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rdes, France
Day 29.
Tuesday, May 23
침낭 덕분인지 밤새 춥지는 않았다. 이상한 꿈을 꾸다 눈을 뜨니 6시 반, 바깥세상은 동화 속 세상이 되어 있었다.
숙소로 사용하는 수도원 건물 뒤로 작은 성당 건물이 있는데 그 주변 풍경이 정말 좋았다. 밤새 비가 와서 땅은 젖어 있고 산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생각보다 실내 공기가 쌀쌀하지는 않았는데 어쩜 난방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피곤했는지 이내 다시 잠이 들었고 7시 알람에 눈을 떴으나 일어날 수가 없어 더 누워있다가 30분 후에야 간신히 일어났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이곳 아침식사 시간이 5시 45분부터 8시 30분까지라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갔다.
보통 때 같으면 거의 첫 순서로 내려갔을 텐데 오늘은 많이 늦었다.
식당이 맞나 싶어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인자해 보이는 아저씨가 인사하며 식당으로 안내해 주는데 순간 신부님인가 싶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봉사하는 수도자처럼 보였다.
식당으로 들어서니 한쪽 테이블에 까페, 라떼, 핫초코가 담긴 포트가 놓여있고 각 테이블 위에는 바게트 바구니, 버터, 잼 등과 커피잔이 세팅되어 있었다.
다 먹은 사람은 자기가 먹은 자리를 정리하고 복도에다 식기류를 갖다 두면 되는 듯 보였다. 몇 자리엔 이미 커피잔이 치워진 모습이다.
내심 기대했던 크로와상은 없었지만 커다란 바게트가 정말 맛있었다. 속살은 갓 나온 식빵 같이 쫀득했고 겉은 바삭하고 고소했다.
버터를 듬뿍 발라 네 조각이나 먹고 나니 어느새 빵 바구니가 비었다. 커피가 진해서 따뜻한 라떼를 넣어 마시니 딱 좋았다.
아쉬움이 없는 아침이었지만 커피가 부족했다. 두 번째 커피잔을 채울 때, 다가와서 커피가 부족하냐고 물어보던 아저씨한테 더 달라고 할 것을 그랬다.
8시가 되자 아시아계 스태프가 왔다. 커피 포트에 커피가 떨어졌다고 얘기하니 , 커피 한잔 분량만 딱 채워주었다. 사람들이 다시 몰려오던 시점이라 조금은 아쉬웠다.
간소하지만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와 장을 비웠다. 샤워하러 가니 여자 샤워실에는 화장실이 딸린 샤워실이 추가로 있었다.
샤워기가 고정식이 아니라 좋았지만 온수와 냉수를 따로 조절하게 되어 있어 불편했다. 뜨거운 물을 틀어도 찬물부터 나오기 때문에 물을 쓰다가 더운물이 나오기 시작하면 찬물을 따로 틀어야 했는데 하필 내가 들어간 마지막 샤워부스엔 찬물 수도꼭지가 돌아가지 않아 뜨거운 물만 계속 나와 피부를 데었다.
어쨌든 장을 비우고 샤워까지 마치니 오늘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배낭의 무게로 여기저기 쑤셨다. 온종일 방에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았지만 와이파이 사용과 장을 보기 위해 일단 나가야 했다.
하루 1€의 사용료를 내면 룸에서도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듯싶어 11시쯤 나섰고 오솔길을 지나 성지로 갔다.
Notre Dame de Lourdes는 18회에 걸쳐 나타났다고 보고된 성모를 가리키는 말이다.
루르드의 성모 발현은 1858년 2월 11일 목요일에 시작되었다. 당시 14살의 가난한 소작농 소녀였던 Bernadette Soubirous (1844.01.07~1879.04.16)의 보고에 따르면 여동생과 친구와 같이 땔나무를 모으던 중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마사비엘 동굴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정체불명의 부인을 만났다고 전해진다.
베르나데트 수비루는 사후 성녀로 시성 되었으며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당시 그녀가 성모 마리아를 본 것이라고 믿고 있다.
