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cabelos→Trabadelo
Day 69.
Sunday, July 2
어젠 18시쯤 침대에 누웠고 잠깐 잠이 들었는데 인기척에 깨니 어느새 새벽 1시였다.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은근히 멀어서 무릎이 너무 아팠다. 아무도 없을 때 장을 비우려고 했으나 야외라 너무 춥기도 하고, 너무 피곤해서 새벽에 또 깨면 다녀오기로 하고 그냥 돌아왔다.
5시 반, 눈을 떴으나 피곤해서 계속 누워만 있었다. 6시쯤 일어나서 화장실에 갔으나 화장지가 없다. 화장지를 가지러 돌아오다가 번거로워 그냥 포기했다.
6시 45분쯤 출발하면서 아이스팩을 반납하고 나오니 바로 옆에 성당 입구가 있었다. 어제 한번 들어가 볼 것을 뒤늦게 후회가 된다.
까까베로스는 1809년 꾸아의 전투라고 알려져 있는 영국군과 나폴레옹 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꾸아의 전투를 기념한 돌다리를 건너오면 신고전주의 양식의 낀따 안구스띠아스 성당이 바로 보인다.
이 성당에는 어린 예수가 성 안토니오와 카드놀이를 하는 채색 부조가 있고 순례자를 위한 2인용 알베르게가 성당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소박한 성당 건축물 이외에는 볼 것 없는 삐에로스까지 가려면 N-6 도로와 평행하게 초원지대를 지나면 된다.
삐에로스에서 나오는 출구에서 오른쪽으로 아스팔트 포장길로 올라섰다가 바로 왼쪽으로 이어지는 포도나무 사이의 흙길로 들어가 자동차 전용도로를 멀찍이 우회하여야 한다.
발뚜이야 아리바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을 통과하여 부드럽고 신선한 땅을 밟는다.
도로를 따라 익숙한 풍경을 보며 걸었다. 토끼 한 마리가 뛰어가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보고 있었는데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내 수십 마리의 토끼가 보였다. 드넓은 들판이 토끼 서식처인가 보다.
라 비르헨 도로 끝에 포도밭과 체리나무 소나무 숲이 있고 이곳을 지나면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다.
산길로 접어드는 게 두려워 차도를 따라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를 지나치고 싶었으나 차도는 터널을 지나고 있었고 사람이 다닐 수 있는지 몰라서 그냥 걸었다.
이내 산길로 접어들었고 9시 20분 Santiago de Compostela에 도착하지 못하는 순례자를 위해서 축복과 대사를 펼쳤던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의 산띠아고 성당이 있는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에 도착했다.
공립 알베르게 와이파이가 떠서 전에 썼던 비번을 입력하니 접속이 되었다. 구글 내비를 켜고 보니 까미노 루트 따라 걸어야 할 것 같았다.
공립 알베르게로 내려가지 않고 큰길을 따라 내려가니 빠로끼알 알베르게가 있었는데 사진을 찍다 보니 내비가 꺼져버렸다.
마을이 은근히 복잡했다. 익숙한 계곡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도로까지 가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마을 출구의 도로에 도착하니 터널은 겨우 414m였고 그나마 짧게 끊어져 있었다. 그냥 걸어도 되는 곳임을 알게 되니 허탈해졌다.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에서 발라르세 계곡을 지나는 길을 따라 나란히 걸어야 한다.
도로의 왼쪽으로 시멘트 구조물과 구분된 좁은 까미노를 따라서 한 시간가량을 걷다 보면 뻬레헤가 나온다.
오 세브레이로의 수도원과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의 산따 마리아 수도원이 분쟁을 벌였다는 밤나무 숲이 둘러싼 마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뻬레헤에는 도냐 우라꺄가 허름한 오레오에서 출산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으로 알베르게가 있고 출구에는 순례자를 위한 샘터와 휴식을 위한 돌로 만들어진 테이블도 있다.
뻬레헤 도착 직전에 이미 걷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기운을 차리려고 음악을 틀었는데 어머니가 보내준 아기 동영상이 플레이되었고 그래서 더 기운이 빠졌다.
오늘따라 발톱이 등산화에 계속 부딪히고 있었는데 끈을 좀 더 조여 매니 낫기는 하지만 이미 양쪽 발톱은 회복하기 힘든 상태가 되어 있었다.
걸으면서도 온몸으로 짜증을 표현하고 걷고 있었나 보다. 다리를 질질 끌며 간신히 걷고 있는 터라 누군가와 말을 하기가 싫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많은 이들이 지나쳐 갔고 나를 보며 괜찮냐고 한 마디씩 하고 지나갔다.
하지만 매번 답을 하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고 어느 순간엔 걱정하며 지나가는 순례자에게 괜히 짜증 섞인 대답을 하고 있었다. 그래 놓고는 그들이 사라지자 미안해서 또 펑펑 울고 있었다.
