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rdes, France
Day 30.
Wednesday, May 24
4시 반 잠깐 잠이 깼다가 7시 알람에 눈을 떴다.
오늘도 바로 일어나지 못해 꾸물거렸다. 먼저 장을 비우고 7시 30분쯤 식당으로 내려갔다.
인자한 아저씨가 반겨주었고 오늘도 맛있게 먹었다. 버터 2개에 바게트 3조각을 먹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몫이 부족할까 봐 기다렸으나 더 이상 빵은 먹지 않아서 버터 1개를 듬뿍 발라 한 조각을 더 먹었다. 오늘은 커피가 충분하게 담겨있어서 부족함이 없었고 세 잔이나 마시니 배가 불렀다.
오늘은 아프리카계 스태프가 있었다. 수도원 성당에 대해 물으니 지금은 폐쇄된 모양인지 들어갈 수가 없단다. 그래서 지도에도 성당 이름이 나오지 않았고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가 원래 성당 이름이었으며 수녀님들은 그냥 거주만 하시는 분들인가 보다고 짐작만 했다.
8시가 넘었는데도 인자한 아저씨는 아직 계셨다.
오늘은 느긋한 오전을 보내려고 했는데 보기 드문 화창한 아침이다. 아침 안개도 없었다.
햇살이 성당 건물에 반사해 실내까지 환하게 비추었다. 루르드에 오면 통증이 덜했는데 이제는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오늘은 루르드의 샘물을 떠 와서 셀프 침수를 해야겠다. 병든 내 피부도 괜찮아지길.
배낭을 메고 다녀서인지 모르겠지만 손에 베드버그에 물렸다. 그래도 오늘은 딱지가 생기면서 진물도 멈추었다.
리옹에 이어 루르드에서도 매일 휴식이다. 15시쯤 머리를 감고 빨래하고 17시쯤 성지로 가서 19시쯤 돌아오면 될 것 같다.
루르드에서라면 굶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지만 라면포트 하나만 챙겨 오면 식사도 해결될 것 같았다. 여행지가 마음에 들면 한 달 살기 아니 1년 살이 꿈을 꾸기도 한다.
10시 반쯤 성지로 갔으나 와이파이가 되어도 딱히 할 일이 없어 뽀 강변 따라 산책하며 묵주기도 드리고 베르나데뜨 경당에도 가보고 숙소에 돌아오니 어느덧 13시다.
좀 쉬면서 점심은 천천히 먹으려고 했는데 까망베르 치즈를 넣어둔 비닐봉지 주변에 날벌레가 꼬여있었다. 놀라서 남은 바게트와 같이 바로 먹어치우느라 이틀 치 분량을 먹었다. 하루치가 더 남았으나 배가 불러서 더는 못 먹겠다. 어제 아끼지 말고 마음껏 먹을 걸 그랬다.
까망베르 치즈 한 덩이로 4일 정도는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날씨 때문에 기껏해야 3일 정도 버틸 수 있는 상황이다. 남은 치즈가 내일 아침까지 버텨주어야 할 텐데 싶다. 냉장고가 아쉬웠다. 여행 중에 까망베르 치즈를 사서 아침으로 먹으려고 했는데 이로써 냉장고 없이는 무리라는 게 밝혀진 셈이다.
모든 게 평화로운 마을,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루르드의 풍경을 이번에야 비로소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 창 밖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아도 그저 좋았다.
14시 샤워 후, 셀프 침수를 했다.
그동안 지친 몸과 베드버그에 의한 상처 그리고 오랜 지병까지 씻어내길 기도했다.
미신이라 할 수도 있지만 루르드의 물이 다른 곳과 성분이 달라서 병에 따라서 치유가 되기도 했다.
2008년 9월 12일 토요일, 프랑스 순방 중 루르드의 성모 순례지를 방문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마사비엘 동굴로 찾아가서 19세기식 옷차림을 한 소녀가 건네준 루르드의 샘물을 한 잔 마셨다.
1858년 2월 25일 베르나데트 수비루는 이 장소에 루르드의 성모가 나타나 샘물이 솟아났다고 설명하였다.
그날 이후 루르드에는 수만 명의 순례자들이 방문하여 루르드의 성모가 베르나데트에게 “샘에 가서 그 물을 마시고 몸을 씻어라.”라고 한 명령을 따라 행하고 있다.
비록 교회가 공식적으로 장려하고 있지는 않지만, 루르드 샘물은 기적의 샘물로 불리며 루르드에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고취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발현 이후, 난치병을 앓는 많은 사람이 이곳에 와서 자신들의 치유를 갈망하며 그 물을 마시거나 몸을 씻고 있다.
루르드 당국은 루르드 샘물을 마시거나 목욕하러 찾아오는 사람 모두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1858년 루르드의 시장 앙셀름의 의뢰에 따라 루르드 샘물에 대한 성분 분석이 이루어졌다.
그 일은 툴루즈에 사는 교수가 맡았는데 조사 결과 샘물을 마셔도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산소, 질소, 탄산 석회, 마그네시아, 극소량의 탄산철, 알칼리성 탄산염 또는 규산염, 칼륨과 나트륨의 염화물, 극소량의 칼륨과 소다의 황산염, 극소량의 암모니아, 극소량의 아이오딘 등의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본질상 수질은 매우 깨끗하며 특별한 화학 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성모 발현 이후 루르드에서는 지금까지 7천여 건의 기적 치유 사례가 보고됐다.
그러나 현재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기적은 총 67건이다.
루르드 샘물의 기적 치유 심사는 1882년 설립된 루르드 의무국에서 실시한다.
이 의무국은 전 세계 모든 의사들에게 열려있으며 의사들은 기적으로 병이 나은 사람들을 조사하거나 의무국 내 문서를 살펴볼 수 있다.
