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torga, Spain
Day 64.
Tuesday, June 27
2시 반 추워서 깼는데 마르지 않은 침낭은 여전히 베란다에 널려있어서 수건을 꺼내 팔에 두르고 누웠다. 오늘은 상처받지 않고 잘 머무를 수 있을까 걱정하며.
5시 반 인기척에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오고 다시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는다. 배낭과 침대를 정리하고 주방에서 칩을 먹고 다시 누웠다.
어느새 7시가 다가와 양치하러 가서 장도 비우고 나름 준비를 했다.
그 사이 오스삐딸레라 알프레도 아저씨가 나를 찾아왔는지 룸 앞에서 기다리고 서있었다.
침대는 그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침대 옆 의자에 배낭을 올려놓으라고 하더니 커버가 씌워진 베개를 보곤 침대에다 짐을 놔두어도 된다고 했다.
몸만 빠져나오니 간식 가방이 돈가방인 줄 알고 어깨에 걸쳐주는데 아니라고 하니 다시 침대에 갖다 두신다.
아이스팩을 교체해 주어 주방에 가서 산미겔 맥주 한 캔 하고 올라와서 바로 휴게실로 갔다.
8시까지는 인터넷 사용이 안된단다. 와이파이 가능하던 알베르게에서 아침마다 인터넷이 불통이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어제 하지 못한 폰 충전을 하며 대기했다. 침대에 있어도 되는 것 같지만 밖으로 쫓아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이곳은 의무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 7시였다. 7시 반엔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났고 청소는 바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11시에 오픈할 수 있는 거였다.
오늘은 드디어 머무르게 되는구나. 무릎이 아프니까 목발 사용도 자연스레 터득하게 되었다. 알프레도 아저씨는 이제야 목발 사용이 퍼펙트하단다.
모두 떠나고 혼자 남았다. 그런데 청소하느라 창을 열어두어서인지 제법 추웠다. 차라리 밖에 나가 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한기가 들었다. 차라리 추운 게 다리에는 좋은 것 같다.
스틱을 주었던 아스트리드에게 늦은 땡큐 메일을 보내며 나의 소식을 전했다. 엄마와 보이스톡을 했는데 오빠는 동생에게 축하금으로 백만 원을 보냈단다.
아기는 남자아이란다. 건강하지 않으면 차라리 태어나지 말게 해 달라는 나쁜 기도를 했음에도 태어나 준 예쁜 조카에게 무얼 해주어야 할 것 같아 나도 백만 원을 보내기로 했다. 내가 덜 쓰면 되는 거다.
그러고 보니 알프레도 아저씨 혼자서 이 넓은 알베르게를 청소하고 있었는데 대단하다 싶었다.
무언가 도와드리고 싶었으나 아저씨 나름의 순서와 법칙이 있을 테니 걸리적거리지 않게 조용히 피해 있었다.
휴게실 책장을 정리하다 한글로 된 책이 눈에 들어와 집어 들었다.
서영은의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가령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 같은 데서 만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남자와 새 삶을 시작해도 좋겠다는 생각, 그의 가게에서 양파를 까면서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면서 요컨대 나의 모든 여행은 되돌아오지 않기 위해 비장하게 떠난다고 해야 할까'
10시 50분 체크인은 시작되었고 이미 많은 순례자들이 대기하면서 들어오고 있었다.
복잡한 시간대를 피해 뒤뜰로 갔다. 아직 덜 마른 침낭을 야외에다 널어두고 따뜻한 공기에 몸을 녹이며 책을 읽었다. 이게 내가 바라는 풍경인데 아프지 않고는 즐길 수 없는 게 문제였다.
어제는 비가 올까 봐 이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면 오늘은 빨랫줄을 차지하고 있는 내 침낭이 피해가 될까 봐 떠나지 못했다.
빨랫줄이 부족하면 바로 치워주려고 옆에서 대기했는데 날씨가 오락가락하다 보니 다들 건물 안 베란다에다 빨래를 널고 있었다.
책을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끊지를 못해서 샤워할 타이밍을 놓쳤다.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샤워하는 게 서로에게 좋았지만 뒤늦게 올라가서 샤워부터 했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함께 있는 이곳 알베르게의 장애인 화장실은 단순히 넓어서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몸이 불편한 상황에서 이용해 보니 정말 편했다. 목발 없이 서있기도 힘들었는데 주변에 있는 봉을 잡고 씻을 수 있어서 좋았다.