이곳에서 다시 N-6 도로를 만나게 된다.
도로를 따라서 걷다가 오른쪽 밤나무 숲 사이로 이어지는 새롭게 만들어진 길을 따라가면 뜨라바데로에 도착한다.
중세 이 마을은 부패한 귀족들이 순례자를 약탈했던 장소로 악명이 높았으나 현재는 뻬레헤보다 근대적인 건축물들이 시원한 계곡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
뜨라바데로 마을 입구에서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통나무들이 적재된 길고 긴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공립과 마찬가지로 빠로끼알 알베르게도 거의 마을 끝자락에 있었다.
공립도 5€였지만 처음 마음먹은 대로 성당 알베르게로 갔다. 골목 어귀에 앉아있던 동네 할머니 한분이 나를 따라오더니 익숙한 듯 알베르게 문을 열고 안내해 주었다.
세요 찍고 5€를 지불하는데 아무래도 오스삐딸레라는 아닌 것 같아 망설여졌지만, 믿고 체크인했다.
2층 첫 번째 룸인 6인실로 안내받았고 창가 2층 침대를 선택했다.
복도 테이블 옆 미니 냉장고에서 조금 남은 오렌지 주스를 꺼내 마시고 생수통에 든 물을 물통에 담아 냉동시켰다.
플럼 케이크로도 충분하지만 주방에 면이 있어서 오늘은 파스타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창 밖에는 벽 쪽으로 빨랫줄이 걸려 있었는데 시트가 널려있었다. 2층 베란다 안쪽으로도 빨래 건조대가 놓여있었다.
화장실 밖으로 성당 종탑이 보인다. 장을 비우고 샤워를 했다.
창밖으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서 내다보니 바깥 마당에도 빨래건조대가 있었다.
나가보니 빨래하는 곳도 따로 있었다. 빨래해서 햇볕에 널었다. 사람의 관심이 부담스러울 때 혼자 있기에 너무 좋았다.
안내문을 보니 와이파이도 있는 것 같았지만 접속되진 않았다.
면이 조금 있어 삶았고 마늘과 오일, 후추를 넣고 아껴둔 토마토 캔을 땄는데 허탈하게 빨간 피망이 들어있었다.
두 개 다 넣고 냉장고 속 남은 치즈를 넣으니 그럭저럭 파스타가 되었지만 두 번 다시 먹고 싶은 맛은 아니었다. 파스타 한 냄비를 만들어 식탁에 앉으니 15시였다.
조금 후 인기척이 들리는 것 같더니 오스삐딸레라 왔다. 동네 할머니도 다시 오셔서 그녀에게 인수인계를 해주셨다.
와이파이가 꺼져 있었던 모양인지 켜준다. 생각지도 못한 와이파이에 감사해하며 조용한 오후를 보내게 되었다.
아무도 오지 않아 건조대를 독차지해도 되겠다 싶어서 양말을 빨면서 스카프, 버프도 빨아 널었다.
다른 건조대에 침낭까지 햇볕에 널어두고 올라오니 이태리 부녀팀이 체크인해 있어서 침낭은 바로 걷어왔다.
새끼 고양이가 빈집 창가에 앉아 있었는데 내가 도착했을 때부터 울고 있었으니 종일 저러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아까 보이던 어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고 새끼 고양이가 내려오기엔 창가가 너무 높았다. 이 더운 날에 걱정이 되어 물이라도 가져다줄까 생각했지만 저기까지 가는 게 나에겐 더 고통이었다.
얼린 생수병으로 무릎을 얼음찜질하면서 마리아에게 아리수 자가검침 입력을 부탁하고 어머니에게도 당분간 마지막 톡임을 알렸다.
이제 곧 갈리시아에 입성할 텐데 거기는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국 뉴스를 확인했다. 비가 엄청 오고 있다는 소식과 송중기와 송혜교가 동반 여행을 갔다는 뉴스로 난리다.
오스삐딸레라 지원에 대한 안내가 왔다. 서류를 작성해서 보내면 되는데 12월과 1월에만 자리가 있단다.
Cacabelos→Trabadelo 17.2km
○Cacabelos (483M)
●Pieros (549M) 1.9km
●Villafranca del Bierzo (527M) 5.6km
-Iglesia de Santiago
-Iglesia de San Francisco
-Castillo Palacio de los Marqueses
-Convento de la Anunciada
-Convento San Nicolás el Real
-Colegiata de Santa María de Cluniaco
●Pereje (536M) 5.2km
●Trabadelo (562M) 4.5km
-Iglesia Parroquial de San Nicolás
173.5km/775.0km
Albergue Parroquial de Trabadelo -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