1862년 교황 비오 9세는 그 지역 주교에게 권한을 부여하여 루르드의 성모를 공경해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1858년 2월 11일, 베르나데트 수비루는 빵과 물물교환을 하려고 투아네트, 잔 아바디 등 또래의 다른 두 소녀와 함께 약간의 땔나무와 수프 재료로 쓰일 살이 조금 붙은 뼈 등을 채집하러 돌아다녔다.
마사비엘 동굴 근처에 있는 가브 강을 건넌 두 소녀를 따라 베르나데트도 강을 건너려고 신발을 벗었을 때 폭풍우 같은 바람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강변의 나무와 수풀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동굴에서 갑자기 빛이 뿜어져 나왔고 발끝까지 내려온 하얀 드레스에 하늘색 허리띠를 두르고 하얀 베일로 머리와 어깨를 덮었으며 팔에는 묵주를 두르고 발아래에는 노란 장미가 있는 모습의 한 여인이 나타났다.
베르나데트는 그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에 도취하여 자기도 모르게 묵주를 꺼내 기도를 바쳤다.
베르나데트가 묵주 기도를 끝마치자 여인은 베르나데트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한 다음 순식간에 사라졌다.
베르나데트는 이 일을 자기만이 아는 비밀로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귀가하던 도중에 비밀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여동생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으나 그 비밀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그녀의 부모에게 알려지고 말았다.
부모의 힐문을 받고서 그녀와 그녀의 누이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로 체벌을 받았다.
3일 후 베르나데트는 다른 두 명의 소녀와 같이 동굴을 다시 찾았는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베르나데트가 탈혼 상태에 빠진 것에 놀라 두 소녀가 몹시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녀들이 마을로 돌아왔을 때 베르나데트는 아직도 황홀경이 없어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2월 18일, 그녀는 부인에게서 “너는 앞으로 2주 동안 매일 이 동굴에 오너라.”라는 말을 들었다.
부인은 이어서 “나는 너에게 이 세상의 행복은 약속하지 못하지만 다음 세상의 행복은 약속 하마.”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경찰과 시 당국까지 포함한 지역 전체의 관심이 이곳에 집중되었다.
부모와 경찰은 베르나데트가 더는 마사비엘 동굴로 가지 못하도록 조치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계속 동굴을 찾았다.
2월 25일, 부인은 작은 흙탕물을 가리키며 베르나데트에게 가서 마신 다음에 씻으라고 지시했다.
베르나데트는 부인이 지시한 대로 손으로 땅을 깊이 파헤친 후 그 물을 마시고 목욕하였다. 그러자 깨끗한 샘물이 갑자기 엄청난 양으로 나왔다.
이 소식이 방방곡곡에 알려지면서 온갖 종류의 병을 앓는 환자들이 대거 몰려와 이 샘물을 마시거나 몸에 뿌렸다.
그 후 많은 기적 치료가 보고되었다. 그들 가운데 7명은 1860년 베르게 교수에 의해 어떠한 의학적 설명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샘물을 통해 기적적으로 치유된 것으로 인정받은 첫 번째 환자는 사고 후 오른손이 기형으로 변한 여성이었다.
군중의 수가 점점 많아지자 프랑스 정부는 루르드를 점차 불안한 눈초리로 지켜보기 시작했다.
결국 정부는 동굴을 울타리로 막고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한 다음 누구라도 이곳에 접근하는 자는 엄중하게 처벌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과정에서 루르드는 어느새 프랑스의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동굴은 나폴레옹 3세 황제의 개입으로 1858년 10월 4일에 다시 일반에 개장되었다. 이와 같은 논쟁에서 교회는 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로 하였다.
3월 25일, 밤중에 베르나데트는 어둠을 틈타 동굴에 겨우 도착하였다.
동굴 주위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가브 강가에 무릎을 꿇고 동굴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베르나데트는 부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세 번이나 되풀이하여 부인에게 이름을 물었으나 부인은 미소만 지을 뿐 대답이 없었다.
