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abaldika→Pamplona
Day 40.
Saturday, June 3
22시에 소등을 하고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심한 코골이는 없었는지 아침까지 숙면했다.
일어나 준비하는 사람들 인기척에 6시쯤 잠깐 깼다. 여전히 피곤해서 다시 누웠고 7시 반, 오스삐딸레라가 올라와서 확인하는 것 같아 나도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비가 오고 있으니 하루 더 머물고 싶었다.
준비하고 짐을 챙겨 내려가서 아침을 먹었다. 커피와 함께 크림치즈 바른 바게트를 몇 개나 먹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만찬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는지 여기서 먹은 음식은 모두 맛있었다.
어떤 차별도 받지 않고 편히 지낼 수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말로 다하지 못했던 글을 방명록에 남기고 10€를 기부했다. 받은 것에 비해 너무 적은 금액이라 미안한 마음이 앞섰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그분도 아실 거라 믿었다.
차례로 작별 인사를 하는데 또 울컥했다.
솔직히 떠나기 싫었다. 비가 오면 하루는 멈추겠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친절한 곳이라 더 머무르는 것이 오히려 민폐일 것 같아 그럴 수 없었다.
아침부터 울어대는 순례자가 당황스러울 수도 있었을 텐데 한참 동안 토닥여주며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정말 미안했고 고마웠다.
배웅을 받으며 떠나왔고 빗속을 홀로 걸었다. 사발디까에선 도로를 따라 까미노가 이어졌지만 알베르게에서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아르레따를 향한 오솔길을 걷게 되었다.
도로로 내려가는 길이 있겠거니 했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도로와 멀어지는 게 보였다.
비가 와서 진창길이 되었고 등산화에 진흙이 달라붙어서 묵직해졌다.
N-135 도로를 건너면 검정 버드나무 사이로 흐르는 아르가 강을 끼고 레스토랑을 만나게 된다. 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주택들이 있는 좁은 길을 따라 나바라의 주택가와 산따 마리아 소성당이 있는 Arleta를 향해서 언덕길을 지나가다 보면 오래되어 허물어진 곳들이 보인다.
아레 초입에 이르러서야 도로를 만났지만 빰쁘로나를 가기 위해서는 까미노 루트를 따라가야 했다.
도로 옆으로 난 오르막을 오르니 왼쪽으로 우아르떼로 가는 길이 있고 오른쪽 도로 건너편으로 아레가 보인다.
N-121 도로와 이어지는 좁은 길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소나무 숲까지 올라가며, 내리막을 내려오면 까미노의 마을 뜨리니닷 데 아레로 들어가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다리에 도착하게 된다.
직진하면 뿌엔떼 데 라 뜨리니닷을 건너 뜨리니닷 데 아레로 들어가게 된다.
나지막한 아치 여섯 개로 이뤄진 Trinidad de Arre (442M)는 13세기 울사마 강 위에 건축되었다. 로마 시대에 처음 건축되었으나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재건축을 거치면서 중세의 분위기를 간직하게 되었다.
다리 끝에는 2년 전 그렇게 머물고 싶었던 뜨리니닷 데 아레 알베르게가 있고 El Convento de Hermanos Maristas, 삼위일체 수도원의 성당이 있다.
13세기 초반의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실내가 잘 보존돼 있으며 버팀벽이 있는 후진, 장식 없는 추녀 받침 등이 있다.
12, 13세기에 지어진 성당은 수도원 겸 병원의 역할을 했는데 17세기에는 순례 중에 병이 든 순례자들을 치료해 주고 말을 태워 론세스바예스로 돌려보내곤 했다고 한다.
10시쯤 뜨리니닷 데 아레 성당 입구에서 세요를 받았다. 신발이 엉망이라 바로 성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10분 넘게 서성였다. 신발이 정리되고 간신히 들어가서 기도하고 나왔다.
20분쯤 다시 출발했다. 빰쁘로나까지 4.8km 남았단다.
예전엔 땡볕에 힘들게 지나갔던 길이라 식수대가 반가웠지만 오늘은 비가 오는 날씨라 식수대도 그냥 지나쳤다.
