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rdes, France
Day 33.
Saturday, May 27
잠이 오지 않으면 굳이 자려고 하지 않지만 요즘은 무언가 불안한 상태라 되도록이면 억지로라도 자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 시계에 따라 반응하는 신체 리듬이라 그런지 해가 늦게 지는 루르드에선 일찍 자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에 그만큼 일찍 일어나는 것도 힘든 상태였다.
하지만 오늘은 5시 50분쯤 눈이 떠졌으나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어 다시 잠이 들었고 7시에 일어났다.
식당으로 바로 내려갔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조용했다. 다들 아직 내려오지 않은 것인지 아님 단체 투숙객이 모두 체크아웃한 것인지 모르겠다.
식당은 하나만 오픈되어 있었고 두 사람이 각각의 테이블에서 빵을 먹고 있어서 빵이 좀 더 많이 남아있는 다른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집에서는 아침을 먹지 않았지만 여기선 빵으로도 부족해서 오늘은 양송이 수프 캔을 갖고 내려왔다.
수프를 커피잔에 담아 데울 준비를 해서 복도로 나갔다. 대기하고 있는 무서운 아저씨에게 가져가서 보여주니 전자레인지가 있는 옆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스푼이랑 받침대로 쓸 접시도 가져다주셨고, 데우는 도중 튀었던 수프 자국을 냅킨으로 닦고 있으니 행주를 가지고 와서 도와주기도 했다. 인상만 무서운 분이셨다.
그런데 자리로 돌아와 보니 빵의 양이 줄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빵 바구니를 바꾼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냥 앉아서 먹었다.
첫날의 촉촉한 빵은 이제 먹을 수가 없는 건지 빵이 말라 있었다. 수프는 느끼함이 있어서 한 번에 다 먹지 못할 줄 알고 덜어내고 먹었으나 먹다 보니 그렇게 느끼하지 않아 결국엔 다 먹게 되었다.
기내에서 받았던 후추를 챙겨서 내려갔는데 가서 보니 이게 또 소금이라 그냥 먹어야 했다.
빵 두 조각을 더 가져와 버터 3개를 듬뿍 발라 먹었다. 빵과 크림수프로 배를 채우니 커피를 마실 여력이 없어 커피는 커피통에 담아서 방에 올라오니 35분이다.
오늘은 내려가서 준비하는 시간도 있었는데 평소보다 빨리 먹고 온 셈이다.
오렌지 사러 나갔는데 그늘이 있어서 어제보다는 괜찮은 산책길이었다.
오늘은 등산화를 신고 나갔는데 답답하긴 했지만 안정적이라 다리가 편했다.
먼저 까르푸 시티에 들러보니 마침 찾던 오렌지가 있어서 까르푸 마켓까지 가지 않아도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루르드의 알베르게, 지트에 가봤는데 문은 닫혀 있고 창은 열려 있었다. 운영은 하고 있는 모양이다.
만약 루르드에서부터 걸어간다면 생장까지 가는 길의 정보를 얻으려 했으나 이번엔 이미 포기했고 다음을 기약할 수도 없어서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쁠레장스 호텔로 가는 야외 엘리베이터 골목에 있었다. 기념품 구경을 하러 성지 입구 대형 상점에 들렀지만 3€짜리 비옷 구경만 하고 나왔다.
그런데 손목이 빨갛게 부어있었다. 무언가에 물린 것인지 아님 알레르기인지 잘 모르겠다. 너무 가려워서 계속 신경 쓰였다.
루르드 샘물을 생수병에 담아왔다.
루르드 광장에 앉아서 인터넷에 접속했다. 지난 1월 19일에 결혼했던 김태희가 임신 15주 차란 소식이다. 건강하게 출산하길. 연예인 걱정이 가장 쓸데없다고 하지만 그냥 행복했으면 싶다.
생장 공립 알베르게에 예약 메일을 보냈다. 공립은 예약이 안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에서 보내 보았다.
