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ón→Villadangos del Páramo
Day 61.
Saturday, June 24
7시 가까스로 눈을 떴고 부랴 식당으로 올라갔다. 예전에는 먹지 않고 출발했으나 오늘은 어떻게 될지 몰라 일단 든든히 먹어두기로 했다.
첫 번째 오스삐딸레라가 커피를 챙겨주는데 커피가 너무 싱거웠지만 그래도 따뜻한 커피 한잔에 정신이 들었다. 데사유노는 거의 막바지라 남은 빵이라도 맘껏 먹고 싶었으나 왠지 눈치가 보여 일어났다.
그때 오스삐딸레라가 말을 걸었다. 옆에 있던 타이완인에게 통역까지 부탁해서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통역을 거치니 "뭘 도와줄까?"였다. 오늘도 걸을지 아니면 하루를 여기에서 쉴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의 무릎 상태를 알고 있으니 부탁을 하면 하루 더 머무를 수는 있겠다 싶었지만 이곳의 규정이 어떤지 모르니 처분에 맡길 요량이었다. 무조건 오늘 하루 더 쉬어야 한다는 걸로 보아 오늘은 여기서 머물러도 되겠다 싶었다.
얼음찜질을 계속하기 위해 수시로 교체하려고 꼬마 생수병 세 개를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녹은 생수병을 교체하려고 보니 내 생수병을 누가 들고 가버려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칩을 들고 침대로 돌아왔는데 Agnès가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따라나가서 삼총사와 함께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고 배웅하고 들어왔다. 부엔 까미노!
어느덧 8시, 떠나든 떠나지 않든 어쨌든 침대를 비워줘야 하는 시간이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렌즈까지 착용하고 여차하면 비켜 줄 준비를 마친 후, 남은 시간 동안 얼음찜질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오스삐딸레라가 와서, 8시엔 알베르게를 나가야 된다고 주의를 준다. 무릎을 다쳐서 오늘 하루 여기서 머무르기로 했다니까, "네가 아무리 다쳤어도 무조건 나가야 한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강한 어조의 말투에 뭔가 섭섭함이 몰려왔다. 쉬는 것도 마음 편하지 않은 상황인데 오늘 일하는 오스삐딸레라의 규정이 그러하다니 그냥 떠나기로 했다.
그 사이 얘기를 전해 들었는지 다시 돌아와선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나갔다가 11시엔 다시 들어와도 된다"라고 선심 쓰듯이 말했다.
이 상태로 관광을 할 것도 아닌데, 그동안 어딜 가 있으라고? 그럴 바엔 차라리 걷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배낭을 들어 올리자 마당까지 들어주겠다고 한다. "노 땡큐!" 거절했다.
내가 직접 메고 올라와서 벤치에 배낭을 잠시 내려놓고 마지막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내 알베르게를 나서는데 왠지 쫓겨나는 기분이 들어 처량했다.
오늘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배낭을 메고 스틱을 짚으며 힘겹게 정문 나서는 모습을 어느 순례자가 보곤 알렸나 보다. 아이스 바스켓을 챙겨주었던 오스삐딸레라가 쫓아 나와서는, 배낭은 놔두고 가도 된다고 말한다.
그냥 걷겠다고 조용히 뿌리치니, 이 상태로 걸으면 큰일 난다고 말리는데, 그 말이 오히려 더 서운했다.
'방금 전엔 아파도 나가라고 하지 않았냐? 그래서 나는 가는 거다!' 그렇게 삐딱하게 말하고 나니 설움이 폭발해서 울컥했다. 그녀는 당황스럽다는 듯이 그냥 쳐다보고 있었다.
건들기만 해도 무너질 듯 아슬한 내 감정을, 나조차도 감당하지 못하고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다. 위하는 척하는 모습이 더 싫었다.
물론 그녀들의 잘못이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었고 그녀들이 최선을 다해 챙겨주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엔 그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도 레온 대성당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거의 통곡을 하면서 다리를 질질 끌고는 그렇게 레온을 떠나왔다.
레온은 나와는 인연이 아닌 도시인 것 같았다. 첫 번째 까미노 때는 동네 불량배들에게 둘러싸여 조롱을 당했었고 두 번째엔 이렇게 서러움에 울면서 떠나왔다.
레온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찬란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단지를 이루는 산 마르꼬스 단지를 지나야 하는데 공립 알베르게에서 나와 대성당과 레알 바실리까 산 이시도르를 지나면 어렵지 않게 산 마르꼬스에 도착할 수 있다.