마침내 네 번째 물음에 그녀는 “나는 원죄 없는 잉태다.”라는 부인의 대답을 들었다.
4월 7일 부활절 날, 베르나데트를 관찰한 의사는 그녀가 탈혼 상태에 빠졌을 때 촛불에 손을 뻗었는데도 화상을 전혀 입지 않았다고 보고하였다.
7월 16일 베르나데트는 동굴에 마지막으로 찾아갔다. 부인의 미소를 보고 감탄한 그녀는 나중에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라고 회고했다.
지금까지 모든 과정 동안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던 교회는 1858년 11월 17일 루르드에 대한 조사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하였다.
1860년 1월 18일 지역 교구장은 “동정 마리아께서는 참으로 베르나데트 수비루에게 나타나셨다.”라고 발표하였다.
오늘날 루르드는 파띠마와 더불어 성모 공경의 근거지로서 매년 세계 각국에서 수만 명의 순례자가 성모와 관련된 순례지 가운데 한 곳으로 자주 찾아오는 장소가 되었다.
근래의 교황들 역시 루르드를 자주 방문하였다. 베네딕토 15세, 비오 11세, 요한 23세는 주교 시절에 루르드를 찾아왔으며 비오 12세는 교황 사절 때 루르드를 찾았으며 또한 루르드의 성모 발현 100주년을 기념해 회칙 《루르드의 성지 순례》(Le Pelerinage de Lourdes)를 발표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루르드를 세 번이나 방문하였다. 베네딕토 16세는 2008년 9월 15일 루르드의 성모 발현 150주년을 맞아 루르드를 찾아 미사를 거행하였다.
와이파이에 접속해서 어머니에게 온 톡을 확인하고 답을 보내고 까르푸를 찾아 나섰다.
멀지 않은 길이었는데 어느 순간 외진 길목에 다다르게 되어 다시 확인하니 이미 지나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골목 안쪽으로 크게 형성되어 있었는데 차를 피해 길을 건너다 놓친 모양이다.
가는 길에 있었던 까르푸 시티에서는 바게트가 0.70€였는데 까르푸 마켓은 0.30€다.
리옹에서 너무 맛있게 먹었던 까망베르 치즈와 오렌지 주스를 구입해서 돌아왔다.
까르푸 마켓에서 성지 입구까지 도보로 20분 거리다.
어딜 갔다 오든 루르드 성지 정문을 통과해서 들어와야 하다 보니 성지가 꼭 숙소 같았다.
어머니에게 다시 톡이 들어와 있었는데 임신 중인 며느리가 조산기가 있어서 입원했다고 걱정이시다. 차마 꿈 얘기는 할 수 없어 기도를 드렸다. 아기를 지켜주시길 그러나 혹시라도 건강하지 못하게 태어날 아이라면 차라리 거두어 주시길, 부모는 하지 못할 나쁜 기도를 대신드렸다. 이런 기도도 들어주실까?
이제야 짝을 찾아 재미나게 살고 있는 동생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서울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던 동생은, 뒤늦게 부모님의 상황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내적 고민도 많았을 텐데 거기다 자식 고민까지 하게 되면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동굴 성당을 찾았다. 침수하러 가는 길에 있던 초 봉헌대가 강 건너로 옮겨져 있고 대신 그 자리에는 식수대가 추가로 설치되어 있었다.
동굴 성당 바로 옆에 있는 샘이라 더 의미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입구 쪽 식수대를 이용하고 있었다.
2년 전에는 강 건너의 병원 건물과 수도원 건물이 왠지 사유지처럼 느껴져 다리를 건너가지 않았는데 강 건너편으로 초 봉헌대가 옮겨져서 숙소에서 오는 오솔길에서도 내려다 보였던 거다.
로사리오 성당으로 가서 100주년 기념 메달을 구입했는데 상처투성이 주화가 내게로 왔다. 우울해졌지만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날씨는 여전히 흐리고 배는 아프고 점심도 먹어야 해서 14시쯤 돌아왔다.