그렇게 오늘도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쓰러져 있던 토마토소스 병에서 소스 일부가 흘러나와 있었다. 열어보니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배낭에 넣어 두었으면 계속 몰랐을 텐데 미리 알게 되어 다행이다 싶다. 못 먹게 된 것은 유감이지만 하나라도 덜고 갈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칩을 먹어치우고 오렌지 주스도 다 마셨다. 이젠 잼이랑 콜라와 파스타 면, 쌀, 라면이 남았다. 내일은 바게트 사 와서 잼을 처분하면 되겠다.
월요일에 비 소식이 있어서 불안하긴 하지만 이젠 배낭도 가벼워졌으니 괜찮을 것 같다.
내일 새벽에 동굴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여하고 돌아와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침수를 할 수 있는지 한번 가보기로 했다.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할 수 없으니 기대는 하지 말자.
바게트 사 오고 마지막으로 빨래를 하면 루르드에서의 일정은 끝이 난다.
진작에 초 봉헌을 하고 매일 가서 마지막까지 잘 타고 있는지 지켜봤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못했던 건지, 늦었지만 초 봉헌은 꼭 하고 출발하자.
오늘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자. 다 괜찮을 거야.
떠나기 전에 마음이 진정되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힘들 때마다 루르드를 기억하자.
어쩜 지나고 나면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좀 더 즐기지 못했음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빨리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집에는 가고 싶다.
여행 와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데 이번 여행은 출발부터 솔직히 돌아갈 수만 있다면 모두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었었다.
이젠 무너져도 집에서 무너지는 게 덜 억울할 것 같았다.
폰에 저장해 놓은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을 때우려고 했는데 삭제했는지 이마저도 없었다.
떨어뜨려서 생긴 스마트 폰 스크래치가 눈에 밟힌다. 갖고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그랬나?
하지만 이젠 내 폰 같아서인지 한국 가서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할 것 같다.
17시 오늘을 마무리했다. 내일도 무너지지 말자.
루르드의 성모님, 저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그런데 누워있으니 나가고 싶어 졌다. 열기도 사그라든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나가면 힘들지도 모른다. 울면서 돌아오면 어떡하지?
그래도 십자가의 길만하고 오자. 그래서 다시 나갔다.
양말을 빨아버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선글라스 없이 스카프만 두르고 나갔다. 잠시 다녀오는 건데 뭐 어때? 아직 후덥지근했지만 견딜만했다.
드디어 십자가의 길 동산에 다다랐다.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십자가의 길을 시작했다.
그런데 땀이 나기 시작하니 몸의 상처들이 가렵기 시작했다. 까미노에서도 고생 좀 하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14처에 가서야 먼저 출발했던 단체가 있었단 걸 알게 되었고 서둘러 먼저 하산을 했다.
배가 아프긴 했지만 컨디션이 괜찮아서 성지로 가려고 했는데 내리막이 시작되니 엄지발가락에 통증이 느껴졌고 이내 물집이 생기더니 쓰리기 시작했다.
까미노의 적, 물집을 여기 루르드에서 만나다니 2년 전엔 루르드에서 발톱을 다쳤고 그 상태로 피레네를 넘다 결국 발톱을 잃었다.
앉아서 쉬면서 열기를 진정시키고 돌아갈까 고민하는데 성지 후문에 다다르니 소성당 입구가 보였다.
미사가 끝났는지 사람들이 나오고 있길래 잠시 들어갔는데 이번엔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갑자기 배가 부어올라 서둘러 돌아왔다.
19시가 넘었다. 겁이 나서 샤워하고 셀프 침수. 한동안 괜찮더니 갑자기 또 왜 이러지. 압박이 심해졌다.
나가지 말 것을 그랬다. 손목의 가려움도 심해졌고 발에는 물집까지 달고 돌아왔다. 산에 가면서 슬리퍼라니. 아무리 천천히 걷는다 해도 자갈이 있는 산길이었는데.
수비리 가는 길에 슬리퍼 신고 걷다가 그렇게 고생을 하고는 잊다니! 난 망했다.
손목은 부기가 심해지더니 혈관을 따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Sanctuaires de Lourdes
●Chemin de Cro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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