유유히 흐르는 베르네스가 강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면 복잡한 시가지가 교통 체증과 함께 끄루세로 지구까지 이어진다.
이어지는 까미노는 기찻길과 나란히 지나가며 십자가 광장에 다다르면 기찻길이 멀어진다. 이 광장을 지나가면 레온의 위성도시인 뜨로바호 델 까미노다.
레온의 베드타운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는 뜨로바호 델 까미노는 항상 교통량이 많다. N-120 도로를 건너면 오래된 포도주 저장고와 함께 불규칙적인 주택들과 공장지대가 어지럽게 보인다. 이 부근에서는 노란색 화살표를 잃어버리기 쉽다. 창고 사이로 지나가는 길을 찬찬히 살펴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한다.
포도주 저장고를 지나면 십자가상이 보이고 여기에서 N-120 도로를 왼쪽으로 두고 나란히 걸으면 되는데 주유소를 지나면 성모가 발현하였다는 라 비르헨 델 까미노에 도착한다.
출발할 때까지도 라 비르헨 델 까미노까지는 걸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최단거리로 가려면 도로 중앙 분리대를 뛰어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라 차도 따라 그대로 마냥 걸었더니 이미 12시 반이 되었다. 네 시간 동안 고작 4km 걸어온 셈이다.
오늘은 가끔 구름이 지나가며 햇빛을 가려주었다. 그러나 스스로가 만든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커서 통곡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지나가는 차 안에서 어떤 이는 가운데 손가락을 창밖으로 내보이며 지나갔다. 스페인에서도 순례자를 향한 시선은 제각각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싶었다. 그런 인간들까지 한몫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걸어야 했다. 멈춘다고 해서 아무것도 달라질 것이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꾸준히, 쉬지 않고 걸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비르헨 델 까미노에 들어오면 N-120 도로 왼쪽에 있는 라빠스 거리에는 샘터와 공동묘지가 있다.
라 비르헨 델 까미노에 도착하면 두 개의 까미노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한다. 왼쪽으로 가는 비야르 데 마사리페 루트는 레온에서부터 약 22킬로미터에 이르는 루트다. 이 루트를 선택한 순례자는 다음 일정에서는 아스또르가까지 약 29킬로미터를 걸어야 합니다.
산 마르띤 델 까미노 루트는 N-120 도로와 평행하게 만들어진 보행자 길이다.
산 마르띤 델 까미노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전용도로와 나란히 걷기 때문에 자동차의 소음이 심할 것이라고 이 길을 외면하기도 하지만 레온과 아스또르가를 이어주는 AP-71가 완성되어 이 도로에는 교통량이 많지 않다.
N-120 도로와 나란히 걷다가 왼쪽으로 전진하여 A-66 도로의 밑을 지나는 터널을 지나면 커다란 안테나가 있는 곳까지 평범한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데 왼쪽으로 프레스노 델 까미노로 이어지는 좁은 샛길이 보인다.
까미노는 다시 N-120 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며 물푸레나무가 이름다운 발베르데 데 라 비르헨에 도착한다.
10세기부터 존재했다고 전해지는 인구 200명의 이 작은 마을의 끝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까미노를 따라가면 산 미겔 델 까미노에 도착한다.
마을을 나와서 걷다 보면 왼쪽으로 아름다운 분수대를 가지고 있는 호텔을 지나게 된다. 이곳에서 알폰소 1세와 그의 아내 도냐 우라까가 전쟁을 벌였다고 알려져 있는 비야당고스 델 빠라모까지는 2개의 주유소 이외에 아무것도 없이 지루한 길이 이어진다.
스틱을 짚고도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아 왼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나름 최선을 다해 걷고 있었지만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갓길로 차를 대는 게 보였고, 스페인어로 뭐라 그런다. 또다시 불안감이 몰려와서 잔뜩 긴장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 모습을 지켜본 모양인지 이 상태로는 걷기 힘들다며 어느 알베르게까지 가냐고 물었다.
비야당고스 델 빠라모를 얘기하고 싶었지만 가까운 알베르게 위치가 찍힌 구글 내비를 보여주니 주소가 필요하단다.