이제부터는 대도시의 풍경이다. 도시에 들어서면 각종 편의시설이 있고 대형 마트가 있어서 좋지만 배낭을 메고 현지인들 속에서 걸을 때는 민망하기도 했다.
부엔 까미노를 외치며 격려해 주는 시민도 있지만 가끔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눈으로 험한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울사마 강 위에 세워진 6개의 아치가 있는 중세의 다리를 넘으면 마리스따스 수도원과 순례자를 위한 오래된 병원이 나오며 구역상으로는 바야바에 다다르게 된다. 이 병원은 11세기와 12세기에 있었다고 한다.
Burlada/Burlata (433M)는, 나바라의 주도 빰쁘로나에 바로 인접해 있는 부를라다에는 오래전부터 이 마을을 지켜오는 토박이의 비율이 높은 전통적인 마을이다.
까미노 데 산띠아고로 인해 상업적인 발전이 있었고, 이 때문에 순례자를 돕는 두 종교 단체인 산 살바도르 협회(La Cofradía de San Salvador)와 세례자 요한 협회(La Cofradía de San Juan Bautista)가 이곳에서 설립되었다.
1276년부터 부를라다의 포도밭과 방앗간은 빰쁠로나 대성당의 소유였다. 그 후 14세기 후반 까를로스 왕이 왕가의 여름 휴양지로 이곳을 선택하면서 현재의 부를라다가 세워졌다. 부를라다에는 다양한 카니발 축제가 있으며 마을을 지나다 보면 민속춤을 추는 예술가들과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비야바와 부르라다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으나 부르라다의 마요르가를 통해서 마을을 통과하여 성당 건물까지 진행하면 노란색 화살표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첫 번째는 자동차 정비소 옆으로 나있는 오래된 까미노로 가기 위해 Calle de Larraínzar를 따라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는 길이다.
두 번째는 마지막 신호등에서 계속 직진해서 우란가 공원의 담을 끼고 왼쪽 보도를 따라 아르가 강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 진행한 후 터널을 통과하면 부르라다의 오래된 길로 진행하는 길이다.
아르가 강 위의 세워진 중세식 석조 다리인 Puente de Burlada는 모두 모양이 다른 아치 여섯 개로 이뤄져 있는데 어떤 것은 첨두아치이고 나머지는 반원 아치다.
바로크 시대에 새롭게 수리하긴 했으나 본래의 강인한 중세 교각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교각의 모양은 삼각형, 반원형 등이다.
Palacete de Burlada를 지나 역사적인 건물이 많은 빰쁘로나에 들어섰다.
Pamplona/Iruña (460M)는, 2000년 역사를 지닌 궁전, 성당과 같은 건축물과 갖가지 전설과 오래된 전통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와 동시에 현대의 편리성과 이름다움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산업도시다.
중세에 이베리아 반도를 가로지르는 로마 제국의 침략루트들이 만나는 전략적인 도시이면서, 이베리아 반도와 갈리아를 잇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바라 왕국의 수도는 스페인을 프랑스로부터 지키기 위한 첫 번째 방어 거점이기도 했는데, 19세기 까를리스따(Carlistas) 전쟁의 배경이 현재 나바라의 수도인 빰쁠로나였다.
빰쁠로나는 원래 나바라의 원주민이 살고 있던 곳이었다. 이곳에 11세기부터 프랑스인과 유태인이 이주해 오면서부터 문화와 예술, 다양한 전통을 받아들이는 역사적인 도시가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이 빰쁠로나에 남아있는 인상적인 건축물과 예술의 기반을 만들었다. 지금은 현대적인 도시가 된 빰쁠로나에는 엘 발루아르떼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는 가야레 연극제(Teatro Gayarre)처럼 일 년 내내 중요한 문화 행사가 많이 열린다.
아르가 강 위의 고딕 양식 Puente de la Magdalena 입구에서 사발디까 알베르게에서 함께 묵었던 미국인을 만났는데 그녀는 수레를 끌고 까미노를 걷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이번에는 우측으로 향했다. 조금만 더 가면 공립 알베르게가 있었는데 2년 전엔 조급함에 눈이 멀어 반대로 걸었고, 한참을 헤매고 다니느라 더 힘들었던 곳이었다.