숙소 앞에 다다르니 누군가 다가와선 들어가도 되냐고 묻는다. 호텔이라고 하니 놀란다. 성당이나 수도원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스태프에게 뜨거운 물을 얻어 커피를 마시고 까망베르 치즈를 곁들여 바게트를 먹었는데 아침에 그렇게도 먹었던 바게트였지만 여전히 맛있었다.
예전 포르투갈에선 고다 치즈에 빠졌는데 이번 프랑스에선 까망베르 치즈에 빠지게 되었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아 17시쯤 다시 성지로 갔는데 그제야 지하에 있는 성 비오 10세 성당이 생각났고 성체 강복도 생각이 났다.
로사리오 성당에서 기도 후 내려가서 성체 강복을 받았다.
18시 즈음에 로사리오 성당에서 미사가 있었던 기억이 났지만 다리를 건너 뽀 강변 따라 산책을 하고 사진을 찍다가 6시 30분 직전에 들어갔는데 이제 미사가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오늘은 정말 미사 참여가 절실했지만 나의 행동은 달랐다. 서둘러 동전을 꺼내 앞자리로 가서 앉았다. 성가를 선창 하는 잘생긴 아저씨도 그대로다. 큰 성체 조각을 받고 나니 더 죄송했다. 난 왜 이럴까? 루르드에 있으면 눈물이 났다.
40분간의 미사가 끝나자 로사리오 성당은 문이 닫혔다. 로사리오 성당 정문에 그려진 벽화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저녁이 되니 따뜻해져 기분이 좋았다. 20시에도 햇살은 따뜻했고 세상은 환해서 그냥 돌아오기 아쉬워 십자가의 길을 하러 갔다.
그런데 스마트 폰에 저장해 두었던 문서가 보이지 않았다. 작성해 두었던 여러 기도문도 사라지고 없었다. 왜 사라진 걸까, 아니 애초에 저장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아니 왜 확인을 하지 않고 왔던 걸까? 이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데.
저번 까미노 때는 묵주기도를 텍스트로 저장해서 읽기 기능을 이용해 이어폰으로 들으며 걸었다. 힘든 순간 묵주기도를 하게 되지만 길도 봐야 하고 주변도 살펴야 할 때 듣는 것만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숙소 뒤편 성당으로 갔는데 유리관으로 이어진 통로가 숙소 건물과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와서 확인하니 출입금지 표시가 되어있을 뿐이다.
룸으로 들어와 씻고 치즈와 바게트를 먹었는데 치즈는 벌써 1/3을 먹어버렸다. 실온에 두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리옹에서 챙겨 온 웨지 포테이토는 이미 상태가 불안해 보였다. 식당에 전자레인지가 있는 걸 알았으면 아침에라도 한번 돌려놓을 것을, 욕심의 최후다.
뒤늦게 빨래를 했으나 21시가 넘자 해는 금방 저물어 버렸고 해가 사라지자 갑자기 추워져 창문을 닫아야 했다.
루르드의 시간은 한국보다 마치 3시간씩 늦은 것 같았다. 한국에서 가장 더운 15시가 여기서는 18시인 거다.
매번 아침에 샴푸를 하고 나서다가 2년 전 까미노를 통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오후에 머리를 감는 게 낫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샴푸하고 빨래하고 나서 오후 외출을 하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야 빨래도 마르고 머리카락도 말릴 수 있었다.
22시가 되자 추워졌다.
●Sanctuaires de Lourdes
●Grotte de Notre Dame de Lourdes
●Basilique Notre Dame du Rosaire de Lourdes
●Basilique Saint Pie X
Carrefour Market Lourdes 2.15€
Camenbert 250g -1.00€
Baguette 250g -0.30€
BRK Jus Orange CRF -0.85€
Basilique Notre Dame du Rosaire de Lourdes -2.00€
Lourdes Misa -0.20€
Maison Saint Pierre et Saint Paul +B -1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