성당, 나바라 박물관, 빰쁘로나 대성당, 올리떼 성, 나바라 데 에스떼야 왕궁, 레이레 수도원, 이라체 수도원, 이란수 수도원, 뿌엔떼 라 레이나 등이 있다.

피레네 지역의 높은 산과 왕실 소유림, 이라띠의 숲 같은 울창한 숲, 바르데나 레알레스의 건조한 지역, 에브로 강 연안의 과수원, 띠에라 에스떼야 산과 중부 나바라의 곡창지대 등 나바라에는 압축된 공간에 다양한 경치와 자연 서식지가 있다.




외로운 길이었지만 그래도 차도로 이어진 길이라 걷기에 편했다. 11시쯤 Luzaide라고도 하는 Valcarlos에 도착했다. 까미노 상으로는 13km인데 구글 지도상에는 11km로 나온다. 내일은 15km지만 실제 17km인걸 보면 오늘 못 걸은 만큼 내일 더 걸어야 하나 보다.




알베르게 주소로 가니 바르였고 들어가서 물어보니 알베르게를 관리하는 곳이란다.

비밀번호와 대략적인 위치를 받아서 알려준 곳으로 가고 있는데 지나가던 어떤 아주머니가 대뜸 자기를 따라오란다.

코드를 받아와야 한다고 되돌아가자고 했으나 비밀번호가 적힌 쪽지를 보여주니 알베르게로 데려다주셨다.

혼자서는 헤맬 뻔한 위치에 있었다. 감사합니다.




길 가의 계단이 아니라 골목 안에 있는 어느 학교 옆 계단으로 내려가니 발까르로스의 공립 알베르게가 있었는데 내가 첫 순례자였다.

피레네를 넘을 수 없는 겨울이 이곳 알베르게의 성수기였기에 여름인 지금은 비야 발까르로스를 걷는 사람은 없겠거니 싶어 내가 마지막 순례자일 줄 알았다.

오면서 먹다 남긴 보카디요에 치즈와 토마토를 넣어서 먹었다. 혼자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들어오려는지 문 밖을 기웃대고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은 끝인 것 같아 얼른 먹고 샤워하러 갔다. 씻고 나와보니 여성 순례자 둘이 들어와 있었다. 빨래를 널고 있으니 그녀들은 능숙하게 세탁기를 돌리고 있었다.

13시쯤 숙소에 있던 재료로 마늘 치즈 파스타를 만들어서 고등어 통조림과 먹고 있으니 그제야 남성 순례자도 입실했다.

오스삐딸레로가 와서 세요를 찍어주고 숙박비를 받아갔다. 냉동실엔 누군가 놓고 간 고기가 꽁꽁 얼어있었다. 누군가 사놓고 그냥 가버린 모양인데 너무 큰 덩어리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다섯 명이면 다 같이 처리해 봄 직도 했지만 다들 엄두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쌈장도 챙겨 왔지만 너무 커서 나도 포기했다.




아무래도 베드버그에 또 물린 것 같다. 어제 버스 안에서 오른쪽 어깨가 울룩불룩한 걸 알았지만 모처럼 맨 배낭 무게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그게 오늘에서야 가려움이 심해진 거다.

이렇게 되니 배낭에는 여전히 베드버그가 남아 있는 셈이다. 손목에도 베드버그에 물렸고 알레르기가 생겼다. 혹시 수도원에 피해를 준 게 아닌가 싶어 내내 걱정이 되었다.

침낭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건데 이 상태로 계속 걸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배낭을 멜 때마다 물릴 테니 망했다.

날씨라도 좋았으면 어떻게 해보는 건데, 비 오는 날이라 속수무책이었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고통만 남게 되었다.




콜라를 마실까 고민하다가 내일 먹을 게 없어서 아껴두었다.

일찍 도착해도 이곳에선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종일 비가 오는 상황에선 산책도 힘들었다. 이번에는 하루에 걷는 거리를 대폭 줄였다.

천천히 걸으려는 이유가 마을 구경이었는데, 이러면 예전과 달라진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여성 순례자 한 명이 더 들어왔다. 성수기의 프랑스 길에서 발까르로스는 비수기인데 10인실에 5명이면 꽤 성과가 있는 셈이다.

1층 침대에는 콘센트가 있는데 2층 침대에는 없어서 아래쪽에 무리하게 꽂으려다 또 폰을 떨어뜨렸다. 내 폰은 무사히 돌아가긴 틀린 듯싶다.

근처에서 성당 종소리가 들리는데 꼼짝하기 싫다. 인터넷이 잘 되어도 딱히 쓸 일이 없었다. 더 이상 알아볼 정보도 없었다. 이제부터는 그냥 화살표 따라 잘 걸으면 된다.

오늘은 무얼로 끼니를 해결할 건지, 내일은 또 얼마나 걸어갈 건지만 고민하면 되었다. 론세스바예스에선 칼로리 발란스, 콜라, 생수, 오렌지, 초콜릿, 치즈, 믹스커피로 버티고 수비리에 가서 라밥을 먹기로 했다.