알베르게 리스트의 주소를 보여주었는데 오늘 잘 곳이냐고 다시 물었다. 그래서 비야당고스 델 빠라모 알베르게를 가리키니 알겠다며 태워다 주겠단다.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이 여기까지였나 보다. 모르는 이의 차를 얻어 타게 되면 도착할 때까지도 마음을 놓지 못하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은 이런 도움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스페니시 마리샤는 비야당고스 델 빠라모 알베르게까지 데려다주었고 이렇게 그녀의 도움으로 13시쯤 공립 알베르게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러나 체크인하기까지 또다시 실랑이가 이어졌다. 숙박비 5€ 외에 부직포 커버 비용 2€를 의무적으로 내야 한단다.
그래서 레온에서 받은 새 커버를 보여주니 여기서 구입해야 된다며 안된다고 했다. 그렇게 신경전을 벌였지만 이내 포기하곤 체크인을 해주었다.
스틱은 안으로 갖고 가면 안 되지만 내 다리를 보더니 허락해 주었다. 입구 쪽 아래 침대를 쓰라니 쓸 수밖에, 당분간은 1층 침대를 써야겠다. 이 상태로 위층을 쓰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대기자가 있어 순서를 기다려 씻고 나왔는데 스틱 없이 서있는 게 너무 힘들어졌다.
뒤뜰에 빨래까지 널고 들어왔지만 일상적인 일 또한 오늘은 너무나 버거웠다.
생수병을 냉장고에 넣으려니 미니 냉장고라 이미 가득 차 있었는데 아침에 사라져 버린 내 생수병이 여기 냉동실에 들어 있었다.
누구인지 따질 기력도 없어 가지고 있던 생수병 두 개를 넣어두고 반쯤 얼어있는 생수병을 가져와서 얼음찜질을 했다. 나에게 왜 가져갔냐고 따지는 사람이 범인인 거다.
이 꼬마 생수병을 까스뜨로헤리스부터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었던 걸까?
맥주, 아보카도, 비스킷으로 배를 채웠다.
엘 부르고 라네로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던 그 중국인 아주머니가 여기 있는 걸로 보아 그날 바로 버스 타고 레온으로 점프해 가서 이틀을 쉬다 왔나 보다.
창을 열어두니 악취가 나서 닫아버렸다.
열기는 여전하지만 바람이 제법 불었고 열려있던 다른 창으로 각종 거름 냄새가 들어왔다.
누가 쾌적한 환경이라고 했던가?
미니 냉장고에도 냉동실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꽁꽁 언 걸로 보아 며칠은 된 듯싶은 아이스바를 꺼내 먹었다.
저녁이 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여서 저녁을 만들어 먹는 것 같은데 먹을 기력도 없고 먹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계속 누워만 있었다.
어제 레온에서 빵을 나누어 주었던 아주머니가 와서 같이 먹자고 제의하길래, 오늘은 "노, 땡큐" 하자 정색을 하며 돌아서신다.
조금 후 중국인 팀의 또 다른 아주머니가 와서 뭐 좀 먹었냐며 빵이라도 먹으라고 권해서 "노, 땡큐" 하자 역시나 정색을 하며 돌아선다.
이제 소문이 다 났나 보다. 무릎을 다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동양인이 안쓰러운 모양이다. 이 상황이 창피했고 부담스러웠다. 얼른 떠나고 싶었다.
아침에 와이파이 상태가 어떻게 될지 몰라 내일 걸을 경로를 미리 설정해 두었다.
마지막으로 얼음찜질을 하며 자리에 누우니 21시 반이다.
참 서글프고, 유난히 환한 밤이었다.
León→Villadangos del Páramo 21.3km
○León(844M)
●Trobajo del Camino (840M) 3.9km
-Ermita del Apostol Santiago
-Iglesia Parroquial de San Juan Bautista
●La Virgen del Camino (906M) 3.7km
-Santuario de la Virgen del Camino
■Fresno del Camino (877M) 2.5km
■Oncina de la Valdoncina (871M) 0.5km
■Chozas de Abajo (882M) 6.0km
■Villar de Mazarife (874M) 4.1km
■Villavante (839M) 7.8km
●Valverde de la Virgen (892M) 4.6km
-Iglesia Parroquial de Santa Engracia
●San Miguel del Camino (897M) 1.4km
-Iglesia Parroquial del Arcangel San Miguel
●Villadangos del Páramo (895M) 7.7km
-Iglesia Parroquial de Santiago
289.0km/775.0km
Albergue de Peregrinos Villadangos -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