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o Camino de Santiago #42

Valcarlos→Roncesvalles, Spain

by 안녕
Day 37.
Wednesday, May 31


어젠 22시도 되지 않아 잠이 들었었나 보다. 여전히 꿈을 꾸었지만 아침까지 깨지는 않았다. 준비하는 인기척에 눈을 뜨니 7시다.

난 좀 더 기다렸다가 일어났다. 오스삐딸레로가 다녀갔는지 테이블 위에 꼬마 머핀 4개가 놓여있었다. 하나를 먹으면서 커피를 끓였다. 한 명만 남고 이미 모두 출발한 상황이라 꼴라까오를 마시며 두 개를 해치웠다. 나머지 한 명도 안 먹는단다. 누가 남겨주고 간 Pastas Caseras와 하나 남은 머핀을 챙겨 출발하니 이미 8시가 넘어버렸다.




날씨가 좋았다. 첫날은 비 오고 둘째 날은 맑은 게 2년 전과 같았다. 어찌하다 보니 발걸음이 가벼웠고 자신감까지 생겨서 기분 좋게 걸을 수 있었다. 평탄한 아스팔트 길을 걸으며 도넛 모양의 빠스따스 까세라스와 꼬마 머핀을 먹고 오렌지도 까먹었다.

오늘은 Pilgrim 앱을 오프라인으로 설정해 두고 걸었다. 와이파이 접속 시 남아있던 기록으로 지도가 표시되었고 내 위치도 확인이 되었다.




그런데 왼쪽 팔목이 가려워 확인하니 베드버그에 물린 상처가 또 생겨있었다. 오른쪽 어깨에도 또 다른 상처가 생긴 걸 보니 계속 물리고 있나 보다.

알베르게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아저씨도 어느새 나를 앞질러 가고 있었다.

두어 시간을 걷고 나자 왼쪽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있는 게 느껴졌다. 문제의 꼬불 도로 구간에서는 까미노를 알리는 노란 화살표가 숲길로 안내되었지만 선뜻 숲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지금 상태로 자갈길로 들어서면 물집이 심해질 것 같아 고민하다가 좀 더 돌아가더라도 평탄한 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아스팔트를 따라 걷다 보니 엄청난 거리를 돌아와야 함을 깨닫게 되었으나 그때는 더 이상 까미노 합류 지점을 찾을 수 없었다.

차도를 타라 계속 걸었지만 결국 물집이 생겼다. 참고 걷다가 걷잡을 수 없이 물집이 커져버렸던 예전의 기억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길에서 치료를 해야 했다. 임시로 물집을 터뜨리고 나자 통증이 더 심해졌다.

통증 때문에 절뚝거리게 되면 종아리 통증까지 생길 수 있어서 최대한 바르게 걸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어느새 통증에 익숙해졌지만 물집은 큰 방해꾼이 되었다. 아무리 편한 길을 걸어도 둘째 날엔 여전히 물집이 생기나 보다. 더 이상 무리하면 안 되겠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 중이었다.

13시쯤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조심히 걷다 보니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배낭은 폭탄이라 예민해졌고, 주위엔 순례자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주저앉고 싶었다. 즐거운 까미노를 꿈꾸며 이 길을 다시 걷고 있었지만 이미 목표는 그냥 산티아고 도착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지나다니는 차는 없었지만 위험을 대비해 차가 달려오는 방향의 갓길을 따라 절뚝이며 걷고 있었다.

도로 표지판 54km를 지나고 11시 45분쯤이었다. 반대편 차선에서 누군가 차를 세우고 클락션을 울리며 괜찮은지 물었다.

보통 때라면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겠지만 지금은 정말 괜찮지 않았다. 안 괜찮다고 하니 뭐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굳이 차를 돌려 차선을 넘어와서 내 앞에다 차를 세웠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손수 배낭을 뒷좌석에 실어주면서 조수석에 타라고 한다.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는데 그제야 택시란 걸 깨달았다.

하지만 자기 명함을 내밀며 안심시켜 준 프란치스코 아저씨는 택시 기사임에도 무료로 태워주셨다. 차를 돌려서 다시 론세스바예스를 향해 달렸다.

차를 타고 5분 정도 달리니 이바녜따 까미노 합류 지점이 보였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렇다고 후회되지는 않았다. 더 이상 가는 길이 중요하지 않았다.

도착이 중요한 이 시점에 더 무리를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 순간 난 이미 희망을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첫 번째 까미노 천사 덕에 10분 만에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3km 남짓을 날아서 온 셈이지만 괜찮았다. 무사히 Santiago de Compostela에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까미노였다.

아저씨는 론세스바예스 입구에 내려주었고 나머지는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해주셨다. 본인도 어차피 성당 앞까지 가야 했음에도 남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 같았다. 그러지 않아도 되었는데 말이다. 프란치스코 아저씨 감사합니다.




Roncesvalles (953M)는 스페인의 오래된 바닥의 포장 돌과 건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백 살은 넘은 듯한 웅장한 나무 하나하나가 오랜 시간 이 순례 길을 지나간 사람들의 증인이 되어준다.

그리고 이 길과 그 길을 지난 사람들이 현재까지 유럽 전역에 퍼져있는 전설의 기원을 밝혀주고 있다.

이 오래된 건물들은 탐욕 때문에 들어온 침략자의 군대에게나 믿음으로 길을 찾아온 순례자들 모두를 위한 휴식 장소였다.

또한 피레네 산맥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이 역사적인 장소에 또 다른 특별한 매력을 선사하기도 한다.