La Vuelta del Castillo 공원을 지나니 거대한 성벽이 보였다.
16세기의 적들로부터 빰쁘로나를 지켜주었던 방어막인 Murallas는 펠리페 2세가 건설했다. 오각형 형태의 튀어나온 수비 거점이 있는 이 성벽은 스페인에 남아있는 방어용 성벽 중에서 역사적인 유적이다.
이 성벽이 함락된 것은 역사상 단 한차례뿐이었는데 1808년 2월 18일, 눈이 쌓이자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꾀를 내어 눈싸움을 하는 척했고 이 모습이 너무나 평화로유 보여서 성벽을 방어하던 스페인 병사들이 이 놀이에 끼기 위해 성문을 열었다. 프랑스 군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눈 속에 숨겨놓았던 무기를 꺼내 스페인 군의 항복을 받아 무혈로 성벽을 함락했다고 한다.
두 가지 화살표 모두 빰쁘로나의 문인 Portal de Zumalacárregui까지 이어지며 고딕 양식의 중세 다리인 막달레나 다리를 지나면 가까이에 웅장하게 서있는 거대한 성채를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멀리 빰쁘로나 대성당의 모습이 보인다. 프랑스 문이라고도 불리는 수말라까레기 문을 지나 성채를 오르게 되면 빰쁘로나로 들어간다.
성벽 따라 이어진 푸른 잔디밭 옆을 따라가니 Portal de Zumalacárregui가 보였다.
예전엔 엘리베이터를 타고 구도심으로 들어갔었기에 처음으로 지나는 문이었다.
프랑스 문이라고도 부르는 이 문은 1553년 까를로스 5세가 다스리던 시절 부왕이었던 알부르께르께 공이 건설했다.
Puerta de Zumalacárregui 라고 불리는 이유는 돈 까를로스를 지지하던 군인 Tomás Zumalacárregui가 까를리스따 전쟁 발발 이후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어두운 밤 홀로 이 다리를 건너 빰쁘로나를 떠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치 위엔 황제의 문장 즉 머리가 두 개 달린 독수리가 있는데 18세기에 개폐식 다리의 바깥쪽 문을 추가했으며 부벽과 평형추 등이 아직 남아 있다.
수말라까레기 문을 통과하니 바로 구시가지가 나왔다. 이렇게 가까이 두고도 그때는 그렇게 멀리 돌아왔던 거였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성벽 위에서 전망을 바라보며 잠시 쉬다가 성당 쪽으로 가다 보니 예전에 묵었던 15€짜리 사립 알베르게가 보였고 조금 더 가니 골목 사이로 대성당이 보였다.
La Catedral de Santa María 라고도 불리는 Catedral Pamplona는 구시가지인 Casco Viejo에 있다.
1397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1530년에 세워진 고딕 양식 성당인 이 건축물은 오래된 로마네스크식 성당 위에 지어졌는데 정면은 신고전주의 양식이고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회랑이 아름답다.
18세기 후반에 대성당 정문이 원래의 프랑스식 고딕 양식보다 수수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교체되었다.
성당의 평면은 라틴십자가의 형태이고 내부에는 로마네스크식 성모상이 있으며 Carlos III와 왕비 레오노르의 환상적인 고딕 양식 무덤이 있다.
대성당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회랑으로 미술 전문가들에 따르면 빰쁠로나 대성당의 회랑은 유럽의 고딕 양식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곳이라고 한다.
성당에서부터 회랑으로 가는 입구는 Puerta del Amparo 라고 하며 Tímpano엔 역동적이고 표현주의적으로 표현된 La ‘Dormición’ de la Virgen이 있다.
띰빠노에는 성모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조각되어 있다. Puerta Preciosa 라고 부르는 회랑의 다른 문은 오래된 기숙사로 향하는 문이며 정원의 복도가 있는 공간을 나누는 아케이드가 고딕 양식의 우아함과 수직성이 잘 나타난다.