평소에도 샤워하는 시간이 짧은 편이라 공용 샤워실을 쓰면서 남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았다. 샤워실에 들어간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문을 열려다 잠겨있으니 쾅쾅 두드린다.
답을 했음에도 계속해서 문을 흔들어대며 계속 독촉하는 분위기라 서둘러 마치고 나오니 짜증 난 표정의 서양인이 노려보고 서있었다.
그러나 내 목발을 보더니 이내 표정을 풀고 대뜸 사과를 한다.
빨래를 해서 널고 테라스 의자에 앉아 책을 마저 읽었다. 침낭을 걷어서 올라가려고 하면 뜨거운 햇살이 비쳐 올라가지 못했는데 그래 봐야 금세 흐려지곤 했다.
날씨가 계속 흐리니까 마음도 우울해졌다. 이렇게 쉰다고 나을 것 같지도 않고 기다린다고 누가 도와줄 것도 아닌데 후반부를 위해서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걸어주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내일 하루 더 쉬는 것보다 산따 까딸리나 데 소모사까지라도 걸어가 볼까 싶다. 하지만 모처럼 느끼는 이 여유를 더 즐기고 싶긴 했다.
날씨라도 뜨거웠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은 아쉬웠다. 이런 날씨엔 걸었어야 했다. 하루 더 쉬고 목요일에 무리가 되더라도 라바날 델 까미노까지 걸어가 볼까?
알베르게는 많으니 늦게 도착해도 침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견딜 수 있을지 고민이다. 지금은 내가 어떤 결정을 해도 좋은 결과는 없을 것 같다.
세요를 받으러 갔더니 어제 찍은 세요 칸에 그냥 날짜만 추가해 주었다. 이러면 내일은 날짜 적을 공간이 없다.
내일은 떠나야 하는 걸까? 그래 이번에는 아쉬울 때 떠나자. 가자. 가자.
어제 가디스에서 바나나를 폐기하는 모습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왜 버리냐니깐 익은 바나나가 너무 많아서란다.
그렇다면 싼 가격에 떨이로 팔 것이지 비싼 가격표 그대로 팔다가 익었다고 버리는 걸 보니 안타까웠다. 내가 관심을 보이니까 사려는 줄 알았는지 잠시 기다리길래, 안 산다고 말하니 바로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버렸다.
맛보라고 그냥 줄 수도 있고 싸게 넘길 수도 있었을 텐데 전혀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오늘도 몇 번을 고민하다 Plumcake와 오렌지주스를 사러 갔다. 내일 떠날지도 모르니 마지막일지 몰라 일단 사두었고 인스턴트 파스타가 두 개나 있으니 당분간 식사는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일본인 오스삐딸레라가 있어서 내일 날씨를 물어보니 비가 온단다. 어쩌지?
주방에 가서 주스를 냉동시켰다. 양송이버섯과 마늘, 소이 소스가 있어서 버섯볶음을 만들어 먹고 누가 남긴 파스타를 넣었는데도 뭔가 허전했다.
그래서 짐을 가져다 두고 다시 파스타 볶음을 만들어 먹었다. 그러고 보니 볶음밥을 했어도 되는 거였다. 마지막 날이라고 만찬을 주셨다.
침대에 누워서 AMSTEL 맥주 한 캔을 마셨다. 이게 행복이지.
내일 일어나서 비가 오면 하루 더 쉬고 흐리기만 하면 출발하는 걸로 결정했더니 내일부터 3일간 기온을 체크하니 계속 20도 이하라 이럴 때 걷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혹시 모레도 비가 올지 모르니까 웬만하면 내일 출발하기로 했다. 내 컨디션이 아니라 날씨와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
아스트리드에게 답변이 왔다. 부엔 까미노!
You are welcome. While you are there, replace the tips at the outdoor shop in the plaza. I am glad to assist you. Take care of yourself. It’s good you are resting. Safe journey. Buen Camino!
Gadis Astorga 1.54€
PlumCake IFA 400g -0.99€
Zumo Naranja IFA 1L -0.55€
Albergue Publico de Peregrinos Siervas de María -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