루르드 의무국에서는 이전에 불치병 판정을 받은 이들이 치유된 사례를 조사하고 완치 확인서를 발급하지만 결코 기적이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또 이곳에서는 정신적 원인일 가능성이 있는 질병이 아닌 오직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고 의학적으로 입증된 기질적 질병의 치유 사례만을 제한적으로 조사한다.
기적 치유로 인정받으려면 매우 심각하고 치료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질병으로 회복단계가 아니며 효과적인 약물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충족해야 한다.
또 치유는 즉각, 완전하게, 영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세수할 때마다 손바닥에 닿는 감촉으로 얼굴이 무척 거칠어졌다고 생각했다. 물갈이 때문인가 했는데 햇빛 때문이었나 보다. 요즘 거울을 안 보고 살았더니 이렇게 새까맣게 탄 줄을 몰랐었다.
성인이 되자 어머니는 나에게 화장을 하고 다니라고 했다. 간신히 색조 화장을 하면 피부 화장도 하라고 하셨다. 친구들을 보면 피부 잡티를 가리기 위해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파우더를 두드렸다. 그래서인지 피부 화장은 무언가를 가리기 위한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나는 피부에 잡티가 없었으니 가릴 것도 없었다. 피부 화장을 해도 화장한 티가 전혀 나지 않으니 왜 발라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왜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화장하는 게 예의라고 해서 억지로 바르다 보면 되려 피부 트러블로 고생만 해야 했다.
기초 화장품도 마찬가지였다. 피부가 예민하니 제품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비싼 제품을 추천해 주었다. 써보고 문제가 생기면 환불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틀 만에 트러블이 생겨서 환불하러 가면 피부에 적응하는 과정이라며 더 써보라고 했고 그러다 나중엔 절반이나 썼으니 환불해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브랜드를 바꾸고, 추천해 주는 제품을 쓰면서 가격은 점점 올라갔지만 만족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도움이 되려고 바르는 화장품으로 되려 문제만 생겼고 흉터도 생겼다.
좋은 화장품의 기준을 모르니 고가의 화장품을 주로 썼지만 저가의 화장품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매번 한두 번 쓰다 어머니에게 넘겨야 했다.
선블록이라도 바르라고 했지만 선블록의 트러블이 가장 심했고 굳이 바르지 않아도 문제가 없었으니 그렇게 맨 얼굴로 버텼다.
그런데 서른다섯이 되던 해에 얼굴에 잡티가 생기기 시작했다. 잡티를 가리고 싶은 마음에 피부 화장을 하려고 했지만 하루아침에 익숙해지지 않으니 포기하게 되었다.
잡티 없는 깨끗한 얼굴은 포기했다. 그래도 긴팔을 입고 다닌 덕분에 몸은 아직 깨끗한 피부로 남아있잖아, 그랬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베드버그가 물어뜯은 상처는 어마어마했다. 상처는 가라앉고 있지만 새까맣게 죽어가는 피부를 보니 흉터도 남을 것 같았다. 그래 깨끗한 피부는 포기하자.
15시쯤 내려가니 오늘은 아프리카계 스태프 외에 또 다른 아시아계 스태프가 있어서 뜨거운 물을 요청했다. 주방이 없어서 먹을 수 없는 소시지와 수프를 나눔 하고 다시 올라왔다.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방 안에 파리 한 마리가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것 빼고는 여유로웠고 아무것도 바랄 게 없는 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두려워졌다. 걷기가 싫어졌다. 이제 며칠 후면 모든 걸 짊어지고 걸어야 하는데 그 힘든 게 싫어졌다. 평생에 한 번도 오기 힘든 곳을 두 번씩이나 왔다고 나태해진 걸까? 생각이 많아졌다.
만약 다음 까미노가 있다면 까미노를 먼저 하고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미노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일이 생기니 까미노 탓을 하게 되었다. 어려운 걸 먼저, 편한 것은 나중에 하자.
희귀 암 판정을 받은 김우빈이 군면제를 위한 꼼수라고 되려 욕을 먹고 있는 기사를 봤었다. 다들 왜 그럴까? 내 처지가 누굴 걱정할 상황은 아닌데.
이제부터 쓰지 않으면 390유로로 까미노를 시작하게 된다. 이제 먹는 것도 줄이자. 나를 위해서는 돈을 쓰면 안 되나 보다.
이상한 날벌레가 창틀에 갇혀서 요란스러웠다. 살려서 보내주려다 되려 죽일 뻔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내보낼 수 있었다. 그러느라 시간은 어느덧 17시가 넘었다.
부랴 나서다가 복도에서 학생들로 구성된 단체와 마주쳤다. 오늘은 소란스러울 것 같았다.
마사비엘 동굴에 먼저 들렀다가 성 비오 10세 성당으로 갔다. 성체 강복 때 성가 선창자가 한 명 더 있었는데 둘 다 잘생겼다. 목소리와 얼굴을 보고 뽑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로사리오 성당으로 가서 미사에 참여했다. 이번에는 새 얼굴이 선창 했다.
19시 20분쯤 미사가 끝나서 숙소로 돌아왔다.
배가 부른데도 초콜릿 쿠키를 네 개나 먹었다. 그리고 해바라기씨를 계속 까먹다 손가락이 까졌다. 먹은 만큼 다시 장을 비우고 샤워하고 일찍 자리에 누웠다.
남은 여행 기간을 위해 미사 통상문을 정리했다.
어느새 22시, 외출했던 학생들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Sanctuaires de Lourdes
●Grotte de Notre Dame de Lourdes
●Basilique Notre Dame du Rosaire de Lourdes
●Basilique Saint Pie X
Lourdes Misa-0.20€
Maison Saint Pierre et Saint Paul +B -1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