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rdes, France
Day 32.
Friday, May 26
어제는 22시에야 해가 졌고 자정이 되어서야 간신히 잠이 들었다.
하지만 매 시간마다 깼던 것 같다. 밤이 되자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덧문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에 놀라 깼다. 창을 열고 확인했으나 덧문은 고정되어 있었다.
다른 룸에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소리가 너무 커서 덧문이 바람에 부서질 것만 같았다.
옛날에는 참 무서웠겠다 싶다. 바람이 심해서 나갈 수나 있으려나 걱정을 하며 잠이 들었는데 역시 일어나지 못했다.
6시는커녕 7시에도 일어나지 못해 14분쯤 억지로 일어나서 내려갔다. 오늘은 무서운 표정의 아저씨가 안내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다녀갔는지 테이블은 어지럽혀져 있었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빈자리에 앉았는데 빵을 가져다주지 않아 아프리카계 스태프에게 빵을 달라고 했다. 때마침 사람들이 일어난 테이블에 있던 남은 빵을 가져다주려고 해서 내가 자리를 거기로 옮겨 앉았다.
하지만 남은 빵으론 부족했고 뭔가 허전해서 오늘은 굶은 느낌이다.
루르드에선 일찍 일어나기가 유난히 힘들었다. 해시계에 따라 반응하는 내 생체 시계는 늦게 지는 루르드의 해로 인해 자정이 되어야 밤이 되었다.
내일은 정말 일찍 일어나야겠다. 배고프다. 예약석에 놓인 빵을 가져올까 말까 고민하는 중에 마지막 학생들이 들어왔다. 왠지 자리를 비켜주어야 할 것만 같아 무심코 일어섰다.
방에 와서도 미사에 갈 것인지 한참을 고민하다 문득 테이블을 정리하지 않고 온 게 생각이 났다. 정신이 없긴 없나 보다. 반항이었다 생각하기로 했지만 기분이 좋진 않았다.
영성체를 하고 오자, 그래도 나아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럼 십자가의 길이라도 하면서 산을 한 바퀴 돌고 오면 되지.
그렇게 고민 끝에 동굴에 도착하니 8시 40분, 독일에서 온 어느 단체의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한 시간이 걸렸는데 이미 땡볕이 되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영성체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뒤쪽은 영성체 줄이 형성되지 않았고 신부님이 오시지도 않아 앞쪽으로 가서 줄을 섰는데 한쪽을 가리키며 굳이 그쪽으로 가란다. 저쪽 끝에도 신부님이 계셔서 영성체를 하긴 했으나 왠지 차별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 단체 미사에 외부인이 오면 뒤로 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싶어 그만 잊고 샘물을 받으러 갔다.
그런데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마시는 서양인 아이들,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 동산으로 갔다. 이미 수많은 인파가 십자가의 길을 하고 있었다. 어떤 단체가 길을 막고 서 있었는데 그 길을 뚫고 지나가려 했으나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지나가고자 노력했으나 결국 포기해야 했다.
정말 오늘도 엉망이다. 하필 오늘, 금요일에 십자가의 길을 하겠다고 생각한 내 잘못이지 싶다.
돌담길은 이제 아름다운 길이 아닌 눈물로 돌아오는 길이 되고 말았다. 그래 다 내 잘못이었다.
일찍 일어났으면 모든 게 순조로웠을 텐데 일찍 일어나지 못했던 내 잘못인 거다. 나를 원망해야 했다.
들어오다 스태프가 보여 화장실 휴지가 떨어졌다고 하니 아프리카계 스태프가 세 개를 가져다주었다.
난 오늘도 무너졌다. 이제 어떤 희망도 남아있지 않았다.
지난 한 달 동안 힘들 때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여기에 오면 모든 걸 위안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위안이 되지 못했다.
위안받을 곳은 이제 내 집 밖에 없을 것 같지만 당장 돌아갈 수도 없으니 이제부터는 기다려야 한다. 두 달씩이나!
잠깐이나마 땀을 흘린 탓에 샤워하고 셀프 침수하고 누웠는데 깜빡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 듯했지만 열이 나고 있었다. 멍하니 있다 보니 마음이 다시 무거워질까 두려웠다.
장을 비우고 샤워를 했는데 기운이 없어서인지 현기증이 나서 쓰러질 뻔했다. 빨래를 널고 다시 누웠다.
허벅지에 커다란 멍이 또 생겼다. 도대체 어디에 부딪히고 다니는 걸까? 내 다리만 보면 무슨 사고라도 당한 줄 알겠다.
새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빛나고 있는 걸 보니 곧 비가 올 것 같았다.
무언가 먹어야 할 것 같아 오렌지를 사러 갈까 했으나 오늘도 33도, 땡볕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16시 반쯤 하늘이 어두워졌고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마른하늘에 천둥소리가 들렸다.
소나기라도 내려주면 시원해지지 않을까 생각하던 찰나 비가 쏟아져 내렸다.
나갔다 올 걸 그랬나 생각하는 찰나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다시 비쳤다.
초 봉헌에 파운드도 받는대서 파운드 동전을 꺼냈는데 자꾸 속세에 찌든 짓을 하게 되었다.
봉헌이니 그야말로 정성도 포함해야 하거늘 파운드 동전 처분에 목적이 있는 것만 같아 그만두었다.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하면 안 되는 걸까? 다시는 혼자서 여행 떠나지 말자. 이건 여행이 아니다.
제대로 된 순례를 하고 싶으면 어떠한 관광도 끼워 넣지 말자. 기껏 와서 시간만 때우는 짓이 무슨 여행? 정말 한심하다.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보다 여행지에서 뒹굴거리는 게 낫지 않냐고? 아니, 아니다!
오전에 초코 시리얼 하나를 먹어치웠는데 오후엔 칩을 해치우고 있는 중이다. 생선 통조림을 먹고 싶은데 혹시라도 날로 들어있을까 봐 뜯지도 못하고 있다. 까미노를 시작하면 주방이 있는 발까르로스로 가야겠다.
해바라기씨 250g을 드디어 끝냈다. 왜 가져왔을까 하고 수십 번은 후회를 하며 열심히 까먹었다. 그럼에도 절반이나 남았음에 절망했었던, 어제는 버리려고도 했으나 오늘 드디어 끝장을 내버렸다.
2년 전에도 욕심부리다가 그 고생을 하고도 또 욕심을 내다니 해바라기씨는 이제 쳐다보지도 말자.
22시가 넘어서야 해가 졌다.
하늘이 어두워지니 바람 소리가 무섭게 들렸고 또다시 덧문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체크인했던 날 오른쪽 덧문이 고정되지 않아 직접 고정했었는데 왼쪽 덧문도 고정이 안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무언가 울부짖는 듯한 바람 소리가 정말 무서웠다. 복도에서 누군가 각 방문을 열어 창을 확인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중세시대 고성에 갇힌 느낌이라 문을 열고 내다보면 누군가 촛불을 들고 다니고 있을 것만 같았다.
자려고 노력했으나 두통만 심해지고 오늘도 결국 자정을 넘겼다.
어느덧 바람소리가 잦아들어 창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이미 새벽 2시다.
●Sanctuaires de Lourdes
●Grotte de Notre Dame de Lour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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