여러 개의 작은 아치들이 모여 커다란 아치를 이루고 뾰족한 박공은 회랑의 난간을 지나간다.
회랑 옆엔 La capilla Barbazana가 있는데 이곳에는 Obispo Arnaldo de Barbazán의 무덤이 있는 곳이며 별 무늬가 그려진 궁륭으로 덮여 있다.
대성당에는 거대한 굴뚝이 있는 고딕 양식의 중세식 부엌과 거대한 화덕이 눈에 띈다.
또한 산초 7세가 라스 나바스 데 똘로사 전투의 전리품으로 가져온 사슬을 보관하고 있다.
Iglesia de San Cernin 으로도 불리는 Iglesia Parroquial de San Saturnino는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결합된 견고한 성당으로 나바라의 수호성인인 La Virgen del Camino를 모시고 있다.
원래 있던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 위에 13세기에 현재의 성당이 건축되었다.
고딕 양식의 작은 회랑이 있었지만 18세기에 까미노의 성모 소성당으로 바뀌었다.
산 사뚜르니노 교구 성당의 현관 앞에는 빰쁠로나의 초기 기독교 주교가 세례를 받았다는 세례반이 있다.
Iglesia de San Lorenzo는 13세기에 건설되었으나 중세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696년에서 1717년까지 나바라 인들의 도움으로 재건축되었으며 바로크 양식의 건물엔 그리스식 십자가가 새겨졌고 건물의 내부는 하나의 신랑으로 터져 있다.
성당의 옆으로 푸른색 타일로 장식이 된 Capilla de San Fermín이 눈에 띄는데 여기에 페르민 성인의 유해를 보관하고 있다.
사라사떼 산책로 양 옆엔 나바라 왕국 왕들의 조각상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맞은편엔 법률가들의 기념물인 Paseo de Sarasate가 있다.
이 기념물은 1903년에 중앙 정부로부터 나바라를 지키기 위한 나바라 주민들의 운동이었던 La Gamazada 운동 기간에 나바라 인들의 지지로 세워졌다.
기념물은 정의, 역사, 자치주, 평화, 노동의 알레고리가 조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 기념물 뒤엔 의사당과 나바라 주 정부 청사가 있다.
17세기 후반의 건축물인 Ayuntamiento는 1755년에 시작하여 1760년에 완성된 바로크식 Fachada가 있다.
매년 7월 6일 시청의 발코니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 페르민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시청 내부에 있는 문틀 위의 상인방은 바로크 양식인데 이 문은 모든 이를 위해 열려 있으며 마음은 더 많이 열려 있다는 나바라의 까를로스 3세 문구가 새겨져 있다.
11시 55분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는데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12시에 오픈한단다.
차례로 배정받다 보니 25분 정도 걸려 체크인을 했는데 1F B15, 역시 침대 2층이었다. 나이 든 사람에겐 침대 1층을 젊은 사람에게는 침대 2층을 준다고 했지만 솔직히 젊은 서양인이 아래 침대에 있는 경우를 더 많이 봐왔다. 건강 상의 이유가 아니라면 난 2층이 더 좋았으니 상관없었다.
수비리에서 보았던 동양인이 보였다. 아직도 왜 여기에 있나 싶었더니 어린 아들을 데리고 걷고 있단다. 서양인이 일행과 함께 하려고 나와 순서를 바꾸어서 동양인이 내 바로 앞에 서 있었는데 나와는 떨어진 침대에 배정받았으니 여기도 순서대로 배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배낭을 내리고 주방을 찾으니 투!라고 해서 위층으로 올라갔는데 보이지 않아 다시 물어보니 아직 청소 중이란다.
그러고 나니 2의 의미가 2층이 아니라 2시 오픈이라는 말이었나 보다. 먼저 씻었다.
날씨가 개는 것도 같고 바깥에 빨랫줄이 보였지만 빨래를 널기엔 뭔가 어색한 곳이라 패스했다.