채소가 있으면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먹고, 없으면 크림수프를 끓여 먹어도 되었다. 이번엔 비상식량으로 카레가루와 크림수프 가루를 챙겨 왔다.




천천히 걷는 대신 오리지널 루트를 제대로 걸으려고 했는데 또다시 지름길을 검색하고 있다. 그냥 빨리 끝내고 싶었다.

피레네 산속에다 비가 오는 날씨라 그런지 20시가 되자 금세 어두워졌다.




어릴 적 내 꿈은 간호장교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그렇게 얘길 했고 학생기록부에도 매번 그렇게 적곤 했었다.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가는 길 뿐이었고 우리 집이 가난한 줄 알았던 나는 학비라도 덜어드리고 싶었다. 부반장을 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으니 부모님만 허락을 해준다면 그 꿈은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꿈이었다.

체력장에서 특 A를 받았던 나는 윗몸일으키기도 자신 있었고 키가 큰 만큼 달리기도 곧잘 했었다.

평소엔 내 의견을 얘기하지 못하는 성격이었지만 그 꿈에 대해서는 항상 떠들고 다녔고, 어머니도 별말씀이 없으셔서 무언의 긍정이라 믿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육군사관학교에서 홍보차 나왔을 때 난 신이 나서 원서를 들고 집으로 달려갔다. 당연히 동의서에 도장을 찍어주실 줄 알았다. 드디어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에 마냥 들떠 있었지만 그날 난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 뻔했다.

여자가 어딜! 여자가 군대에 가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며 입에 담지도 못할 얘기를 마구 쏟아내셨다. 어머니도 내 편은 되어주지 않았고 되려 나를 설득하셨다.

10년을 한결같이 얘기했는데 그동안 가만히 계시다가 왜 이제야 반대하냐고 하니 말로만 그런 줄 알았단다. 생활기록부에 직접 써주신 어머니가 그러실 줄은 정말 몰랐다.

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을 설득할 여력도, 자신도 없었다. 내 마지막 희망이었던, 내가 살 수 있는 마지막 길이었던 그 꿈을 조용히 포기해야 했다.




난 그랬었다. 희망이었던 꿈을 위해 한번이라도 맞서야 했지만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순순히 포기를 했었고 그래서 그 일을 평생 동안 후회해 왔었다.

사춘기조차 반항이 아닌 굴복으로 보내었던 나는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았다.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고 억지로 공부를 시키면 그냥 공부하는 척을 했고 부모님이 시키는 그 어떤 요구에도 토를 달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살기 위해 도망칠 때까지 말이다.




하지만 도망치듯 서울로 왔을 때 부모님은 의외로 순순히 보내주셨다.

물론 그 어떤 지원도 없었지만 지금껏 난 혼자서도 잘 살아남았다. 살기 위해 도망을 쳤고 도망에 성공했으니 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전해 들은 얘기에 의하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평생을 집에서 벗어난 적 없던 말 잘 듣는 딸이 갑자기 서울에 가겠다고 하니 난생처음으로 점집을 찾아가셨더란다.

그런데 그 점쟁이가 그냥 보내주라고, 한 달도 못 버티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니 괜히 기운 빼지 말고 그냥 보내주라고 장담을 하더란다.

그래서 순순히 보내준 셈이었지만 20년째 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너무 쉽게 꿈을 포기해 버린 게 억울해서 뒤늦게 하사로라도 군입대를 하려고 했었지만 그럴 바엔 차라리 육사를 가지 그랬냐는 어머니의 말이 또 한 번 나를 힘들게 했고 그렇게 난 또 절망을 해야 했다.




그런데 학비가 무료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아셨나 보다. 이번에 고향에 갔을 때 어머니가 문득 그 얘기를 꺼내셨다.

"육사는 학비가 공짜라며? 그걸 알았으면 반대하지 않았지."

그 말이 참 서글프게 들렸다. 원서를 꺼내 보시기라도 했으면, 홍보용 책자를 한 번이라도 읽어보고 판단했으면 알았을 내용이었다.

그때는 나쁜 곳이라서 보내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공짜라면 보내겠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했다. 어쩜 이미지가 좋아진 여군에 대한 이야기를 최근에 어디선가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마지막 희망을 잃고 인생을 포기했던 내가 무슨 짓까지 했었는지. 잊고 있었던 그 모든 기억이 한꺼번에 떠올라서 서울에 와서도 내내 아팠다. 회복하지 못한 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으니 이 여행은 처음부터 실패였다.

그리고 여전히 난 행복하지 않았다.




Saint Jean Pied de Port→Valcarlos 13.0km

○Saint Jean Pied de Port (179M)
●Uhart Cize
●Arnéguy (268M) 10.0km
●Valcarlos/Luzaide (375M) 3.0km

762.0km/775.0km




Albergue Municipal de Valcarlos -10.00€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do Camino de Santiago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