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tiago de Compostela→Porto, Portugal
Day 81.
Friday, July 14
나는 무언가를 하기에 앞서 항상 계획부터 세웠다. 계획 없이 진행하다가 무엇 하나라도 틀어지면 수습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플랜 B 또는 C까지도 염두에 두곤 했다. 일이 잘못되더라도 미리 염두에 두었던 일이 생기면 왠지 담담했다.
그런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까미노는 여러모로 큰 부담이었다.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철저히 준비를 했고, 그러지 못하는 것은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었다.
첫 번째 까미노를 통해, 이 길에서는 그렇게 걱정할 일이 별로 없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기껏해야 베드버그 정도였다. 하지만 베드버그의 습격을 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을 뿐, 습격을 받을 거리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습격받은 이후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고, 그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영국을 무사히 지나고, 여행 시작이나 다름없는 프랑스 파리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나의 여행은 첫 단추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까미노에서도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이 종종 있었고, 계획과 다른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엔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냥 그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기만 했다.
그래서 때로는 반항 심리로 인해 계획을 하지 않고 그냥 부딪히는 일도 있었다. 별일 없이 지나가기도 했지만 더 엉망이 되는 일이 많았다. 지나고 나면 내가 왜 그랬나 싶었던 일이, 그 당시에는 별거 아닌 일로 느껴졌었다.
천천히 걸을 생각이기도 했지만, 다치기도 해서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쉬었던 하루를 빼면 꼬박 44일이 걸렸다. 이 마저도 더 지체될 수 있었지만 오늘까지는 산티아고에 도착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서둘러 왔다.
14일인 내 생일에 완주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서였지만,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오늘을 망치고 말았다.
새벽 2시 50분 소파에서 쫓겨났다. 누군가가 와서 깨웠는데 밤에 순찰 다니던 스태프였다. 여기서 자면 안 된다며 침대로 가라고 했으나 침대가 없다고 하니 그럼 나가야 한단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창피하고 민망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런 무모한 짓을 왜 했을까?
하지만 후회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밖으로 나가면 견디지 못할 추위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사정을 해볼까? 생일이니 한 번만 봐달라고 얘기해 볼까? 그런 생각이 잠깐 스치고 지나갔지만 내가 생각해도 너무 어이없었다.
하지만 다리를 질질 끌고 나서는 내 뒷모습이 처량해 보였는지 스태프가 뒤따라 와서는 로비에는 있어도 된다고 허락해 주었다. 그라시아스!
수도원 건물이었던 이 거대하고 텅 빈 공간은 추워도 너무 추웠다.
단체 학생들이 떠나면 나도 당당히 체크인을 하고 여기서 며칠 머무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하루만 머물고 떠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창피해서 더 머무를 수도 없었다. 다른 곳은 생각나지도 않았고 빨리 떠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파띠마로 가고 싶어졌지만 산티아고에서의 일정을 모두 미루어 둔 상태라 오전 중에 그 일정을 모두 소화하기엔 벅찼고 결코 서둘러서 끝낼 일들이 아니었다.
포르투갈에서의 일정을 앞당겨야겠단 생각에 리스본 호스텔 예약을 변경하려고 보니 안 된단다. 무료 취소는 되는데 예약 변경은 불가능하다는 거다. 성수기를 맞은 리스본의 호스텔은 예약이 대부분 끝나 있었다.
마이클에게 메일이 와있었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답장을 할 수가 없었다.
3시가 넘자 이른 체크아웃하는 사람이 내려왔다. 4시가 넘자 또 한 명이 나갔다. 나가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내가 쉴 곳은 없었다.
5시 반쯤 나온 이는 또 다른 사람을 붙들고 한참 동안 떠들었다. 더 이상 졸지도 못하고 뜬 눈으로 버티려니 너무 힘들었다. 내가 자초한 일이니 묵묵히 감수해야 했다. 그렇게 난 가장 힘들고 피곤한 아침을 맞이했다.
7시쯤 스태프가 나와서 공용주방을 오픈하길래 따라 들어가서 물부터 끓였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니 살 것 같았다. 최악의 시나리오대로만 흘러가고 있으니 파띠마에서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우선 파띠마의 숙소가 불안했다. 예전에는 찾지 못했지만 이제는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는, 바로 그 파띠마 순례자 숙소에서 머물 계획이었지만 막상 가보니 없어졌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산티아고에서 최대한 머물다 가야 했지만 현재로선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시간을 보내다 문득 오늘 파띠마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티아고에 있으면서 굳이 해야 할 일도 없었다.
뒤늦게 서둘러 순례자 사무실에 가서 완주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그리고 꼰차 로사리오를 구입했다. 긴 줄은 있으니 이번엔 짧은 줄로 샀다.
이제 산티아고에서 해야 할 일은 끝났다. 여유를 즐길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산티아고에서 이미 마음이 떠났고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어졌다. 마침 바로 옆에 알사 버스 티켓 부스가 있었다. 굳이 터미널까지 갔다 오지 않아도 되어 좋아라 했더니 일요일까지 파띠마행 좌석은 모두 매진이란다.