어느덧 13시 반,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 보니 3층으로 이어진 통로가 열려 있었다. 주방은 3층에 있었는데 이미 사람들이 주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냉장고는 없었고 파스타 면과 기름, 식초 그리고 또르띠아가 전부라 다시 내려가서 식량 가방을 갖고 왔다.
또르띠아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다 새까맣게 태워버려 대부분 버려야 했다. 샐러드 소스를 뿌린 파스타를 만들었는데 맛이 없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서 배고프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파스타를 꾸역꾸역 먹고 냄비에 물을 끓여서 통에 담아 믹스커피를 마셨다.
이따 마실 커피를 미리 끓여두려고 다시 물을 끓이고 앉아있으니 그제야 전자레인지 아래쪽에 있는 미니 냉장고가 눈에 보였다.
마늘, 치즈, 달걀, 햄 등 원하는 게 다 들어 있었지만 이미 늦었다.
혼자서 새우구이와 와인 등 진수성찬을 즐기고 있는 서양인이 있었는데 부러웠다. 까미노에서 친구가 필요할 때가 이런 경우였다.
1인용 식재료를 사기엔 애매할 때, 친구가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만찬이지만 의지가 없는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초반엔 힘이 들어 무얼 만들어 먹을 여력이 없지만 짧게 걷다 보니 벌써 아쉬워졌다.
믹스커피를 타고 남은 물에 달걀 4개를 삶았다. 마늘과 오일이 있으니 제대로 된 파스타를 만들 수 있었는데 정말 아쉬웠다.
도구가 보이지 않아 가지고 있던 플라스틱 포크를 썼다. 서랍에서 포크를 꺼내는 새우남을 따라 서랍을 열어보니 도구가 다 들어있었다. 새우남은 정말 오래도록 즐기며 먹고 있었다.
나가는 것도 귀찮은데 오늘 일정은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바게트가 있으면 좋겠는데 오늘은 사러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침대에선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아 조금 실망이다.
19시 주방이 붐빌 거라 생각했는데 모두 나가서 먹는지 한 팀밖에 없었다.
계속 갖고 다니던 마카로니에다 마늘, 바질 페스토와 파마산 치즈, 파스타 치즈를 넣고 파스타를 만들었다. 훈제오리 슬라이스, 치즈 슬라이스를 토핑 했다.
런치박스를 만들어두고 나머지는 저녁으로 먹었다. 망고주스를 마시고 커피를 끓였다. 배도 부르고 내일 먹거리도 준비되었다.
양치질하는데 이가 다시 시큰거리기 시작해서 걱정이 되었다.
내일 뿌엔떼 라 레이나까지 가볼까 하고 잠깐 고민했지만 현실은 우떼르가조차도 벅찬 상황이다.
2년 전에도 15시 넘어 우떼르가에 간신히 도착했었다. 그러나 도로를 따라간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여기서 NA-1110 도로를 찾아가면 되는데 24km에 한번 도전해 볼까 싶었다.
뿌엔떼 라 레이나 공립 알베르게는 100석 규모이니 늦어도 침대가 없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일요일이긴 하지만 당분간 장은 안 보기로 했으니 문제없었다. 가도 될까?
Zabaldika→Pamplona 8.2km
○Zabaldika/Zabaldica (470M)
●Picnic Area(Near Zabaldika) (470M) 0.7km
■Huarte/Uharte (457M) 2.5km
●Arleta (467M) 0.6km
●Arre/Trinidad de Arre (442M) 2.3km
-Puente de la Trinidad
-El Convento de Hermanos Maristas
●Villava/Atarrabia (435M) 0.5km
●Burlada/Burlata (433M) 1.2km
-Puente de Burlada
-Iglesia de San Juan Bautista
-Palacete de Burlada
●Pamplona/Iruña (460M) 2.9km
-Murallas
-Iglesia Parroquial de San Saturnino
-Puente de la Magdalena
-Portal de Zumalacárregui
-Basílica de San Ignacio
-Iglesia de San Lorenzo
-Ayuntamiento
-Paseo de Sarasate
-Catedral Pamplona/Catedral de Santa María
-Encierros
-San Fermines Festival
707.6km/775.0km
Albergue de Jesus y María -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