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o Camino de Santiago #36

Lourdes, France

by 안녕
Day 31.
Thursday, May 25


일찍 잠든 것 같았는데 힘든 아침이다. 뭔가 힘들 때마다 학교 꿈을 꾸는데 이번엔 콜센터 꿈을 꾸었다. 그만큼 나에겐 학교만큼 힘든 곳이었나 보다.

급할 것은 없지만 단체 투숙객들로 인해 분주한 아침이 될 것 같아 일단 먹고 다시 자려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식당 여러 곳이 오픈되어 있었고 단체 투숙객이 이미 다녀갔는지 대부분 초토화되어 있었다. 내 생각보다 더 많은 단체가 투숙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다른 방으로 안내받았는데 빵 바구니가 거의 비어 있었다. 다시 채워주기는 했으나 오늘은 가느다란 바게트였다.

미리 챙겨간 까망베르 치즈를 먼저 발라 먹고 버터를 발라 먹으니 빵 바구니는 깨끗하게 비워졌다. 커피가 없어 다른 방에 가서 직접 채워왔다.




엄지손가락 상처가 덧나 통증이 심해졌다. 모기에게 물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플 때마다 주먹을 쥐는 습관 때문에 손바닥엔 상처가 생기곤 한다. 손바닥은 아물고 있는데 손가락 쪽은 부풀어 올라 꽤 신경이 쓰였다.




오늘도 창밖으로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나라 같으면 논과 밭으로 가득할 평원이 이곳은 그냥 잔디밭이다.

산도 있고 강도 있고 성당도 있으니 여유로움이 그리울 때 오면 좋을 것 같았다. 나중에 어머니와 함께 다시 와도 좋을 곳이다.




오늘은 그냥 쉬어야겠다. 와이파이 때문에 매번 나갔는데 이젠 필요가 없었다. 이런 빈둥거림도 며칠 후면 곧 끝이 난다. 집에서 빈둥거리는 게 차라니 나았던 걸까?

여행이 점점 두려워진다. 돌발 상황에 대처도 못하면서 돌발 상황의 연속이었던 이번 여행은 이미 부담이 되고 있었다.




"여자가 정말 간도 크다!"

내가 백일 동안 여행 간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가 나에게 하신 말씀이시다.

어머니 말이 맞는 것 같다. 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였다. 루르드의 성모님, 조금만 혼내시고 저 좀 살려주세요.

그래도 여기서 무너져서 다행인 걸까? 마음껏 울 수 있는 이곳에서, 아름다운 이곳에서. 오늘은 뭔지 모를 죄책감에 무너졌다.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한국 떠나온 지 31일째, 자괴감에 빠진 날이다. 그래도 털고 일어나겠지. 제대로 무너지지도 못하는 주제에!




한 시간 넘게 해바라기 씨를 까먹었다. 아무 생각 없이 까먹기에는 좋은, 가끔은 오기도 생기게 하는 씨앗이다.

다 괜찮아질 거야, 괜찮다. 기운 내려고 음악을 들었는데 '겁이 나서 멈춰버린 너에게' 란 가사가 나를 울렸고 다시 원점이 되고 말았다.

까미노에서 멈추게 되면 어떻게 하지?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싶었으면 동굴 미사에 가면 되었을 텐데 왜 굳이 늦게까지 기다리다 로사리오 성당으로 갔던 걸까? 내일은 동굴로 가야겠다.

장을 비우고 샤워를 하고 15시쯤 나섰다.




오늘은 모든 게 무리였나 보다. 동굴 성당에선 묵주기도가 시작되어 의자에 앉았는데 햇빛에 달구어진 의자는 견딜만했으나 머리가 뜨거워도 너무 뜨거웠다.

33도의 땡볕에서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땀이 줄줄 흘러 로사리오 성당으로 피신했는데 미사가 시작되어 다시 광장으로 나갔다.

햇볕을 피해 의자에 앉아 인터넷으로 한국의 뉴스 기사를 검색하고 일기를 쓰다 보니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한국 사람이란 걸 알았다. 이번엔 의외로 한국인을 만나지 못한 듯싶다.




그렇게 돌아왔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숙소로 돌아왔다.

다시 샤워를 하고 칩을 씹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달랬다.

17시 오늘은 음악과 함께 마무리했다. 더 이상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Sanctuaires de Lourdes
●Grotte de Notre Dame de Lourdes
●Basilique Notre Dame du Rosaire de Lourdes
●Basilique Saint Pie X




Maison Saint Pierre et Saint Paul +B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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