당장 떠나고 싶은데 월요일까지 있어야 했다. 게다가 월요일 좌석도 10개뿐이라니 이것도 언제 동이 날지 모른다. 절망적이다.
물론 뽀르뚜에서 갈아타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환승하려면 멀리 떨어진 다른 버스터미널로 이동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참 동안 그냥 멍하니 서있었다.
2년 전엔 혹시나 하는, 원래 내 성격대로 산티아고에 도착하자마자 파띠마행 버스 티켓부터 예매해 두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계획이 아니라 흐르는 대로 한번 지내보려고 했던 거였는데 일이 꼬이고 있는 거였다. 토요일에 파띠마에 간다는 독일인을 만났고 매진 소식을 전해주니 자기는 비행기를 타고 갈 거란다. 부럽다.
일단 인터넷이 아쉬워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체크아웃 시간인 11시가 넘었지만 주방 문은 열려있었다. 마리아 연락이 왔지만 조급해진 상황에 긴 얘기는 할 수 없어 일단 끊었다.
뭐라도 알아보려는데 이미 멘붕이 왔다.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다.
뽀르뚜에서 파띠마행은 매시간마다 있으니 오늘 파띠마로 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
가야 한다와 좀 더 머물다 가자는 생각이 충돌하고 있었고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그래 떠나자. 짐을 챙기는데 오늘 도착한 한국인을 만났고 얘기를 하다 보니 한국말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상황은 더 있고 싶었지만 이미 망친 생일이니 파띠마에 가서 새로 시작하기로 했다.
챙겨둔 음식들을 정리해서 나누어 주고 파인애플 통조림, 빠에야 세트, 복숭아 주스는 배낭에 넣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디아에도 가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12시쯤 숙소를 나왔다.
디아에 들러 초코 비스킷을 구입하고 버스터미널로 가서 뽀루뚜 티켓을 끊고 나니 12시 45분이다.
버스터미널에서 한 시간을 앉아 기다리다가 뽀르뚜행 알사 버스를 탔다. 그러고 보니 기다리는 동안 가디스에나 다녀올 걸 그랬다. 그곳의 케이크가 제일 맛있었는데 말이다.
14시에 산티아고 데 꼼뽀스떼라를 출발했고 4시간을 이동하였으나 시차 적용으로 17시에 뽀르뚜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예전에 파띠마행 직행 알사 버스를 타고 가다 한 시간 휴식을 하던 곳이었다. 이곳이 뽀르뚜 알사 버스 터미널이었던 셈이다.
여기서 레네스 버스 터미널까지 이동해야 하는데 거리가 꽤 되었다. 4.3km.
물어보니 메뜨로로 5 정거장이라고 해서 메뜨로역으로 내려갔으나 표를 살 수가 없었다. 벤딩머신에선 충전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 티켓부스로 갔는데 무슨 일인지 엄청난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여기는 새로운 티켓을 보증금 내고 사야 한다는데 무엇보다 그들의 여유로움에 비해 대기자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냥 걷기로 했다.
덕분에 뽀르뚜 시내를 가로질러 구경하면서 걸었고 레네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18시가 넘었다.
뽀르뚜에서 파띠마행 레네스 버스는 시간마다 있다더니 17시 30분 다음 버스가 23시였다. 리스본행 버스다 보니 도착시간을 리스본 시간에 맞춘 듯싶었다. 메뜨로를 타고 왔어도 23시까지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 생각하니 걸어오길 잘했다 싶었다. 차라리 시내 구경을 제대로 하고 올 걸 그랬나 싶었다.
뽀르뚜에서 파티마까지 18€란다. 버스비도 많이 올랐다. 산티아고에서 파띠마까지 직행은 48€인데 뽀르뚜 경유는 58€인 셈이다.
오늘 안에 파띠마에 도착하려던 내 계획은 차질이 생겨버렸다. 새벽 1시에 파띠마에 도착한다고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티켓을 구입하고 앉아 기다렸다.
배낭 두고 잠깐 나갔다 올까 했으나 그러기엔 내가 너무 피곤했다. 무릎 상태도 더 나빠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 이제는 뽀르뚜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파띠마에서도 별일이 생기면 어쩌지? 아는 길이라 하더라도 새벽에 무섭지 않을까? 혹시 새벽에는 문이 닫혀있으면 어쩌지?
그렇게 생각만 많아진 나는 오늘 파띠마에 도착하지 못했다.
Santiago de Compostela, Spain→Porto, Portugal
ALSA
14:00 Santiago
15:00 Ponte Vedra
15:30 Vigo
17:00 시차 변경 -1시간
16:00 Braga
16:40 Aeroporto
17:00 Porto
Concha Rosario -2.50€
DIA -3.80€
Galletas Rellenas Sabor Chocolate 500g 0.95×4
Santiago~Porto ALSA BUS -40.00€
Porto~Fatima RENEX BUS -18.00€