겨울에는 흰 눈으로 덮여 있는 피레네의 산맥의 봉우리 사이로 언뜻 보이는 초록색 초원이 가축들에게 먹을 양식을 제공한다면 여러 건축물과 시설은 프랑스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영토로 발을 들여놓은 순례자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고 있다.

순례자들을 편안히 쉬게 해주는 몇 개의 아름다운 성당과 샤를마뉴, 롤랑, 론세스바예스 전투와 관련된 역사가 있는 마을로 이곳은 역사, 예술, 문화, 전설이 모두 갖춰져 순례자라면 반드시 보아야 할 곳이다.




Real Colegiata de Santa María
산따 마리아 왕립 성당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초기의 건물로 고딕식 성모상 조각이 보관되어 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성직자 회의실엔 강건왕 산초 7세의 고딕 양식 무덤이 있고 Las Navas de Tolosa의 전투에서 얻은 전리품 일부도 있다. 회랑은 17세기 양식이다. 현재의 건물은 원래의 성당 자리에 13세기에 재건축된 것인데 원래의 건물은 아라곤과 나바라의 왕인 전투왕 알폰소 1세의 소망에 따라 빰쁘로나의 대주교 돈 산초 데 라로사의 재임기에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이었다. 작품들은 산초 엘 푸에르떼의 건축가들이 가져왔고 산초 왕의 후계자들이 마무리했다. 고딕 회랑과 회의실, 다른 부속 건물 등이 있으나 세월의 무게 때문에 부분적으로 무너졌다. 1445년에 화재가 일어나 성당 건물이 훼손되었으며 1600년에는 지붕에 내려앉은 눈의 무게 때문에 남쪽 회랑과 성전의 지하층이 무너졌는데 1615년 건축가 돈 후안 데 아라네기에 의해 재건되었다.




14시부터 체크인 가능하다고 해서 앉아서 기다리는데 어제 발까르로스 알베르게에 같이 묵었던 서양인 두 명이 이내 도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체크인이 시작되어서 나도 줄을 서서 등록을 하는데 12€란다.

109번 침대 티켓을 받고 생각하니 리모델링한 신식 침대가 12€였고 늦게 도착하면 구식 침대를 10€에 배정받게 되는 거였다. 기부대에서 낡은 배지를 득템 했다.

성당에서는 평일엔 20시, 토요일엔 18시, 일요일엔 12시, 18시에 미사가 있단다. 첫 번째 까미노에서는 저녁 먹으러 가느라 성당 구경을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꼭 참여하기로 했다.




숙소 오픈을 기다리며 짐을 정리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속속 도착했다. 오늘은 한국인도 보였다.

14시가 넘어서자 사무실 쪽으로 긴 줄이 다시 형성되었는데 체크인하면서 같이 기다리던 사람들이 없어졌다.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보니 그제야 사무실 안쪽으로 숙소의 입구가 있다고 알려준다.

뒤늦게 들어가서 씻고 건물 뒤편으로 가서 오랜만에 뜨거운 햇볕에 빨래를 말렸다. 치즈와 콜라, 까세라스도 다 먹어치웠다. 내일 먹거리는 내일 생각하기로 했다.

신식 숙소는 4인실 형태였고 다행히 모두 여자가 체크인했다. 위층 침대엔 이탈리아인, 건너편엔 미국에서 온 모녀로 모두들 친절했다.




불편한 왼쪽 발 대신 고생을 많이 한 오른쪽 발부터 바셀린 마사지를 했다. 왼쪽 발은 물집 처치를 했다. 소독을 하고 바늘에 실을 꿰어 물집을 통과시켜 진물이 흘러나오도록 놔두었다. 종아리는 괜찮았지만 그래도 마리아가 챙겨준 냉찜질 팩을 붙였다.

한 달 동안 신고 다녔던 양말 바닥이 해져서 물집이 생겼을까 봐 등산용 양말을 새로 꺼내 신었다.

햇살은 좋은데 바람이 차가워서인지 18시가 되어도 빨래가 제대로 마르지 않아 일단 걷어왔다. 그래도 수건은 바짝 말라서 다행이다.




19시가 되자 모두들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난 혼자서 시간을 보내다가 20시 미사를 알리는 성당 종소리에 이끌려 성당으로 갔다.

입구가 어디인지 몰랐는데 일찍 나선 덕분에 사람들을 따라 자연스레 성당으로 들어갔다.

20시 미사는 순례자를 위한 미사로, 순례자의 안전과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가 끝난 이후에는 모든 순례자들에게 축복을 건넨다.

신부님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신다더니 복사 없이 정말 혼자서 다 하셨다. 마지막으로 강복도 받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헌금이 부담되어 매번 망설였지만 주운 동전을 내러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했다.




장을 비우지 못했지만 속이 불편하지 않았다.

21시에 자리에 누웠다. 내일은 긴 여정이라 아침 일찍 서둘러야 한다. 내일도 잘 부탁드립니다.




Valcarlos→Roncesvalles 12.0km

○Valcarlos (375M)
●Puerto de Ibañeta (1,056M)
●Roncesvalles/Orreaga(953M) 12.0km
-Real Colegiata de Santa María
-Claustro de Real Colegiata de Santa María
-Capilla del Sancti Spiritus
-Museo de la Colegiata
-Capilla San Agustín
-Capilla San Salvador de Ibañeta
-Monolito de Roldán

749.4km/775.0km




Albergue de Peregrinos Roncesvalles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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